2011년 7월 26일 화요일

등록금에 관한 나의 의견

몇 주 전 등록금 천 만원 시대의 서울에서 반값 등록금에 관한 시위가 있었었다. 어찌 보면 인제서야 이런 말을 꺼내는 것도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나도 공부를 하는 한 명의 대학생으로서 잠깐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있다.

 

2011-06-14_17

나는 언제나 이런 일이 있으면 전체적인 맥락을 집어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을 하려고 노력한다. 아마도 제 3자의 입장에서 강 건너 불 마냥 바라만 보는 ‘외국인’ 이라는 나의 신분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와서 그런 습관이 생긴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국의 뉴스건 이 나라의 뉴스건 국제 뉴스건 언제나 나에게는 ‘강 건너 불’ 이었다. 하지만 이번 등록금 시위에 한 해서는 이상하리 만큼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내가 학생이라는 동질감도 있고, 내가 정치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 우리시대, 내 세대의 첫 번째 자발적이라는 시위라는 의미도 있다. 그 전에 있었던 여러가지 시위들(한미 FTA, 미국 쇠고기 등등)은 우리 세대가 참가를 했을 지라도 이건 전체적 혹은 대다수의 국민적 이익을 쟁취하기 위함이지 순수히 우리 세대만을 위한 시위라고 보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등록금 시위는 순수한 우리세대만을 위한 시위이다. 오히려 이 시위로 반값등록금, 무료 등록금이 시행되면 윗 세대의 세금부담이 늘어나거나 우리 다음세대의 돈을 먼저 까먹는 행위 일 수도 있다.

우리세대는 우리 부모님, 삼촌, 이모 세대가 이룩한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부유와 자유와 민주화를 누리는 가장 축복받은 세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 세대가 정해놓은 취업이라는 좁은 문을 지나가아만 하는 역사상 가장 수동적인 세대라고 생각한다. 윗 세대가 정해놓은 사회적 가치관을 물려받고 윗 세대가 정해주는 길을 걸어가며 윗 세대가 마련해둔 안정적인 사회에서 살아가길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수동적인 습관에 물들어 자발적인 참여, 튀는 행동과 일탈은 크나큰 위험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우리 윗 세대가 마련해둔 길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분들은 우리보다 인생을 앞서 살은 선배로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조언자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진정 우리에게 당장 피해가 오는 상황이 되자 뭉쳐서 한 목소리를 내는 일탈의 행동을 했고 나는 그 일탈을 멀리서 나마 지지한다. 

글이 무슨 대학교에 폭탄테러 하러 갈 사람마냥 너무 비장한데 분위기를 바꿔서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나의 이런 대안은 어떻게 생각을 하는 묻고 싶다.

내가 제안하는 대안은 ‘유럽으로 가라’ 이다.

지금 공부할 돈이 없어서 시위를 하고 있는데 무슨 비싼 유럽에서 공부를 하라는 미친 소리냐 라고 하실 분도 계시리라 믿는다. 하지만 이 이 유럽의 달동네 키예프에서 근 6년 이상을 유학한 숙달된 조교의 이유를 들어보라.

우선 같은 유럽이지만 영국과 러시아는 빼자. 영국은 미국과 비슷한 대학 시스템으로 천재 아니면 갑부 들이나 가는 나라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버린다. 러시아의 모스크바는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발에 채이는 게 스킨헤드이니 목숨을 보전하고 싶다면 이것도 과감하게 버린다. 우리고 목표로 하는 독일을 포함한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은 우선 학비가 없거나 아주 저렴한 수준이다. (특히 국립!)

아 먼저 우리의 비교대상 일반적인 한국 대학생의 년간 지출 비용을 알아보자. 등록금 천만원 시대 이니 우선 학비로 1년 천만원을 지불하자.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일반 대학생의 평균 생활비는 월 약 600,000원 정도로 나왔다.(자취 기준) 그리고 여기에 나는 약 5% 정도를 더하기로 했다. 대학생 이라고 아프지 말란 법 없고 대학생 이라고 문화생활 없는 무미건조 사막 육포 같은 인생을 살 순 없지 않은가? 즉 월 630,000원을 생활비로 잡고 여기에 10개월을 곱한다. 방학은 부모님 집에 눌러산다는 가정하에 10개월을 곱했다. 즉 일년 생활비로 약 6백 30만원을 쓴다는 결과가 나온다.

학비        10,000,000원

생활비      6,300,000원

합계        16,300,000원

이 돈이 우리가 대학생이라는 명목하에 지출하는 대략적인 금액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61211180012.734.0

이 돈을 환전 해 보자. 달러 환율은 어림잡아 1050원으로 잡겠다. 그리고 유로 환율은 1500원을 잡겠다. 그럼 지출하는 금액은 15,524달러, 혹은 10,867유로가 된다.

그럼 이 돈과 우선 내가 거주하는 키예프와 비교해 보겠다.

우리학교 학비는 일년 3,000달러 이다. 학교 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냥 편하게 우리 학교로 잡겠다. 그리고 여기 기숙사를 사용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초월적인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짓 임으로 원룸 아파트를 임대하기로 하겠다. 그러면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월 400달러면 충분히 원룸 아파트를 임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도 지금 그렇게 내고 있다. 그리고 12개월을 곱하면 집값으로 4,800달러가 나간다고 할 수 있겠다. 집세를 뺀 생활비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학교도 우리학교 기준이고 하니 나는 내 기준으로 잡겠다. 나는 대충 계산 해 보면 월 300달러 정도 쓰는 것 같다. 그래 통 크게 100달러 더 주자. 월 400달러 쓴다고 계산 해 보자. 그럼 400 곱하기 12는 다시 4,800달러 이다.

학비     3,000달러

집세     4,800달러

생활비  4,800달러

합계    12,600달러.

여기에 우리 한국대학생들의 지출금액 15,524달러와 비교해 보면 2,924달러가 남는다. 이 돈으로 당신은 여름방학 동안 한국을 가던가 주변국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아니면 부모님의 휜 등골을 약 8도 정도 펴 드릴 수 있는 선물을 드릴 수 있다.

그럼 이제 내 친구가 공부하고 있는 이탈리아 밀라노와 비교해 보자.

친구는 현재 밀라노 공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비교적 학비가 싼 나라다. 그래도 이 학교에서 EU국가 출신이 아닌 학생들에게 받는 학비는 일년에 약 800유로 정도 한단다. 하지만 자기 부모님의 수입 수준에 따라 차등을 주고 얼마나 많은 수업을 듣느냐에 따라 차등이 있단다. 내 친구는 부모님 수입을 아주 적게 신고해서 학비는 거의 몇 십 유로에 지원금(학기당 약 3,000유로) 까지 받으면서 다닌다고 한다. (지원금 이야기는 친구가 EU국적 소지자 이여서 그런 것 일수도 있다.) 하지만 생활비와 집값이 비교적 비싼데 거기에다 밀라노는 물가가 이탈리아에서 제일 비싼 나라로 손 꼽힌다. 그래서 룸메이트 2명이랑 같이 사는데 자기는 운이 좋아서 약 300유로를 내고 있고 생활비로 약 500유로가 든다고 한다. 300곱하기 12는 3,600유로, 500유로 곱하기 12는 6,000유로이다.

학비        800유로

집세     3,600유로

생활비  6,000유로

합계    10,400유로

이것을 한국학생 지출과 비교하면 10,867 – 10,400 = 467이니까 467유로나 절약하게 된다. 그리고 학교 지원금이나 외국학생들에게도 주는 장학금 까지 노려 볼만 하다고 하겠다. 거기에 당신은 이탈리아 대학교에서 졸업했다는 간지나는 졸업장을 취득하게 된다.그리고 졸라맨 부모님의 허리띠를 약 6센티 더 늘려드릴 여유도 생긴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에 관심이 많아서 알아본 자료이니 비교적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었지만 다른 유럽국가들은 더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독일 같은 경우는 입학만 가능하다면 본국 학생들과 동일한 조건으로(약 200유로 안팎의 수업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핀란드와 스웨덴은 전액 무료 이고, 덴마크는 거기에 매월 약 70만원 가량의 국가 보조금 까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이것도 EU국민에 한 해서 일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정말 정말 단면적인 것만 계산을 했을 때 이다. 한국은 우리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여지가 훨신 더 많이 있고 절약 할 수 있는 방법도 더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한국의 비싼 등록금은 여지없이 학자금 대출이라는 빛을 안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6개월 만에 덥썩 500만원씩을 만들어 낼 가정은 한국에 절대 많이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는 좋건 싫던 간에 어디선가 돈을 빌려와야 한 다는 것이고 이것은 적건 많건 이자라는 것을 만든다. 싸게 해서 연 5%라도 일년에 50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유럽은 한국보다 비교적 많은 생활비가 많이 들겠지만 목돈이 아닌 꾸준한 돈이니 월급을 받는 부모님 이라면 오히려 빛을 내지 않고도 지원을 해 주실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사회로 나갈 때 빛이라는 것을 덜고 나가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건 경제적인 면으로만 계산을 했을 때 일이고 다른 면을 본다면 유럽이라는 풍부한 나라들이 주는 정신적인 면은 무궁무진하다. 세계의 패권은 미국으로 이미 넘어 갔으니 미국이 최고다 라고 할 사람도 있지만 이 Old 대륙 유럽의 문화적 영향력은 아직도 무시 못할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세계사를 배울 때 가장 많이 배우게 되는 대륙이 어디인가? 유럽 아닌가? (아 한국은 역사 안배우지. 국사도 제대로 안 가르치는데 세계사 까지 가르칠 시간이 있나, 죽어라 국영수지.)그들의 매너와 라이프 스타일은 이제 대부분의 나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럽에 대한 이런 나의 생각이 사대주의라면, 나는 사대주의자다. 나는 유럽대륙이 좋다. 내 나라 한국도 내가 좋아하지만 아직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유학생활이라는 것은 ‘모’ 아니면 ‘도’ 다. 정말 값진 시간을 보내거나 아니면 더 많은 돈을 들이면서 허송세월을 보낼 수 있다. 그래도 나는 한국 학생들을 믿는다. 고3때의 그 필살적인 공부의 노력은 유수의 유럽 대학들을 뚫을 수 있는 저력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인들의 근면성과 좋은 머리는 유학생활의 뒷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난 낙관주의자니까….) 나중에 내가 느낀 유학생활의 cons와 pros를 정리해 올릴때 더 자세히 쓰겠지만 유학생활에서 주는 이익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제서야 우리는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흐름을 방해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도 나는 너무 한국만 바라보는 내 세대, 내 친구들이 아쉽다. 약간만 관점을 바꾸면 길은 많다. 비록 그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 돌아서 가는 길 인지 지름길인지 모르지만 어느 길이든 그 길만의 스토리가 있으며 그 길을 걸어 갔다는 것 만으로도 좋은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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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9일 토요일

북유럽 여행 (1편)

처음 블로그를 만들때 3년동안 키예프에 살면서 생긴 일이나 정보들을 나누자 라는 마음으로 개장했는데 결국 내 여행기만 남기는게 주 목적이 된듯하다.

여튼 이번에도 또!! 여행을 갔다. 기간은 5월 부활절, 메이데이, 승전기념일 연휴가 있는 4월 28일부터 5월 10일까지 총 13일. 여행 루트는 좀 길다.

리투아니아(빌뉴스, 트라카이) – 라트비아(리가, 유르말라) – 에스토니아(탈린) – 핀란드(헬싱키) – 스웨덴(스톡홀름) –덴마크 (오덴세, 실랜드 섬 전역) 즉 빌뉴스 –in, 코펜하겐 –out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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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뉴스 대성당)

이 걸 몇번이나 대답해줬는지 모르겠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선생들도 다 물어본다. 이번 여행은 어디 어디 갔다온거야. 그때마다 이걸 반복해서 들려줬다. 이건 뭐 어떻게 종이에 적어다 두고 보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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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뉴스 국립극장의 조각상)

여행을 떠니기 전날 나는 밤을 샜었다. 설계 과제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하다보면 또 생각나고 또 추가할게 생기고 하다보니 밤을 샜다. 아침 6시까지 완성을 시키고 한 1시간 반 정도 잔 다음에 설계도 프린트를 하러 갔다. 비행기는 오후 2시 출발. 그날따라 왜 프린트 하는 곳은 컴퓨터가 말썽일까. A1 3장을 프린트 해야 하는데 두번째 종이에서 컴이 고장이 났다. (결과적으로는 내 설계도에 너무 잔 그림이 많아서 처리 속도가 늦어진게 주 원인이긴 했다만) 결국 10반쯤 되서 교수에게 설계도를 제출했다. 역시나 오늘 수업에도 나만 왔다. 교수는 3명인데 점수를 주는 단계는 언제나 같이 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경우 최소 2명은 있어야 한다. 다행이 2명이 있었다. 그것도 원로로 평가받는 교수 한명과 그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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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카이의 성)

이 교수들은 비행기 시간이 가까워 오는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세월아 내월아 지들 수다만 떨고 있다. 근데 결국 날 보고 그냥 생각을 좀 하더니 (내 과제는 정말 대충 보고) 점수를 후하게 줬다. 그리고 다음주 수업때 다음 설계할꺼 미리 준비해서 오란다.

-어, 저 오늘 떠나고 2주 후에나 오는데요.

-어디가는데?

-그러니까…. (저 위에 써둔거 다시 반복했다.)

-많이 돌아다니네. 가서 그럼 사진 많이 찍어서 애들이랑 같이 보게 준비해!

그렇게 나는 이번 여행에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도시들마다 뛰어난 쇼핑 센터들의 외관 사진과 내부 구조를 구해와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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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 올드타운의 맞은편)

키에프에서 산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나라 항공을 타고 여행을 하는것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에로스비트를 타고 처음 출발도시로 가게됬다. 학교 과제를 제출하고 부랴부랴 집에와서 택시를 부르고 여행베낭을 메고 공항으로 갔다. 다행이 시간적으로는 여유가 있게 도착을 했고 나는 짐을 보내기 위해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서 베낭을 컨베어벨트 위에 올려놓고 여권을 주면서 말했다.

-코펜하겐 비행기요.

-예. (자판두둘이는 소리) 비자 있으세요?

-한국인은 유럽여행에 비자 필요 없어요. (아 왠지 모를 뿌듯함)

-예…. 어 근데 명단에 손님 이름이 없네요. 표 좀 보여주시겠어요?

-어? 정말요? 잠깐만요. (부시럭부시럭) 여기요.

-감사합니다. 저기……. 코펜하겐이 아니라 빌뉴스 가시는건데요.

-아!!!!!!!!!!!!!!!!!!!!!!!!!!!! 빌뉴스 였구나!!!!!!!!!!!!!!! 예!!! 빌뉴스요! 돌아오는게 코펜하겐이지!!!!

난 이렇게 처음 떠나는 순간부터 한국인의 자랑스러움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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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의 구시가지)

아에로스비트의 빌뉴스행 비행기는 원래 시간보다 약 50분 정도 늦게 출발했다. 언제나 그렇듯 ‘기술적인 문제’로 출발이 늦어졌다. 그리고 바로 기내식이 나왔다. 샌드위치와 음료. 나는 커피와 물을 부탁했다. 커피는 일반적인 인스턴트 커피 였고 샌드위치는 정말 이런게 다있어 할 정도로 맛이 없었다. 우선 빵은 가루가 되어 다 날랐다. 그리고 안에 들어간 버터같은 마요네즈는 너무 많았고 아채라곤 배추(우리가 김치로 먹는 그 배추다!) 한장과 샤프심 두께의 햄 한장이었다. 옆에 앉아계신 미국인 할머니는 한 두입 먹고 오렌지 주스만 마셨다. 근데 나는 점심도 안먹고 학교에서 바로 왔더니 배고파서 모조리 먹었다. 다 먹고 흘린 빵가루(빵이 이상해서 엄청나게 많았다.)를 깨긋하게 물티슈로 쓸어담아 샌드위치 껍데기에 담았더니 옆에 앉아있던 미국인 할머니가 날 이상하게 처다본다. 뭘 잘못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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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의 유명한 세형제.)

비행기에서 나는 ‘아 이제 영어만 사용하게 되겠구나.’ 생각하고 맘의 준비를 했다. 러시아어는 더 이상 쓸 일이 없군. 하며 나는 빌뉴스 공항에 내렸다. 비행기에서 공항으로 가서 여권검사하는곳에 줄을 섰다. 헐 어찌 된 일인가 내 앞에 있는 아줌마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러시아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공항직원도 러시아어로 대답을 다 해줬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맘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러시아어가 너무나도 쉽게 통용되는것에. 공항을 빠져나와 환전을 약간만 한 뒤(공항은 언제나 환율이 안좋아요! 그러니까 차비 정도만 환전하세요!) 새내로 들어가는 기차를 타기위해 역으로 갔다. 거기에 적혀 있는 안내문은 모두 리투아니아어, 러시아어, 영어였다.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이거 러시아어를 읽어야 하는 것인가 영어를 읽어야 하는것인가. 그리고 시내 가게에서 울려퍼지는 유행곡들은 러시아노래 였으며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에도 러시아어가 많이 쓰였다.

나중에 빌뉴스에서 리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대기실에 앉아 계시던 아주머니께 물어보았다. 리가도 여기만큼 러시아어가 많이 통하나요? 아줌마는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날 보더니 ‘거긴 여기보다 더 해!!’ 한다. 이래서 발트 3국의 여행은 쉽게 러시아어로 블라블라 거리면서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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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의 꿈의 휴양지 유르말라)

빌뉴스에서의 만난 사람들:

1)술취한 현지 아저씨

이 아저씨의 이름은 뭐라고 4글자 였는데 까먹었다. 특징적인것은 이미 유스호스텔에 들어왔을때 부터 술에 취해 들어오셨고 나에게도 자신의 품 안에서 꼬냑을 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직업은 통역 & 가이드. 덕분에 트라카이라는 지역을 알게 되었고 다음날 아침일찍 트라카이를 향해 갔다. 비록 두모금 이지만 공짜술을 얻어 현지인들에게 공짜 술을 얻어먀셔본건 처음이다.

2)스페인 청년 다니엘

트라카이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났다. 그의 복장은 누가봐도 ‘여행자’였다. 머리는 한 4일은 안 감은듯한 떡진 머리와 인도풍의 셔츠에 묵직해 보이는 베낭을 메고 있었다. 그는 내 옆자리에 앉아서 트라카이까지 갔다. 내려서 같이 버스터미널에 있는 지도를 보고 친하게 되서 계속 트라카이에 이어 그날 하루종일 같이 다녔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도 잘 다녔는데 덕분에 빌뉴스와 트라카이에서는 내 얼굴이 들어간 사진들이 남아 있다. 다니엘은 폴란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인데 이번 여행은 모두 카우치서핑으로 숙소를 찾게되어서 돈이 적게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나도 나중에 키예프 오게 되면 연락달라고 했다. 바르셀로나 산다고 했으니까 나도 언제 스페인 가게 될 일이 있으면 신세좀 져야지. (PS. 이번 여름 한 7월 경에 키예프에 온단다. 그래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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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회사 탈링크의 사무실이었던걸로 기억한다. 탈린)

빌뉴스는 정말 작은 도시다. 구 시가지는 정말 거짓말 안하고 2시간이면 들어갈 곳(박물관이나 미술관제외) 다 들어가고도 여유있게 구경할 수 있다. 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일찍 들어와서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아저씨와 술이나 한잔씩 하고 있었겠는가. 하지만 빌뉴스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물가가 싼 곳이었고 편안함을 주는 곳 이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수출한 상품들이 제일 많은 곳이었다! 빌뉴스의 슈퍼마켓에서 보는 ‘추막’케챱의 위풍당당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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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의 유명한 교회)

  리가로 가는 버스는 저녁 9시 반에 출발해 약 2시 반쯤 도착하는 정말 어정쩡한 시간대의 버스였다. 나는 숙박비를 아끼겠다는 일념하에 이 버스를 탓고 이것은 정말 저주스런 날의 시작이었다. 리가에 도착해서 우선 한 30분 정도 버스 터미널을 돌아다니면서 탈린으로 가는 버스 시간과 가격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슬슬 구시가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때가 약 3시가 좀 넘었을때다. 그리고 터미널을 나서는 그 순간 5월의 기온이라고는 할 수 없는 바람이 내 싸대기를 후려쳤다. 난 구 시가지를 향해 걸어갔다. 근데 리가는 새벽3시에도 잠을 안자고 있었다! 구시가지에 밀집해 있는 술집들과 클럽들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음악을 쾅쾅 틀어놓고 있었다. –뭐야… 이사람들… 무서워…

근데 오늘은 금요일! 그 유명한 후라이데이 나이트! 나는 사람들을 피해 한적한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저기서 술취한 사람들의 괴성(포효)가 들렸다.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가방을 꼭 안고서 선잡을 자려는데! 너무추웠다. 이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기온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옷을 최대한 으로 입고 있어도 빈약했고 잠은 오지 않았다. 돈도 없으니 카페 같은데 앉아 있지도 못하고 그저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정말 추운 날이었어…….

드디어 해가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날씨는 춥고 들어가 있을 곳도 없고 돈도 없다. 그런데! 6시에 문을 여는 성당이 있었다. 토요일 새벽 미사라니. 여튼 나는 그 성당 앞 공원에서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는 순간 들어갔다. 따듯한 성당에서 마음의 안식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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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전을 해 보니 라트비아의 돈은 엄청나게 비싼돈이었다. 내가 볼때 유럽에서 제일 비싼 돈이 영국 파운드가 아니라 라트비아 라트인거 같다. 100달러를 바꾸면 한 45라트를 준다. 절반 이하로 가치가 떨어지니 이건 1센트를 써도 손이 후덜덜 떨린다. 1라트는 한국돈으로 약 2400원돈 된다. 그만큼 가격이 싸긴 하지만 단위 자체가 커서 동전하나하나 소중하게 썼다. 에스토니아와 핀란드는 유로를 썼고 스웨덴과 덴마크는 각자 자기네 돈을 쓰긴 하지만 둘다 명칭은 크로너 이다.

이렇게 라트가 비싸니 라트비아는 수입품이 많았다. 물론 나라가 작다보니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생산품이 많이 없을것으로 생각이 되지만 높은 라트 가격도 자체생산 보다는 수입하는 방향으로 많이 가도록 이끈것 같다. 그래서 좋은점은 비록 이나라가 뭘로 벌어 먹고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는 모습은 서유럽을 따라 잡은 모양이다. 서유럽제품들이 바로바로 수입이 되니 사람들은 당장 품질 좋은 제품을 사용하니 특별하게 불만은 없어 보인다.

리가를 포함한 발트3국의 도시들은 러시아지배를 당하기 이전부터 생활수준이 훨신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수준이 못하는 러시아가 힘으로 땅을 점령하자 다른 어느 지역보다 독립&민족주의 운동이 심한 지역이었고 소련으로 병합이 되고 나서 부터도 러시아는 특별히 이 지역에 더 신경을 써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가 이 동네는 다른 구 소련지역에 비해 훨신 잘 사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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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도 빌뉴스와 비슷하게 올드시티 자체는 크지 않았다. 여기도 다 둘러 보니 한 4시간 정도. 특히나 나는 새벽부터 둘러봤으니 이놈의 도시에서 진정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유르말라라는 리가에서 약 30분 떨어진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유르말라는 발틱해에 접해 있는 유명한 여름 휴양지이다. 특히나 러시아 인들에게는 가깝고 좋은 최고의 휴양지였다. 지금도 러시아에서 매년 주최하는 ‘노바야 볼나(New Wave)’라는 국제 가요콘테스트는 이곳 유르말라에서 여름에 열린다. 하지만 내가 갔을때는 역시나 아직 추웠다. 5월에 북해에 서서 겨울바람을 느끼고 왔다. 나는 세찬 바람때문에 흘리는 눈물을 닦으며 시내 중심지를 둘러보고 다시 리가로 돌아왔다.

정말 여기서 부터는 리가에서 할 일이 없었다. 무거운 가방 메고 백화점 돌아다니기도 뭣하고 시내 중심 광장에서 앉아서 사람구경이나 하고 있었다. 어딜 더 돌아다니고 싶어도 어깨를 내리 누르는 가방덕분에 금방 잊혀졌다. 그리고 밤이 오자 슬렁슬렁 버스터미널에서 과자한봉지와 전자책을 들고 탈린으로 향하는 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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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의 대표 교회 외관과 같이 내부도 정말 깔끔했다. 너무 깔끔해서 약간의 조각상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탈린버스터미널에 도착한건 약 6시 쯤이었다. 너무 추워서 좀 대합실에서 기다렸다 가려고 있었는데 대합실은 이미 콩나물 시루였다. 그 옆 계단에 앉아 있는 동남아 여행객을 발견하고 나는 탈린에서 지낼만한 숙소를 물어보았다. 근데 지들은 당일코스로 온거라 탈린은 숙소를 안 알아보고 왔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디서 왔느냐 물어봐서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눈빛이 변한다. 되게 부러운 눈빛과 함께 무엇인가 말을 더 하고 싶은데 떨려 하는 듯한 눈빛? (이거 순간의 눈빛을 어떻게 설명 할 길이 없네.) 그 사람들에게 한국어 ‘안녕’을 가르치고 있는데 저 대합실에 누가봐도 한국사람인 여자분 2명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얼른 멈춰세우고 숙소를 물어보았다. 자기네들도 지금 찾으러 간단다. 그래서 동남아 여행객들을 버리고 쭐래쭐래 따라 갔다.

터미널을 나오자 세찬 바닷바람이 내 싸대기를 때린다. 지도상으로는 절대 먼 거리가 아닐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추위를 못 견디고 우리는 그냥 트램을 타기로 했다. 우선 역시나 그렇듯 올드시티로 갔다.

탈린에 도착한 그 날은 5월 1일 전 세계적은 공휴일이었다. 그래서 올드타운 안에 있는 유스호스텔은 모두 풀로 가득 찬 상태. 그중 한 유스호스텔에서 알려준 곳으로 가기로 했다. 지도에 16유로 라고 적어둬서 아 여기는 방 하나에 16유로 이구나 하면서 셋이 갔는데 호스텔 이름이 16유로 였다. 왠지 모르게 배신당한 느낌. 나는 도미토리에 자리가 있어서 그곳으로 갔고 여자분 두분은 더블룸(이게 16유로였다.)을 드디어 구했다. 근데 우리는 이미 방을 구하러 돈 올드타운을 둘러본 이후라 이젠 나도 할 일이 없었다…….

샤워를 간단하게 하고 나는 탈린 항으로 배표를 사러 갔다. 나는 탈린-헬싱키-스톡홀름를 배로 가게 된다. 그리고 이 라인을 다 다니는 회사는 바이킹 라인과 실야링크 두 회사였다. 그런데 분명 내가 헬싱키-스톡홀름 배표를 인터넷으로 알아봤을때 약 100유로(바이킹 기준)약간 넘었던걸로 알고 있는데 탈린에서 헬싱키를 거처 스톡홀름으로 가는 배표가 현지에서 알아보니 52유로 였다. 실야링크는 더 싸서 47유로였나 했다. 어떻게 배를 한번 더 타는데 오히려 가격이 다운이 되지? 패키지 가격이라 저렴하다고 하는데 정말 이해할수 없는 일이 었다. 여튼 나는 싸게 잘 갔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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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의 유명한 건축가 알바르 알토가 만든 핀란디아 홀)

아메리카노를 모르는 바리스타

커피를 워낙에 좋아하다 보니 여행을 다니면서도 커피를 많이 마신다. 특히나 이 북유럽은 일인당 커피 소비량이 세계 최고 일 정도로(핀란드가 1위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들이라 얼마나 좋은 커피를 마실까 하는 궁금함에 항상 커피를 사 마셨다. 그런데 탈린의 커피 키오스크에서 황당한 일이 있었다.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예? 에스프레소요?

-아니요. 아메리카노여.

-에스프레소여?

-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가 뭐에요?

엥? 나는 그 말을 듣고 눈만 깜박 거리며 한 2초간 그여자를 바라봤다.

-엄…………. 그러니까……. 큰 컵에 우선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구요.

그 여자는 열심히 따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부어 주세요.

그 바리스타도 나를 한 2초간 깜박이며 보다가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

-그게 아메리카노에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으로 아메리카노 라는 단어가 세계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북유럽 사람들의 커피 습관을 보니 여기 사람들은 에스프레소는 사용을 잘 안하고 드립커피를 많이 끓여서 보온병 같은데 보관해서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카페에 가면 에스프레소 머쉰들이 다 있고 에스프레소를 포함한 여러 커피들을 만들어 마시는데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마시는 커피는 일반 드립커피이며 그냥 커피라고 하지 따로 아메리카노라고 하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배를 타기 위해 항구로 가는 길에 다시 그 키오스크에서 커피를 샀다. 바리스타는 밝에 웃으면서 ‘아메리카노여?’하면서 물어본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고 따듯한 커피를 사서 항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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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는 헬싱키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배)

2011년 6월 10일 금요일

1 만원으로 키예프에서 살 수 있는것들

아침에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맥주 한 병과 언제 사둔건지 기억도 안 나는 감자 2톨만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살다가는 제명에 못 살겠다 싶어서 학교 끝나고 바로 장을 보러 갔습니다.

이것저것 몇 가지를 사고 가방에 식품들을 꾸역꾸역 사가지고 오는데 문득 전에 인터넷에서 본 10달러로 살수 있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각 도시별로 올라온 사진들을 봤습니다. 그래서 저도 해 봤습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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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달러 정도면 이나라 돈으로 약 80그리브나 입니다. 그래서 제가 산 식품들 중에서 80그리브나 정도를 맞추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감자 1kg(8), 당근 1kg(11), 양파1kg(10), 체리 500g(11),우유 1팩(6), 호밀빵 1개(6), 닭가슴살 2덩어리(20), 계란 10개(8) 이렇게 사고 나니까 80그리브나네요.

가로에 들어간 숫자는 가격입니다, 우유는 사진에는 2+1을 해서 3팩을 샀지만 계산에는 1팩만 산걸로 했습니다^^. 그리고 체리도 1킬로를 샀지만 500그램만 계산했고 당근도 2킬로 샀지만 1킬로 산 걸로 계산했습니다. 저녁에 출출하면 당근 깎아서 으적으적 먹거든요. 그래서 당근은 좀 많이 삽니다.ㅎㅎㅎ

요즘 한국에선 만원이면 아무것도 살게 없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니 그래도 이나라는 아직 물가가 싼 편이구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근데 여기서도 오늘 장보면서 이것저것 사고 나니 거의 300그리브나 가까이 지출했네요. 제가 좋아하는 체코산 흑맥주 크루쇼비체 4병을 묶어서 세일로 팔길래 혹 해서 사고 한번 사면 오래 두고두고 먹는 오트밀도 좋은걸로 샀더니 돈이 생각보다 많이 나갔네요.

여튼 결론은 지출은 줄이고 소비는 계획적으로.

(흠… 이 EBS학생드라마 같은 건전한 결론은 뭐지……. -_-;;)

2011년 3월 29일 화요일

우크라이나의 신비. 즐비한 고급승용차들.

키예프에 잠깐 동안이라도 있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이 나라는 한국에 비해 일인당 GDP가 3배나 적고, 혹은 6000달러 밖에 안되는데 어찌 이렇게 고급 차들이 많냐고. 정말이다. 키예프 시내 도로에서는 정말 10초에 하나씩 벤츠, 아우디, BMW, 포르쉐, 렉서스, 인피니티가 굴러다니고 시내 자주 다니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번은 마이바흐나 마세라티, 벤틀리도 본다. 그러니 여기 사는 외국인들이 정말 신기하게 생각되는 부분이다.

나도 그런 의문을 가지고 나름대로 이런 현상에 대해 연구와 명상을 해본 결과 몇 가지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렸다.

 

   1)엄청난 빈부격차

이 나라는 소수의 인구가 대부분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소득불균형이 큰 나라다. 모든 인민은 평등하다(라고 쓰고 가난하다라고 읽는다)라는 구호아래 건설된 사회주의가 무너진 지 10년도 안되서 국가의 대부분의 부는 일부 소수 사업가들의 손에 넘어갔고, 정치와 경제의 끈끈한 형제애 덕분에 부의 집중화는 더욱 심각해 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돈이 넘치는 사람들이 돈 두었다가 뭐하겠는가 그냥 고급차들 지르는거다. 그러면서 자기 부인도 사주고 애들도 사주고 애인도 사주고 2번째 애인도 사주고 3번째 애인도 사주고 사돈도 사주고 사돈의 팔촌까지 사주고 나면 키예프에서 1시간에 한번 고급차들을 보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2)엄청난 지하경제규모

내가 여기서 말하는 지하경제규모라는 게 꼭 불건전한 돈 뿐만 아니라 소득세에 신고가 안된 수입도 포함시긴 단어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GDP니 GNP니 하는 통계들의 중심적인 역활을 하는 것이 세금과 지출이다. 세금이 얼마나 걷혔느냐, 소비가 얼만큼 되었느냐에 따라 이 나라는 소득이 얼마가 된다 라고 어림잡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집계된 통계에서 물론 이곳의 일인당 GDP는 낮게 나올 수 밖에 없다. 그 첫번째 이유로는 소규모 농사꾼들이 많아서 이다. 우크라이나는 농업국가이다. 하지만 아직 기업화 된 농부들은 많이 없고 개인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의 소득은 세금에 쉽게 잡히지 않는다. 즉 일인당GDP를 갉아먹는 형국이 된 것이다. 두번째 이유로는 부정으로 신고하는 소득때문이다. 정식으로 소득세를 안내고 법정최소임금(현재 월 약900그리브나 즉 120달러 정도임.)으로 등록을 하고 세금납부하고 월급은 그냥 봉투에다 현찰로 주게 된다면(실제로 이 나라 중소기업에서 자주 사용되는 방법이다.)  고용주도 좋고 노동자도 좋은 윈-윈 월급지불방법이 탄생한다. 정부쪽에서도 이것을 알고 자주 캠페인을 벌이지만 효력은 없는듯 하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뭐하겠는가 그냥 고급차 지르는거다. 사돈의 팔촌까지는 못사주겠지만 애들이랑 자식정도는 해 주지 않겠는가? 그럼 이제 키예프에서 50분에 한번은 고급차들을 보게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3)엄청난 부동산 광풍

  키예프에서 고급 명차의 대중화 시대를 연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략 2000년 쯤에 닭장같은 소련식 아파트 방 2개 거실1 짜리 한채 사는데 한 50,000 ~ 60,000달러 정도 한다고 했었다. 근데 부동한 광풍이 한창이던 2007년, 08년에는 비슷한 수준의 아파트가 150,000~170,000달러까지 올랐으니 할말 다 한거 아닌가? (요즘에는 한 100,000에서 120,000달러 정도 한단다) 이런 부동산 거품에서 아파트 소유자들과 건축업자들은 그냥 돈방석에 앉게 된거다. 이렇게 번 돈으로 뭐하겠는가? 그냥 고급차 지르는거다. 아파트 한채당 고급차 한대씩 샀다고 하면 키예프에서 1분당 한번은 고급차들을 보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4)엄청난 대출규모

  위 부동산 거품과 비슷한 이야기인데 거품이 생기면서 부터 외국의 싼 자본이 엄청 나게 들어왔다. 아니,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거품이 생긴게 맞겠구나. 특히나 유럽쪽 자본이 많이 들어왔는데 이 나라는 그리브나 대출이자가 월 20%에 육박한다.  그때 당시 유로의 대출 이자는 많아봐야 3%대. 그러니까 그냥 미친듯이 외국에서 돈 빌려와서 미친듯이 외국차 지르는거다. 그러고 보니 독일 놈들이 못된 놈들이네. 지네돈 빌려주면서 지네 차 사게하고. 즉 이자는 이자대로 받고 차값은 차값대로 받고… 즉 이래서 키예프에서 30초당 한번은 고급차를 보게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5)엄청난 사람들의 인식

  이나라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준비가 없다. 지금 있는 돈, 번 돈 그냥 오늘을 위해 쓰는거다. 미래를 위한 저축? 그런 건 없다. 오늘 번 돈으로 내일 놀고 돈 다 떨어지면 또 일하면 된다. 일이 없다고? 그럼 시골마을에 있는 자기 다차(여름별장)에서 감자나 캐 먹으면서 살면 된다. 그리고 선량하게 꼬박꼬박 세금을 낸 사람들 덕분에 앞으로 은퇴하면 정부에서 적게나 마나 연금을 주는데 저축을 따로 할 이유가 없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의 인식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낸 가장 중심적인 이유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만약 이나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미래를 생각했었다면 외국투자자본이 밀려올때 바로바로 외국차를 사지 않고 자기네 나라 자동차 공장에 투자를 해야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 즐기는 이런 풍조가 손쉽게 구입할 수 있고 멋지게 보이는 외국차들을 사게 하는 것이다. 왜냐면 난 지금이 급하니까. 지금 당장 멋있어 보여야 하니까. 그냥 소련시대 억눌린 소비욕구가 이 짧은 기간에 폭발한 것이라고 좋게 생각해 두자. 즉 이래서 10초에 한번은 고급승용차를 보게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내가 여기서 열거한 이유들이 나도 정확하게 맞는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 충분히 가능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것 외에 수많은 이유들이 있을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키예프의 도로는 막힌다.

2011년 2월 10일 목요일

여행 이후.

여행 이후라고 제목을 만들어놓고 보니까 블로그에 글 올린것만 보면 스페인 여행 이후라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여행은 1월 14일부터 27일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말합니다. ^_^

그 인증 사진으로 몇장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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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의 두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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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의 사탑과 두오모와 세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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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콜로세움과 이상하게 맘에 드는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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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주변섬 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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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오레 성당 종탑위에서 본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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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루테 성당의 노을)

2주동안의 이탈리아 여행이었는데요, 밀라노부터 시작을 해서 피렌체, 피사, 시에나, 로마, 아씨시,  베네치아에서 다시 밀라노로 돌아오는 루트였습니다. 옛날부터 가고 싶었던 여행이었던 만큼 기대도 많이 하고 갔었고 그리고 놀랍게도!!! 그 기대를 만족시켜준 나라가 이탈리아 였습니다. (그만큼 여행 후유증도 심했습니다.)

이탈리아는 기차노선이 편하게 구석구석 잘 연결되어 있어 도시간 이동은 모두 기차를 이용했구요. 이동기간이 긴 만큼 생각하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만난 한국사람들한테 받은 인상은 ‘이탈리아는 지저분하고 좀도둑 많고 위험한 나라’라는 생각으로 오시는 분이 많아 보였습니다. 근데 지저분 한건 저는 딱히 느끼지 못했고,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탈리아에 올때 주로 독일이나 스위스를 거쳐서 오는데 정리 정돈이 잘된 나라에서 넘어와서 그렇게 보일수도…^^) 위험한건 뭐, 야밤에 다니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관광지에는 경찰이 항상 대기해 있어서 괜찮았고 기차의 좀도둑은 한번도 못봤습니다. 물론 조심해서 나쁠것은 없지만 너무 자기보호에 신경쓰느라 좀 열린 마음으로 이탈리아를 바라보지 않는게 아쉬웠습니다.

겨울에 다니는 여행은 좋은점이 관광객이 없어서 사람에 치이지 않고 예약같은거 할 필요도 없이 널널하게 다닐 수 있단는 점 입니다. 반면에 그 기간동안 수리를 하는 건물들이 많아서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는게  좀 제약이 갈 수도 있구요. 저는 뜨거운 여름 성수기에 줄서서 기다리고 사람에 치이면서 다니느니 겨울에 한적하게 다니는게 더 나아 보이네요.^^

그리고 이탈리아를 여행하시는 분은 무조건 한인 민박으로 잡으시기 바랍니다. 이탈리아의 한인민박은 사실상 거의 같은 가격입니다. 30유로. 가격만 비교해 본다면 일반 유스호스텔 보다 비싼거죠. 유스호스텔은 한 20-25유로 하니까요. 하.지.만. 한인민박은 아침, 저녁을 줍니다. 그것도 한식으로. 이렇게 따지면 아무리 아껴서 식사를 한다고 해도 한끼에 약 10유로는 나가는데 맘 편하게 아침저녁 다 주는데 30유로면 싼겁니다. 일반적인 유스호스텔은 아침만 주거든요. 아님 그것 조차도 안주던가. 오히려 돈이 절약이 되니까 한인민박으로 가세요! 특히 베네치아에 있는 슬립웰 이라는 민박(제가 갔던곳 입니다.^^) 강추. 우선 위치가 베네치아 제일 중심 산마르코 광장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여행하기 정말 좋은 위치 입니다. 주인부부도 엄청 친절하구요. ^^

처음에 이탈리아에 갔다와서 블로그에 올릴 말이 엄청나게 많을것이라고 생각하고 갔었는데 정작 갔다오니까 딱 한마디로 줄어드네요. 직접 가봐라. 이번 여행은 글로써 설명이 안되는 멋진 여행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어디서 시작을 해야 할지, 무엇을 설명해야 할지….

   무슬림들이 일생에 한번 메카에 순례를 해야 하듯, 사람이라면 정말 일생에 한번 이탈리아의 로마나 베네치아를 가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