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2일 화요일

현지에 살고 있는 친구 하나 믿고 떠난 모로코 여행기 - 1편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긴 시간 동안 여행을 하는 것에 이제 많이 지쳐 있었다. 여행권태기라고 할까, 여튼 이젠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있었었다.

  스스로 짠 일정이지만 최근 여행은 그저 원래 세워둔 계획대로 일정만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알헤시라스(Algeciras)에서 세우타를 거쳐 모로코로 들어오면서 이 무기력증은 카오스적인 모로코의 도로에서 바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스페인에서 모로코까지 배로 이동안 경로는 http://blog.naver.com/misha22c/220246399414  이 링크에서 볼 수 있다.)

  모로코에서 처음 만난 도시는 테투안(Tetuan).

  스페인 세우타 국경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란택시를 타고 테투안의 시내에 도착해서 느낀 첫인상은 ‘시끄럽다’였다.

  빵빵 거리는 차소리와 목젓에서 올라오는 ‘흐’소리가 심한 아랍어의 강한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리고 스페인보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 때문에 내가 드디어 아프리카에 도착했음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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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내려 가장 처음 본 건물. 잠시 들어가보니 모스크였다.)

 

  머리를 세차게 한두번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가만히 있다가는 뜬눈에 코 베일 것 같은 혼란스러움에 바짝 긴장을 하기로 했다. 우선 모로코라는 나라를 알 수 있을 때 까지는 말이다.  우선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1) 환전. 모로코에는 11일 동안 있을 예정이지만 한 200달러만 우선 바꾸기로 했다.

2) 오늘 셰프샤우엔(Chefchaouen)으로 가는 버스 티켓 사기

3) 휴대폰 데이터가 가능한 선불 USIM 칩 사기.

  환율이 조금이나 더 높은 곳을 찾기 위해 우선 시내 중심지로 가야 한다.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영어가 안 통한다!!!!  다시 히잡을 쓴 아줌마에게 물어보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빠르게 사라지신다!!!! 어쩔 수 없다. 그냥 사람이 제일 많이 향하는 길로 가보기로 했다.

  가다 보니 운이 좋았는지 중심지 분위기기 많이 났다. 은행도 프랑스계와 모로코 현지 은행이 줄줄이 있는 거리도 발견해서 환율이 좋아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서 환전을 했다. 프랑스계 은행인 파리바 은행이었는데 역시나 은행은 모로코도 에어컨이 빵빵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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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전한 은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왕궁. 모로코의 대도시에는 왕궁이 산재해 있다.)

 

  은행에서 환전을 하면서 다행이 영어가 조금 통하길래 시내로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어보니까 은행이 있는 이 스트리트가 프랑스 지역의 중심지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만약에 메디나를 가고 싶으면 그리고 살짝 뜸을 드리더니 문 옆에 있는 덩치 큰 경비 아저씨를 부르더니 아랍어로 “크”자와 “흐”자 밖에 안 들리는 말로 설명을 해 주고 나에게는 ‘He will show to you.’라고 짧게 미소 지으며 알려 주었다.

  경비 아저씨는 나와 같이 은행문을 열고 나와 손가락으로 열심히 설명을 해 주셨다. 어찌됐건 오늘의 퀘스트 중에 첫 시작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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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구의 중심거리)

 

  셰프사우엔으로 가는 버스 티켓을 사러 그랑택시에서 내린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통신사 매장이 보였다. (통신사는 세계 어딜 가든 분위기가 비슷하다. 휴대폰 목업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라든가 통신비 가격이 적혀 있는 광고판이라던가 얼추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거기서 직원의 친절한 설명으로 Meditel사의 선불폰 유심을 사고 통신비도 미리 충전을 해 두었다.

  그리고 바로 현지에 살고 있는 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학교때 동창이었던 S는 모로코 혼혈인데 지금은 카사블랑카에서 살고 있었다. 내 목소리를 듣고 반가워 약 5초동안 괴성을 질러대고 잘 도착했는지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나한테 거기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고 버스는 CTM이 좋으니까 그걸 타고 오라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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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투안 메디나 전경. 테투안은 도시가 하얀색이다.)

 

  이렇게 두번째 퀘스트도 기분좋게 끝났다. 이제 버스터미널로 가서 셰프샤우엔 행 버스티켓만 사면 된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시 버스터미널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CTM 이라고 대문짝 만하게 적혀 있는 간판이 있어서 바로 약 2시간 후에 떠나는 셰프샤우엔 행 버스티켓을 샀다. 나한테 배낭을 보내는건 추가 요금이 드니까 10디르함(모로코 화폐 단위)를 추가로 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ㅇㅋ! 그정도야. 그리고 체크인 시간이 있으니까 20분 정도 먼저 오라는 이야기도. (흠. 버스를 타는데 체크인 시간이 따로 있다고?)

  여튼 이렇게 싱겁게 오늘의 퀘스트를 모두 끝내니 배고픔이 몰려왔다. 버스터미널을 나와 옆 블럭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봤다. 모로코식 서브웨이 샌드위치랄까? 내가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주는 재료를 직접 빵에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는 곳이었다. 내 팔둑만한 바게트 빵을 반으로 갈라 햄과 야채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고 시원한 음료수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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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샤우엔의 색깔은 하늘색이다.)

 

  떠날 길이 생겨서 그런지 이제 테투안이 눈에 좀 보이기 시작했다. 테투안은 도시 전체가 하얀색이다. 모로코 도시들을 다니면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최소한 내가 갔던 도시들은) 도시마다 각자의 색깔이 있다. 그리고 그 색에 따라 도시 택시도 색을 칠한다. 테투안은 도시의 색깔이 하얀색이듯이 택시들도 거의 다 흰색이었다. 하지만 카사블랑카나 라밧 같은 서양인들의 세운 도시나 현대적인 도시는 해당사항은 아니다.

  그리고 유럽의 대도시에는 대성당과 그 앞 광장, 시청이 있는게 도시의 기본이라면 모로코의 도시들은 시내에 ‘메디나’라는 미로같은 구시가지가 있다. 제일 유명한 메디나는 역시 페스의 메디나.(페스 소개하는 부분에서 다시 설명하겠음.)

  테투안도 당연히 메디나가 있었는데 아직 적응이 덜 되어서 그런지, 그리고 한번 들어가면 ‘들어갈때는 니 맘대로 였지만 나올때는 아니란다’ 라는 법칙이 적용되는 곳이어서 그런지 버스 시간을 노치게 될 수도 있어서 테투안의 메디나는 들어가지 않고 유럽식으로 직선 도로가 죽죽 나있는 프랑스 지구에서만 여기저기 둘러보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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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샤우엔의 메디나 뒷골목)

걸어 다니다 아무 카페에 들어가 커피도 마시고 사진도 찍고 왕궁도 구경하다 보니 버스 시간이 다되어 터미널로 다시 돌아왔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공항처럼 짐을 먼저 부치는 곳이 있어서 짐을 먼저 건네주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거의 정시에 출발했고 에어컨도 설치 되어 있어서 시원하게 셰프샤우엔까지 잘 도착했다.

  스페인에서 축축 늘어졌던 긴장감은 테투안을 떠날 때까지 얼음물에서 갓 건져낸 냉면 면발 같이 쫄깃해져 있다가 셰프샤우엔으로 떠나는 버스에서야 살짝 풀어져 한숨 푹 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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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을 달리다 눈을 뜨니 황량한 창밖 풍경이 보였다. 나무는 거의 없고 낮은 관목만 있는 산들과 풀풀 날리는 먼지 사이로 양떼를 몰아가는 농부도 보였다.

  그렇게 셰프샤우엔에 도착했다. 셰프샤우엔의 버스터미널에서 다음날 페스로 향하는 버스표를 사기로 했다. 페스로 가는 버스는 두개의 회사가 있었는데 CTM과 현지 기업이 있었다. 가격은 차이가 좀 있었고 중요한건 CTM은 출발 시간이 2시간이나 늦어서 현지 버스를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건 정말 지옥의 시작이었다.)

  버스티켓을 사고 전날 스페인에서 에약해 둔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밖에 쁘티택시가 보이길래 한번 물어보았다. 주소를 알려주니 알고 있는 호텔(말이 좋아 호텔이지 여관 수준이었다. 하긴 1박에 20달러 하는 방에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겠느냐만….)이라고 타라고 한다.

  -가격은요?

  -30디르함!

  -예????? 10이면 간다고 알고 있어요.

  -20!

  - 다른거 타고 갈께요.

  -15! 15! 15!

  -그럼 10!

  -안돼…10은

  -그럼 13?

  -앉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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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가지 않아서 호텔에 도착했다. 13도 좀 아까운 거리였지만 처음이니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  여튼 나는 50디르함을 건네주고 잔돈을 받았다. 택시가 떠나고 호텔에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돈을 내려고 지갑을 열었는데 아저씨가 준 잔돈이 좀 이상했다. 다시 꺼내서 계산해 보니 10디르함을 적게 주었다. ㄱㅅㄲ………. 혈압이 빡 올라 뒷목을 잡았지만 어쩌겠는가. 그 자리에서 다시 세어보지 않은 내가 잘못이지.

  호텔에서 짐을 풀고 시내로 나갔다. 호텔 프런트의 아가씨는 수줍음이 많은지 눈을 잘 못 마주치지 못하며 나한테 메디나로 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아. 반은 영어, 반은 스페인어로. 다행이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으며 길 물어보고 스페인어로 알아듣는 건 어느정도 익숙해 져서 잘 찾아 갔다. 작은 성문을 지나 메디나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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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늘색으로 칠해진 도시는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건지 땅이 하늘로 오른건지 알수 없게 땅과 하늘의 경계를 흐트려 놓았다.

푸른색 때문에 시각적으로 시원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늘진 좁은 골목길 사이로 시원하게 식은 바람 때문인지 쾌적한 공기에 아련한 나무 타는 냄새가 묻어 났었다.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좁은 골목 덕분에 차소리는 들리지 않고 저 멀리 아이들 뛰어노는 목소리만 메아리가 되어 웅웅거리며 들려 왔다. 메디나에 들어선 순간 하늘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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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도시안의 방랑자가 되어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외국인이 신기해서 수줍게 웃으면서 쳐다보는 아이들과 하얀 모로코 전통 옷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그늘에 엎드려 자기 앞발에 침을 묻혀 세수를 하는 고양이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빤히 바라보는 상인들도 있었다. 푸른 색깔의 하늘도시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살아 있는 마을이었다.

한참을 걸으며 사진을 찍는데 청년 하나가 헬로! 하면서 다가온다. 확실히 먼저 말 걸어오는 사람치고 나한테 이익되는 사람은 극소수이기에 우선 긴장하고 쳐다 보았다.

친한척을 하며 관광객인지 물어본다. 그러면서 하시시가 필요 없는지 물어본다. 즉 대마초를 판매하려고 나한테 달라 붙은 거다.

도시의 아름다움에 정신이 팔려 있으려니 바로 이렇게 다시 긴장감을 쫄깃하게 만들어 준다. 이런 썸타는 기분인 나라는 처음이다. 마약상 한테는 필요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무슨 미련이 남는지 가는 길에 계속 달라 붙어 그래도 한번 해 봐라. 얼마 안한다 이런 말을 하며 귀찮게 하길래 인상을 팍 쓰면서 ‘아, 필요 없다고!’ 크게 말하자 그제서야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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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샤우엔은 전체적으로 조용한 마을이었다. 중심 광장만 삐끼들이 호객행위를 하느라 좀 소란스럽고 다른 곳들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일상적인 주거지라 그런지 조용했다. 메디나 옆에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 쪽으로 나가자 카펫을 빨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오렌지 주스를 만드는 아저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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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스를 주문하면 이렇게 그 자리에서 바로 즙을 짜 준다.)

 

목이 말라 아저씨한테 한잔 달라고 말했다. 여기서 직접 짜 주는 오렌지 주스는 정말 천상의 음료였다. 모로코에 와서 하루에 4잔은 기본으로 오렌지 주스를 마셨을 정도로 달고 맛있었다. 값도 4-5디르함 정도로 (약 500원 정도) 쌌고 여기저기 파는 곳도 많아서 손쉽게 마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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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됬건 셰프샤우엔에 와서 그동안 지루했던 여행이 다시 생기를 찾았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인데 형언할 수 없는 셰프샤우엔의 분위기는 모로코에 대한 첫인상 마저 매우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추가1) 원래 셰프샤우엔에는 2-3일 있고 싶었으나 3일 후에 마라케시에서 S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셰프샤우엔과 페스에서 오랬동안 머무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셰프샤우엔과 페스는 1일씩 밖에 구경을 못했다.

추가2) 모로코의 택시는 도시내부를 돌아다니는 쁘티 택시(Petit Taxi)와 도시간을 이동하는 그랑택시(Grand Taxi)로 나뉘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