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9일 금요일

현지에 살고 있는 친구 하나 믿고 떠난 모로코 여행기 - 2편

안타깝게도 맘에 꼭 들은 셰프샤우엔은 다음날 아침 떠나야 했다. 이미 아침 10시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사 두었기 때문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짐을 정리를 끝내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조식이 포함이 안된 1박이어서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아침을 먹을 생각으로 일찌감치 호텔을 나왔다.
아 이번 모로코 여행의 루트를 잠시 설명 하자면:
셰프샤우엔-페스-마라케시-사막투어-라바트-카사블랑카-엘 알자디다 이렇게 여행을 했고 사막투어가 끝난 뒤 친구가 살고 있는 카사블랑카로 이동해 라바트와 엘 자디다는 당일 여행으로 다녀왔었고 총 여행일정은 11일 이었다.
셰프샤우엔을 그렇게 맘에 들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1박만 하고 페스로 이동한 이유는 2일 후에 마라케시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마라케시 이후에 페스로 가자니 루트가 이상해 지고 어쩔 수 없이 짧게나마 페스를 구경하고 그날 밤 기차로 마라케쉬로 이동하기로 했다.

(창밖으로 본 모로코 풍경. 이런 황량한 풍경이 계속 이어졌다. 아마 추수가 끝난 시즌이었을듯.)
   
그렇게 아침부터 셰프샤우엔의 버스터미널에서 페스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도 문을 열고 있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첫 손님으로 샌드위치를 사 먹고 터미널 앞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 4명 터미널로 들어와 나한테 페스 가는 버스 기다리냐고 물어본다. 나도 그렇다고 하자 같이 이야기를 하게 됬다. 미국에서 온 남2명 여2명의 젊은 청년들은 친구끼리 여행을 왔다고 한다. 나한테 피곤해 보인다고 말하길래 산티아고 순례길 이후 계속 이렇다고 이야기를 해 주니 "아! 산티아고 걸었었어요? 대단하다! 나도 해 보고 싶은 여행인데 엄두가 안나."다고 한다.

(페스의 기차역. 모로코의 대도시 기차역들은 다들 새로 진 건물들이 많았다.)
 
10시가 넘어 어느새 10분이 됬다. 그런데 버스는 없었다. 들어오는 버스도 없고 나가는 버스도 없다. 우리 5명중 한명이 터미널로 가서 물어보고 왔으나 모른다고 한다.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11시가 넘고 11시 반이 되서야 털털 거리며 버스 한대가 들어왔다.
설마, 설마, 설마 하는데 역시나 70년대 영화에서 봤을 법한, 시커먼 매연을 뿜어대며 다가오는 그 버스가 페스로 가는 버스라고 한다. 친절하게 터미널 직원이 우리한테 다가와 알려주기까지 한다.
우리 5명은 벙쪄서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에어컨은 나오지도 않는 버스에 열리는 창문은 손바닥 만한 크기로 바람이 분다고 해도 한낮 태양의 열기로 뜨듯하게 덥혀진 바람만 훅 들어왔다.

(페스 역 앞에서 먹은 음식. 오랜만에 정식으로 먹은 느낌이었다.)
   
표 검사 하는 사람이 우리보고 짐을 아래 넣을거냐고 물어보길래 가방을 버스 아래 트렁크게 넣었다. 버스 안에는 사람이 가득 차 있어서 시끌시끌하고 시골 장날 나가는 사람들 처럼 짐들이 하나 가득이었다. 앉을 자리도 겨우 겨우 찾아서 뒷편에 반쯤 찌그러져서 앉아 있는데 아까 그 표 검사하던 사람이 우리한테 다가와 짐 값으로 20디르함씩 내라고 한다. 우리 5명은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러말이 없었다. 표에 당연히 짐값이 포함되어야 하는건데 줄수 없다고 싸웠지만 그럼 내리란다.
밑도끝도 없는 말싸움에 결국 20디르함씩을 더 주고 버스는 출발했다.
왜 모로코 사람들 조차도 CTM 버스를 타라고 하는지 알겠다. 결국 우리는 CTM 버스보다 더 늦게 출발하면서 더 나쁜 서비를를 받고 에어컨도 안나오는 버스에 돈은 10디르함을 더 내고 탄것이었다.

(페스의 왕궁. 페스는 현 여왕의 출생도시라 여왕이 특별히 아끼면서 많은 지원을 해 주는 도시라고 한다.)
   
가래끌어모으는 소리를 밷어내며 차는 출발했다. 황량한 들판을 지나 산 하나를 올라 이름 모를 마을에 도착했다.
시장 한 가운데(터미널이 시장 옆에 있는 것인지 시장이 터미널인지는 모르겠다만) 멈춰 서자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 버스에 타는 사람,  구걸하는 아이, 빵 파는 아저씨, 휴지 파는 아줌마들이 엉켜 버스 안도 시장판이 되었다. 버스가 출발 하려고 하자 구걸하는 남자가 돈을 주지 않으면 안내리겠다고 난장을 피워 표 검사하던 남자가 결국 동전 몇개를 주고 끌어내렸다.
또다시 황량한 들판을 달렸다. 이제는 사람이 사는 마을인가 싶을 정도로 고요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역시 이름도 모른다. 버스가 선 곳 앞에는 음료수와 식품을 파는 작은 가게가 있었고 그 옆에는 케밥을 파는 식당이 있었다. 사람들이 몇명 내려 음료수를 사거나 점심을 안 먹은 사람들은 점심을 사 먹었다.
같이 탔던 미국 청년들도 시원하게 냉장고에서 꺼낸 콜라를 사서 마시고 나한테도 한모금 마실거냐고 물어보았지만 나는 이미 더위에 탈진한 상태라 뭐 먹고 싶은 생각도 아무런 욕구도 없었다. 더위 때문에 혼이 빠져버린 느낌이라 그냥 빨리 도착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 이었다.

(페스 메디나의 성벽)
   
창문이 나 있는 곳에 자리가 생겨 그쪽으로 빨리 옮겨 갔으나 햇빛이 드는 쪽이어서 오히려 더위에 육포가 되어갈때 쯤 누르스름한 페스의 성벽이 보였다. 버스에서 내린 시간은 3시 반. 예상대로 였다면 1시에는 이미 난 페스에 와 있어야 했지만 정말 글로 남길 수 없을 정도의 욕이 나오는 버스 때문에 페스는 둘러 볼 여유도 얼마 없게 되었다.
페스의 왁자지껄한 버스터미널에서 미국 여행객들과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쁘티 택시를 타고 우선 페스 기차역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지나가는 페스는 시내가 줄줄이 성벽으로 둘러쳐셔 있어서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반면에 역은 새로 지은 청사라 시원하고 현대적인 모습이라 페스는 뭐라고 단정지을수 없는 인상을 주었다.
역에서 밤 1시쯤 기차를 타서 아침 9시쯤 도착하는 기차가 있어서 그 표를 샀다. 그리고 혹시나 가방을 둘만한 짐 보관소가 있는지 믈어보았으나 기차역에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혹시 그럼 버스 터미널에는 있는지 물어보니 자기는 모르겠다고하며 표 파는 사람이 어깨를 으쓱 했다.
이 13킬로 배낭을 맨 상태로 한낮 페스 시내를 구경할 생각을 하니 벌써 지치는듯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도 없는 노릇 이기에 베낭 끈을 빳빳하게 동여매고 기차역을 나왔다.

(페스 메디나를 들어가는 성문. 이런 성문이 여럿 있으나 인간 최대의 미로 라는 페스의 메디나는 내가 들어간 이 문을 다시 나오게 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들어가는 것은 너 맘이었지만 나올때는 아니란다….)
 
우선 점심도 못 먹고 버스에서 사우나를 한 생태였기에 기차역 주변 식당에 들어갔다. 모로코에서 희안하게 독일 방송을 틀어놓고 있었던 식당에서 스프에서 샐러드 고기까지 있는 정찬시켜 먹었다. 비록 샐러드는 거의 남겼지만….
먹을게 좀 들어가고 쉬고 나니 힘이 생겨 택시를 잡고 페스 메디나 성문으로 항했다. 성문 앞에는 축제라도 있는지 악단들이 쿵짝쿵짝 전통음악을 연주고 있었다. 괜한 팡파레를 받는 느낌으로 메디나 안으로 들어갔다.
페스의 메디나는 전체가 시장이면서 거주지인 독특한 곳이었는데 길이 좁고 태양이 잘 보이지 않아 지도를 보고 있어도 내가 있는 위치를 알기 힘든 미로 같은 곳이다. 그래서 현지 아이들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돈 몇푼을 받고 길을 안내해주는 일을 하기도 한다. 나도 이용한 서비스 이기도 했다….

우선 페스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인 가죽염색공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생각하며 걷는데 오렌지 주스파는 곳이 있어서 거기서 시원한 주스 한잔을 하며 가죽 염색공장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 한 꼬마 한명을 데려 왔다. 그 꼬마는 내가 무거운 배낭을 맨건 전혀 고려해 주지 않고 달리듯 염색공장으로 날 안내했다.
염색공장에 들어서자 역한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그런데 가게 주인이 지금은 공장 일하는 시간이 다 끝나서 볼거리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구경만 하고 가겠다고 하니까 박하줄기 하나를 주고 안내를 해 주었다.


아무도 없는 염색공장에 구겅하는 곳에도 나만 있어서 이것도 좀 색다른 관경이었다. 다른 날이었으면 둥구런 웅덩이에 색색의 염색약이 있었을텐데 아쉽기는 했으나 나쁘지 않았다.영화 세트장을 상상하게 하는 염색공장 전망대에 한참을 있다가 내려왔다. 이제 가게 주인의 상품 설명이 이어졌다. 고개를 끄덕이며 3분 정도 듣다가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고 하자 의외로 말없이 보내둔다. 아마 돈 없는 놈이라는게 얼굴에 써 있나보다.
가게를 나가자 돈 못받은 빚쟁이 처럼 그 꼬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보고 아르간 오일 공장을 안내해 준다고 하여 거기까지는 같이 갔다 그러나 흥미가 없어서 휙 둘러보고 바로나왔다. 이제 그 꼬마는 다시 어딜 데려가려고 하길래 이제 혼자 느긋이 다니고 싶어서 이제 안내를 안 해줘도 된다고 그러니 손을 내민다. 맘같아서는 5 디르함만 주고 싶었지만 주머니에 10디르함 짜리 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10디르함을 주었다. 애는 적다고 징징 거리지만 썩소를 지으며 어쩔수 없다고 하자 체념을 한듯 하다. 그리고 다시 날 따라오라고 한다. 어딜 가려고 하나 하고 한참을 따라 갔는데 내가 처음 왔던 곳으로 다시 날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이 길로 죽 올라가면 메니다나 가나는 곳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생각보다 나쁜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더워 당장이라도 쓰러질것 같은데 그날 페스에서는 마라톤 대회가 열려 사람들이 성벽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메디나(라고쓰고 미로 라고 읽는)를 설설 걸어다니면서 돌을 천조각 만지듯이 조각하는 모로코 인들의 엄청난 손재주에 놀라며 사진을 찍는데 슬슬 어깨가 아파온다. 역시나 베낭을 메고 이 더위에 다니는 일은 잘한 짓은 아니다. 그래서 그냥 밖으로 나왔다. 오랜지 주스를 한잔 마시고 기차역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카페에서 앉아 있다가 기차역으로 들어갔다. 시원하니 앉아 있기 좋아서 거기서 기차 시간까지 책을 읽고 밤이 되서야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현대적인 기차였는데 문이 달린 한칸에 4명이 마주보고 앉는 구조였다. 내가 탔을때는 밤이어서 그런지 8명이 타는 칸에 나 혼자 있어서 '았싸!'하고 다리를 죽 펴고 누웠다. 기차가 출발하기 시작하자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왔다. 기분좋게 가방을 베고 잠을 잠깐 들었는데 얼마나 잤을까 너무 추워서 일어났다. 기차 칸의 불을 켜고 에어컨 조절하는 곳을 찾아봤지만 없었다. 돌아다니는 차장도 없어서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배낭에서 겨우 옷 하나 꺼내서 입고 수건을 발에 두르고 오돌도돌 떨면서 밤을 샜다. 모로코에서 추워서 잠을 설쳤다니…
이른 아침에 해가 나오자 그나마 추위는 좀 나아졌다. 기차는 라밧 역을 먼저 들렸다. 자동차 였다면 페스에서 마라케시 가는 직선 도로가 있지만 기차는 아직 없어서 라밧을 경유해서 빙 돌아 마라케시로 간다. 하지만 어제 셰프샤우엔-페스 버스에서의 고통을 다시 당하느니 기차를 타는것이 100배 낫다고 할 수 있다. 라밧에서 사람들이 많이 타서 내 칸에도 이미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이제는 앉아서 졸았다.

(마라케시의 기차역. 여기도 역시나 기차역은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다.)
 
이미 태양의 열기가 후끈 풍겨올때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마라케시의 색깔은 벽돌색이랄까 테라코타 화분 색이 이 도시의 첫 색깔이었다.
기차역을 나가자 모로코 친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으아!!!!! 하며 반갑게 안아주고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차에 내 배낭을 넣고 아침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이제서야 좀 맘이 놓인다. 아는 사람을 만나서 그런가.
아침을 먹으러 간 곳은 평범한 식당이었는데 납작한 냄비에 넓게 지진 계란과 빵, 꿀, 생올리브, 간 아르간 넛이 나왔다. 확실이 현지 사람이랑 가야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모로코에서 여태까지 먹었던 아침중에 제일 든든하게 맛있게 먹었던 식사 였다.
   

(현대적인 쇼핑몰. 모로코라고 낡은 작은 건물만 있는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잘 사는 나라에 들어가기에 시장규모도 크고 외국 자본도 많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나서 내 친구 커플은 이날 카사블랑카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내 호텔도 잡고 사막투어도 알아보고 시내 구경을 하기로 해서 마라케시의 메디나 쪽으로 갔다.
메디나 근처에 호텔 몇군데를 들어가 가격흥정을 대신 해 주고 방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호텔 주인에게 사하라 사막 투어도 알아봐 주어 그 주인을 통해 싸게 예약을 했다. (나중에 투어중에 만난 한국 분들에게 물어보니까 확실히 내가 싸게 신청한게 맞았다. 역시 현지 친구 있는건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마라케시의 메디나의 앞에는 엄청나게 큰 광장이 있는데 낮에 가면 내리쬐는 태양에 나무 한 그루 없는 벌판이라 삼겹살 굽듯 살이 익을 곳 이지만 밤이되면 사정은 완전 변한다.
그곳은 모로코에서 제일 큰 야시장이 열리는 광장이라 그곳을 제대로 느끼려면 밤에 가야 한다.
   


(쿠투비아 사원과 그 앞 마라케시의 야시장이 열리는 광장.)

(메디나 내 램프를 파는 가게. 아랍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마라케시의 밤시장 풍경)
 
친구들과는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카사블랑카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나는 여기에 남고 친구들은 차로 돌아갔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 슈퍼마켓만 다녀오고 해가 질때 까지 호텔에서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면서 쉬었다.
다음날 아침 사막투어를 가기 때문에 물을 미리 3명을 사 두었다. 사막투어를 가면 물 사는게 가격이 비싸지고 어짜피 차로 이동하는것이어서 내가 마실 물이랑 간단한 간식거리는 미리 사 가는게 많이 도움이 된다고 해서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두었다.
해가 지고 저녁도 먹고 야시장 구경을 하러 나갔다.
도대체 낮동안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 숨어 있었을까 궁금할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노래소리와 사람들 소리와 고기굽는 냄새, 요리 냄새로 정신이 없었다.
둘러보고 가격이 적당해 보이는 포장마차에 들어가 생선튀김과 양고기 꼬치구이를 시켰다. 긴 테이블에 여럿이 앉아 있었는데 마침 내 앞에 있던 사람들은 알제리에서 온 사람들 이었는데 마침 다음날 알제리 사람들과 한국이 월드컵 본선 게임을 하는 날이어서 날카로운 서로 팀의 응원을 하고 같이 사진찍었다.
즐겁기는 했지만 너무 많은 인파에 괜시리 불안해져서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아침 일찍 나가야 해서 일찍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