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이슬람 장인들)
1) 새벽 도착.
세비야에서 그라나다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일 늦게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에 왔도 도착한 시간이 새벽 3시 경이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때 날짜를 하루 늦게 검색해 볼 껄 하는 생각이 든다. 즉 12일날 떠나는 버스를 검색하면 12일 밤 12시 까지 나오는데 만약에 13일 것을 검색을 했으면 새벽 2-3시쯤 출발하는 버스를 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래도 알함브라 궁전을 보기위해서 일지감치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왔으므로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궁전으로 가기로 했다. 이번에도 문닫은 관광안내소에서 운좋게 버려진 지도를 득템하고 알함브라 궁전을 향에 슬슬 걸어갔다. 새벽 3시에.
<알함브라 궁전을 들어가기 위해 줄서있는 사람들.>
2) 코인락커.
출발할때 어깨에 매고 있는 베낭의 무게를 재 보니 약 5.5킬로 정도 된다. 많이 않은 무게지만 이것을 메고 하루종일 걸으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나는 이번에도 이 베낭을 지고 그라나다 버스터미널에서 알함브라 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 왜 이걸 버스터미널에 있는 코인락커에 안맡겨 둔거지? 그 생각을 했을 때 이미 나는 약 30이상을 걸은 상태였고 다시 돌아가기 싫었다. 어차피 버스터미널에서 다시 버스타고 발렌시아로 넘어갈것인데. 참 생각이 짧았다. 그리고 내 어께는 다시 고생길에 올랐다. 발렌시아에서는 반드시 코인락커에 베낭을 넣고 가리라.
3) 밤중에 도시 다니기.
늦은 밤에 외지의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은 어느 도시건 가이드북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짓으로 평가 받는다. 그건 사실이다. 주로 범죄는 밤에 생기니까. 그리고 밤에는 낮만큼 빠른 대처를 할 수 도 있는 것도 아니고. 근데 오히려 새벽 3-4시는 범죄자들도 잠자는 시간이어서 다니는데 위험 같은건 느껴지지 않았다. 거리에 사람이 있어야 위험을 느끼지. 길을 가다 어떤 병원 입구에서 담배피고 있던 사람들에게, 나는 드디어 만난 사람이 반가워서 길을 물어보려는데 내가 다가가자 오히려 흠짓 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저 힘없는 길잃은 여행객임을 알자 스페인인 특유의 친절함으로 내 지도를 펼치고 여기서 알함브라를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을 “스페인어”로 상세하게 알려주셨다.
처음에는 길을 잘못들어 시 외곽쪽으로 빠지는 길로 갔다가 헉 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결국에는 시 중심가를 지나서 알함브라를 향하는 산으로 제대로 가기 시작했다. 근데 이미 난 이때 시 중심을 지나면서 그라나다에서 봐야 할 것들을 다 보고 말았다. 결국 이 도시에는 남은건 알함브라 밖에 안남은건가. 그렇게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가는데 광장 벤치에 흰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누워있었다. 누가 봐도 관광객. 옆으로 누워 자고 있었다. 광장 한 구석에서 노숙을 하는 저 대인배 여행객은 누구일까 엄청난 궁금증이 생겼지만 차마 다가서지 못하고 나는 알함브라궁을 향해 산을 올라갔다.
알함브라는 산에 위치해 있다. 언덕이 아니라 산이다. 절대 이 산을 가볍에 여기지 말길 빈다. 정말 힘든산이다. 더군다나 베낭을 짊어지고 간다면. 낮에 보니까 거기까지 버스도 다니기는 한다,
4) 3 번째.
땀을 비오듯 흘리며 알함브라 티켓 판매소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이미 도착한 2명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알함브라의 인기를 실감했다. 그래도 ‘았싸 3빠!’ 하면서 벤치에 앉았다.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왔다. 베낭을 베게삼아 잠깐 잠을 잤다. 멀리서 사람 소리가 들린다. 지금 시간은 5시가 안됬는데 벌써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알함브라 궁전 직원들이 정문 앞을 물청소 하기 시작했다. 호스로 물을 뿌리고 지나가자 갑자기 기온이 쑥 내려간다. 으스스해 팔로 몸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사람들이 은근히 모여있었다. 나는 당당하게 내가 3번째요! 하고 외치며 앞에 있던 사람들을 제치고 매표소 앞으로 나갔다. 다들 나를 봤었는지 말없이 비켜준다. 일찍 온 보람이 있다. 몸은 피곤하지만.
이제 표를 판매하는 시간인 8시 반이 가까워 왔다 다는 뒤를 돌아보았다. 헉! 벌써 줄이 끝이 안보일 정도로 많이 서 있었다. 잘난것도 없지만 그냥 씩 하고 미소가 났다. ㅎㅎㅎㅎㅎ 난 세번째다…….
(추가적으로 정보를 드리자면 알함브라 궁전은 자기가 관람할 시간을 인터넷으로 예매 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무식하게 오지 말고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오세요. 그게 표도 확실하게 있고 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일정부분은 저처럼 바로 오는 사람들을 위해 그날그날 판매 합니다.)
5) 아! 알함브라다!
표에는 제일 중요한 나자리스 궁에 들어가는 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정해진 시간은 겨우 30여분. 그것도 베낭을 알함브라 코인라커에 두느라 5분이나 깍아 먹었다. 아 피같은 시간. (결론적으로는 들어가는 입장시간은 체크해도 나가는 입장시간은 체크 하지 않았다.-_-.. 아침이라 그랬던건가.)
우선 이번 여행에서 알함브라가 차지하는 위치는 지대했었다고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알함브라는 내가 가장 기대를 하고 있었던 관광지였다. 얼마나 아름답길래 많은 예술가들이 알함브라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얼마나 화려하길래 스페인 왕이 자신의 궁으로 쓰게 했는지 내 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루트를 정할 때 그라나다와 바르셀로나는 내 방문 일순위의 도시였다. 나는 두개의 다른 문화가 만나는 것에 많은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화가 만났을 때의 화학적 반응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게 큰 기대와 함께 준비도 많이 했었다.
그라나다는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의 수도였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려는 움직임에 평화롭게 그라나다를 스페인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알함브라는 스페인왕의 왕궁으로 쓰이게 되었다. 근데 궁금한건 그럼 거기 살고 있던 이슬람인들은 어디로 간거지? 북아프리카로 갔으려나? 아니면 개종을 하고 남아있었을까? 인터넷을 찾아봐도 그라나다 왕국이 나라를 넘겨주고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 찾을 수 가 없었다. 아시는분 계시나요?
여튼 나는 드디어 떨리는 마음으로 알함브라 궁에 들어갔다.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돌과 나무를 천이나 레이스 다루듯이 조각해논 이슬람 장인들의 실력에 놀랐다. 종류석 같이 꾸며놓은 천장, 벌집처럼 조밀조밀 조각해 놓은 벽과 기둥. 그 화려한 모습에 넉이 나간채로 있었다. 그리고 나자리스 궁의 하이라이트! 사자분수가 있는 정원으로 갔은데. 헉. 공사중이었다. 난 이 사자분수와 정원을 보고 싶어서 알함브라로 간거였는데 난데 없이 공사중이란다. 아. 슬프다. 사자분수만 따로 박물관에서 전시를 한다는데 아쉽게도 월요일은 박물관 휴일이란다. (스페인의 대다수 박물관들은 월요일 휴일입니다. 참고하시길) 결국 나는 조형미 넘치는 사자분수 정원은 보지 못하고 아쉽게 나자리스 궁을 빠져나와야 했다. 은근한 시간의 압박. 워낙에 아침일찍 가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사진찍기는 좋았다.
알함브라는 사실 내가 너무 기대가 컸던 만큼 모든것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아니 어떻게 말하면 실망했다고 해도 될것이다. 세비야의 알카자르와 많이 흡사해서 이미 면역이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역시 여행의 불변의 진리,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6) 이제 뭐하지?
알함브라에서 최대한 늦게 나왔다. 안에서 일본인 단체관광객 인척도 해 보고 정원 가꾸는 것 때문에 잠깐 열어둔 길로 들어갔다가 헤메서 관리인이 길 다시 가리켜주기도 했다. 이렇게 한참을 놀다가 결국 나를 알함브라에서 나오게 한건 배고픔 이었다. 먹은것도 없이 물만 마시고 새벽 3시서 부터 1시 까지 알함브라에 있었으니 알만하지 않겠는가.
결국 나는 배가고파서 알함브라에서 나왔다. 다시 산을 내려가 시내 중심광장에 갔다. 내 사랑 보카디요와 맥주로 점심을 먹고 다시 주요관광지들을 돌아다녔다.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은 대성당. 모든 스페인 도시들이 그렇듯 그라나다에도 큰 대성당이 있다. 근데 스페인에 있는 대성당 치고 흔하지 않은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었다. 그리고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이리저리 옷가게에서 옷구경도 하고 사람들 구경도 하고 돌다다니니 이미 나는 그라나다에서 해야 할 것은 다 한거 같다. 이제 뭐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머리를 써도 밤 늦게 출발하는 발렌시아 버스때 까지 할 일이 없었다. 날은 덥고 할일은 없고 가방은 무겁고 심심하고. 역시 당일코스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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