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6일 화요일

또 여행갔다 왔네요. 이번에는 이스탄불이요.

이스탄불에서 4일간 돌아다니다 왔습니다~
7년전 한번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와는 또 많이 달라져 있더라구요.
그때그때 느꼈던 것들을 적어보지요. 이름하여 '다시만난 터키(feat.소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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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탄불은 도시 전역에서 그 특유의 냄새가 있다. 장작타는 냄새라고 해야 하나. 여기저기서 고기를 굽고 밤을 굽고 옥수수를 굽고 있다.

2. 거의 대부부분의 가게는 아침에 비눗물로 물청소를 한다. 특히나 식당은 더하다. 그리고 그 비눗물은 다 그냥 거리로 흘러 내린다. 그래서 아침 도시의 거리는 항상 축축하며 비라도 오는날은 도로에 스믈스믈 거품이 인다. 그리고 언덕길이 많은 도시 특성상 길이 엄청 미끄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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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7년전에 비해 이스탄불은 많이 국제화 되었고 많이 부유해 진것 같다.

4. 그런데 길고양이가 참 많아졌다. 길고양이들이 사람도 안무서워하고 앵긴다. 아무사람한테 친하게 대하는건 가게마다 하나씩 다 있는 삐끼들한테 배웠나 보다. 그래도 사람보단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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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홍차가 제일 맛있는 나라는 터키인것 같다. 나는 여기서 만큼 맛있는 홍차를 마셔본적이 없다. 마트에 가보니 홍차를 밀가루 팔듯이 200g, 500g, 1kg, 하물며 2kg 짜리도 있다. 무슨 업소용도 아니고 일반 가정에서 그런 2킬로 짜리 홍차를 사 갈지 의문이다. 차는 커피에 비해 한잔에 사용되는 양이 적은걸로 생각했을때(약 3g) 666잔 이상 만들수 있는 양이다. 마트에 갔다가 충격먹고 나도 200g짜리 하나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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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터키 아저씨 들은 참 머리 숯이 없고 빨리 대머리가 된다. 근데 수염은 빡빡하다. 옛날부터 터번을 쓴 이유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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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월은 여행하기 그리 좋은 날씨는 아닌것 같다. 이스탄불은 특히나 비가 와서 힘들었다. 그래도 야경은 일찍 볼수 있는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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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전에는 한국? 그럼 오~ 형제의 나라(터키어로 브라데르 콘트리!)~ 그랬던 사람들이 이젠 한국? 강남스타일! 하면서 말춤을 춘다.

싸이는 이제 진짜 국제가수가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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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스탄불 사람들 참 열심히 산다. 부지런하고 활기차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도시 전체가 시끄럽고 활발하다. 꿀발라논 장판마냥 쩍쩍 눌러붙는 키예프에만 있어서 그런건가, 거기 있으면 나도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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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행은 정말 학생때 다녀야 한다. 일반표와 학생표의 가격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난다. 특히 차이가 많은 돌마바흐체 궁전은 일반인은 40리라인데 학생은 5리라 밖에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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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터키 음식은 정말 짜다. 그리고 그 짠 음식에 또 소금을 뿌리고 케찹을 발라 먹는다. 터키 음식도 보면 건강한 음식이라고 하긴 힘들다. 그래도 그렇게 오래사는건 물처럼 마셔대는 홍차와 아이란(요구르트 음료)이 지푸라기처럼 생명줄을 잡아주고 있는것 같다. 하지만 고등어 케밥은 환상적이다. 1번밖에 안먹고 온게 후회가 된다.

12. 왕이 살던 도시는 역시나 화려하고 장식적인게 발달을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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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저녁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 아랍청년 하나가 사진을 찍어달라 그런다. 한 2번 찍어주니 갑자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어디서 왔냐 여기서 뭐하나 나는 뭐다 하고 한 5분을 이야기 한다. 내가 난 한국 사람인데 지금은 우크라이나에서 살고 있다고 하니 자기는 엄마가 터키 사람인데 아빠는 에미레이트 사람이란다. 그래서 터키왔다가 자기만 이스탄불은 왔고 건축관련 일을 하고 있어서 한국도 몇번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보고 한국사람처럼 안생겼단다. 중앙아시아 사람 같다고..... 이건 뭔 사바카 소리인가 100% Pure 경기리안 한국인한테... 중국인 소리 듣는것 보다 왠지 기분이 더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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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소피아 성당은 다시 가도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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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길이 많이 막히는건 차가 많고 길이 좁고 구불구불 한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렇지 않게 무단횡단을 하는 보행자도 큰 이유라 생각된다. 신호등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차만 없으면 우르르 사람이 거릴 건넌다. 그러다 차가 와도 그냥 건넌다. 그럼 차는 어쩔수 없이 세운다. 하다못해 트램이 와도 그냥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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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일 비가 오다 3일째 해가 나서 날씨가 참 좋아졌다. 기분도 설레서 초로의 중국인 부부에게 아야소피아를 배경으로 내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오! 오케오케! 하면서 아저씨가 사진을 찍어준다. 그리고 필수코스, 어디서 왔어?하고 물어보신다. 한국에서 왔어요. 근데 혼자 왔어? 예. 그랬더니 갑자기 에헤!!!!하며 부부가 둘다 놀란다. 뭐지... 여행은 혼자오면 안되는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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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머리에 흰머리가 서리처럼 내린 나이에 자기 몸만한 배낭을 메고 호스텔 6인실에 머무는건 낭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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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출국을 하는 이스탄불 공항. 여권심사대의 직원 한명이 내가 다가가자 씩 웃는다. 내 여권을 보더니 '코레아!' 하고 갑자기 터키

어로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쉬레취테 아즈드르키~~ 잘 지냈어요! 쾨줌 쉬체지네 외젤리크레 여행재밌었어요? 알라마득 아마 부 베크

리요즈~~~ 안녕히 가세요~!' 그러더니 도장을 쾅 찍어준다. 터키어 부분은 내가 터키어 신문에서 그냥 따라 적은거고 한국어는 정말

한국어로 말했다. 터키인 직원이. 한 2초 입벌리고 멍하고 있다가 한국어로 고맙습니다.... 하고 심사대를 지나갔다. 내 생에 이런 출

국 심사는 처음이다. 정말 유쾌하고 기분좋고 뿌듯해지고 고마워지고 한번 더 오고 싶어지는 출국 심사였다.

2013년 1월 19일 토요일

북유럽 여행기(3편)

 

기차 창밖의 풍경은 정말 그야말로 평온 그 자체 였다. 녹색의 구릉이 있고 저 멀리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밝에 웃고 있고 작은 집들은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야말로 우리가 상상했던 미래의 모습이 여기서는 실제였다. 또 날씨는 얼마나 화창한지. 우중충한 헬싱키-스톡홀름을 지나 와서 그런지 따스한 햇볓은 덴마크를 더욱 정이가는 나라로 만들어 주었다.

오덴세는 평화로운 작은 도시다. 공원에서 강아지와 산책하는 할머니에게 안데르센의 생가가 어디 있는지 물어봤다. 영어로 Anderson 이니까 ‘앤더슨’이지 않을까 한는 맘에 그리 발음을 했더니 못 알아 들으신다. 그래서 지도를 보여주니 ‘아~~! !@#@&^&$#! 말하는거지? 그거 이리이리 가면 되!’ 하셨다. 그 할머니의 발음은 절대 안데르센도 아니었고 앤더슨도 아닌 알수 없는 안데르센이었다. 덴마크어는 안으로 먹는 발음들이 참 많다. 옹알이 하는 것 처럼. 한국 사람들은 절대 할 수 없을 발음 이다. 발성 기관이 덴마크 인들이 우리와는 확연하게 다를것이다에 난 내 블로그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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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과 잘 어울리고 덴마크 라는 나라 이미지와 잘 어울려보여서 찍은 건물인데 뭐하는 건물인지는 모르겠다. 국기가 걸려 있는걸로 봐선 정부쪽 건물 같은데.)

안데르센 박물관은 작고 아담한 건물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안에 생가가 보존이 되어 있다. 박물관에는 안데르센의 생에와 작품들이 정리가 깔끔하게 잘 되어 있었고 보기에도 좋게 되어 있다. 아마 덴마크 사람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이 안데르센 이니까 덴마크에 가신다면 방문해야 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코펜하겐에서 거리도 가깝고 아담한 집들과 마을이 정겨운 평온한 마음을 간직한 도시였다. 근데 나중에 보니까 그 평온한 마음은 덴마크 전역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국가의 상징인것 같다.

오덴세에서 다시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 로스킬데로 아는 누나를 만나러 갔다. 키예프에서 미리 전화로 알지도 못하면서 로스킬데 역으로 5시까지 갈께!!! 라고만 약속을 하고 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한 약속인거 같다. 내가 어떻게 버스라도 노쳤거나 기차라도 노쳤으면 큰일날 약속이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도 약속대로 무사히 로스킬데 기차역에 5시 이전에 도착했고 누나와 남편 P형도 같이 정겹게 나를 맞이 하여 주셨다. 그리고 이어진 그 집에서의 저녁식사는 정말 맛있었고 편안한 침대에서의 잠은 그간의 피로를 싸그리 풀어주었다.

그 다음날 누나 부부의 차로 다 같이 여행을 시작했다. 우선 간 곳은 그룬트비 교회. 아마 덴마크에서 두번째로 유명한 사람 일 것이다. 전쟁 후 피폐해진 덴마크를 일종의 새마을 운동식으로 교육과 국가재건에 힘쓴 사람이다. 그 사람이 지었다는 교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순수하게 벽돌로 지어졌다. 이 교회를 보고 있으면 벽돌쌓기의 최고봉을 볼 수 있는데 이 교회를 보면 왜 덴마크에서 레고가 만들어 졌는지 이해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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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성당에는 이렇게 작은 배의 모형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선원들이 폭풍을 만나고 무사히 귀환하면 감사의 뜻으로 이렇게 배 모형을 성당에 바쳤단다.)

레고 성당을 나와 이제는 질란트(코펜하겐이 있는 섬 이름) 전역에 퍼져 있는 덴마크 왕국의 성들과 성채들을 보러 다녔다. 아직도 왕국인 만큼 덴마크에서는 성들이 많고 그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아름답고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차가 있으니 이렇게 기동성이 좋아 질란트 전역을 다 둘러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렇게 비싼 나라에서 기름값이 비쌀텐데… 하고 걱정을 했는데 기차로 세명이서 이렇게 다니면 오히려 돈이 더 든단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차로 덴마크를 구석구석 보게되어 정말 감사했다. 일부러 나 위해서 풍경이 별로 안좋은 고속도로는 빼고 국도로만 다녀서 볼거리도 많았다. 역시나 풍력발전기는 덴마크의 또다른 상징 인것 같다.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의 선두국가인 덴마크는 이미 풍력발전기가 전국 여기저기 많이 설치가 되어 있어서 농촌에서 풍력발전기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현지에 살고 계시는 누나와 형님 덕분에 덴마크는 본 것보다 느낀게 많이 남는 나라였다. 그래서 덴마크 여행 관련되서는 내가 느낀 것 위주로 적어야 겠다. 어짜피 관광 자원은 인터넷 검색 한번만 하면 다~~~ 나오는거 내가 꼭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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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박물관. 안데르센의 생가도 여기 있다.)

질란트 왕성투어 담날 이제는 로스킬데 마을을 둘러보았다. 로스킬데는 질란트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고 매년 초여름에는 락 페스티벌이 열리는 도시이기도 하다. 덴마크 전통 점심을 먹자며 집에서 절인청어와 으깬 소 간, 치즈, 전통 리큐어 ‘감멜 단스크’ 로 흡입을 했다. 덴마크 역시 유명한 낙농국가여서 그런지 치즈가…… 와…… 최고였다. 그냥 평범한 치즈라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절인청어에 맛들여서 키예프에서 돌아와서도 가끔 사먹는 별미가 되었다. 으깬 소 간 요리는 몸에 정말 좋다고 나한테 많이 먹으라고 했었는데 맛도 좋았다. 한국 순대먹을때 나오는 간을 으깨서 향신료와 소금과 양파를 넣고 오븐에 구운맛이다. 덴마크 음식은 세계적으로 밸런스가 잘 맞고 건강한 음식이라 대니쉬 다이어트 라는것이 생길 정도로 고단백식품이다.

이런 음식과 평온한 풍경과 환경, 자전거가 생활화 되어 꾸준한 운동 등이 진짜 웰빙 인것 같다. 그것도 나 혼자만 잘 사는 웰빙이 아닌 모두가 잘 사는 웰빙.

여기서 많이 느낀게 한국에서 말하는 ‘서구화’라는 단어가 얼마나 틀린 단어인지다.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말로 ‘서구화된 식생활로 한국인의 대장암이 늘었다, 비만율이 늘었다.’ 이런식의 말인데 이건 정말 잘못된 말이다. 한국사람들은 모두 백인들이 사는 땅이니까 서구화 라고 하는데 유럽과 미국은 정말 다른 문화다. 한국사람들이 생각하고 사용하는 ‘서구화’의 올바른 말은 ‘미국화’이다. 대용량과 소비기반의 문화 인 미국문화를 한국사람들은 너무 쉽게 유럽과 같은 의미로 쓴다. 하지만 유럽은 절대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유럽은 인구밀도가 높고 그만큼 자원이 적은 지역이다. 이런 지역에서 소비기반 사회는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다. 반면 미국은 넓은 토지를 개척하며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쓰고 버리는 소비가 더 자연스럽다. 먹는것도 사실 유럽사람들은 미국 사람들 처럼 고기를 많이 안먹는다. 물론 주 요리는 고기 요리지만 이렇게 집에서도 특별한 날 외에 풀코스로 먹는 사람들은 없다. 그리고 오히려 이탈리아 쪽은 고기보다 야채와 파스타, 빵을 먹는 비율이 높고 덴마크 사람들은 생선의 비율이 높다. 그럼에도 한국은 ‘서구화’라는 단어로 두 대륙을 묶어 버리는 바람에 미국인들 처럼 유럽인들도 8차선 대로에서 끝없는 자동차 행렬로 이동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유럽에서 미국과 같은 대로를 만나기는 정말 힘들다. 자동차 왕국 독일쯤에나 있으려나. 특히나 도심에는 2차선이 기본이고 좀 넓은 곳이 4차선이다. 이런 차이를 모르고 꼭 서구화가 최고다! 라는 생각으로 미국방식으로 삶을 살려고 하는 한국 사람들을 볼때 마다 안쓰럽다. 아 그리고 한국기준으로 봤을때 미국은 동쪽으로 가는게 더 가깝다. 서구화도 결국 틀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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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덴세의 호텔 앞 안데르센 조각상)

로스킬데는 질란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는데 내 눈에는 그냥 작은 마을이다. 우선 덴마크 자체가 코펜하겐 외에는 고층 건물들이 거의 없다 보니 옹기종기 작아 보이는 게 있다. 뭐 물론 인구 자체도 550만명 정도라니 그럴 수도 있겠다.

로스킬데 성당은 역대 왕가의 사람이 죽어 모셔지는 곳으로 벽과 바닥에는 온통 조각(이라 쓰고 비석이라 읽는다)으로 뒤 덥혀 있었다. 그곳에는 특이하게 현 덴마크 여왕인 마르그레테 2세의 무덤 모형이 있는데, 디자이너 출신인 여왕 본인이 직접 디자인 한 관이다. 둥그런 유리를 반으로 잘라 시신을 모실 곳을 파 낸 형식으로 보면 오! 하는 탄성이 나오는 디자인인다. 하지만 곧 어…. 투명유리면… 시신이 보일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머 알아서 생각해 둔 것이 있겄지 하고 성당을 나왔다.

그리고 밖에 중앙 광장에는 시장이 열려서 신나게 구경을 했었고 따듯한 날씨를 즐기면서 자전거를 타고 돌다니니 하루종일 미소가 사라지지 날이었다. 덴마크와서 가장 많이 느낀 기분은 바로 “평온” 안정된 기반으로 여유있고 평온한 기분.이런 것이 덴마크의 힘이 아닐까 싶다. 어떤 방문객이 와도 하루 이틀 이면 이 나라에 평온함 기분에 본인 마저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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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룬트비 교회, 일명 레고 교회)

그리고 이 나라에서 짧은 기간 있으면서도 자주 다닌곳은 바로 여러 단체에서 운영하는 중고 옷/물품 가게들이다. 전국적으로 종교단체 시민단체 지역단체에서 운영하는 중고 옷 매장이 참 많았다. 품목도 다양해서 남녀 아동 옷은 물론이요 수건에 침대시트에 장난감, 식기, 책 등, 쓸수 있는 물건은 다 거래되는 듯 했다. 부러웠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눠입고 나눠쓰는 사람들이. 나도 몇개 건진건 그라인더가 달린 후추/소금통, 나비넥타이를 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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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스보성. 아마도 덴마크에서 제일 예쁜 성이 아닐까.)

그리고 그 다음날은 코펜하겐 여행이었다. 명불허전의 도시 코펜하겐에서 인어공주 상 앞에서 사진도 찍고 코펜하겐의 왕궁들과 성당들도 둘러보고 바쁜 하루를 보냈다. 그중 가장 충격이었던 건 크리스티아니아. 크리스티아니아의 정보는 알아서 검색해 보시고. 구글 크리스티아니아

크리스티아니아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하 미친!” 이었다. 내적으로는 더러워도 외적으로는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어야 하는 이상한 성격을 가진 나로서 크리스티아니아는 말 그대로 혼란의 중심지 였다. 실제로 처음 보는 히피 문화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모든 벽. 평평한 그 모든 곳은  그래피티가 되어 있고 대마초는 길가에서 상추 팔리듯 진열되어 있고 형형색색의 강렬한 히피의상에 시끌시끌한 음악…. 질서에 익숙한 나는 세상무질서의 중심에서 겨우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구경을 했다.

오히려 크리스티아니를 나오며 자유라는것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하게됬다. 자유와 질서는 공존할 수 없는것인가에 대해. 나중에 인터넷으로 크리스티아니아에 대해 알아보고 검색해 보니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게되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됬지만 역시나 약간의 질서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완전한 자유는 존재할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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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스보성은 이렇게 호수 위에 있다. 주변 정원도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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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빈이 방문시 숙소로 쓰인다는 프레덴스보성 내가 덴마크를 떠나고 바로 그 다음날 우리의 MB사마께서 국빈 방문을 하셔서 이곳에 머무르셨다.)

다음날은 나 혼자 로스킬데 시내를 돌아다녔다. 나름 덴마크에서 큰 도시라 쇼핑몰도 있어서 관심이 많은 디자이너 제품들을 둘러보고 맘에 드는 텀블러와 물통을 사기도 했다.

덴마크의 주력산업은 Maersk 사(어찌 읽일지 몰라 영어로 쓴건 절대 아님….ㅠㅠ)가 대표적인 해양물류산업, 베스타 사로 유명한 재생에너지, 그리고 디자인산업이다. 아 물론 여러분이 다 아는 낙농산업도 있지만 그건 사양길이니….

덴마크가 디자인 강국이라는건 정말 세세한 것 서부터 느낀다. 가로수, 자전거, 사람들이 사용하는 생활용품을 보면 디자인 이라는 것이 다 들어가 있다. 여기 사람들은 그냥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 사람들의 의식 또한 디자인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면 비싸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국가의 지도자가 디자이너 출신이어서 그런가 덴마크는 산업디자인, 건축디자인 쪽이 유명하다. 나의 매우 주관적인 시각으로 봤을때 핀란드는 건축디자인, 스웨덴의 의상디자인, 덴마크는 산업디자인이 강점인것 같다. 산업디자인과 실생활에 쓰이는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덴마크의 쇼핑몰은 진짜 놀이동산이었다. 무슨 약을 먹고 디자인을 하길래 이런 기발한 디자인이 나오지 라는 생각이 드는 상품들이 백화점 가득 널려 있었다. 다음에 덴마크에 올 기회가 생기면 진짜 돈을 두둑하게 챙겨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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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햄릿 성으로 불리는 크론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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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킬데의 벼룩시장 모습)

이런 북유럽 여행도 다음날 끝이 났다.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아쉬운 것만 남은 여행이었지만 덴마크는 특히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정말 작은 나라지만 매력 덩어리 덴마크는 다음에 갈 기회가 다시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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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벽이 맘에 들어찍은 사진. 로스킬데. 저기 벽에 붙어 있는 사람 같은건…. 기분 탓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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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바이킹 배를 복원한것. 이 배로 그린란드까지 다녀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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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킬데의 요트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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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펜하겐 요새 공원. 날씨가 정말 좋았다. 앞에 취객같은 사람은…. 기분탓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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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의 상징 인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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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런 덴마크의 한국 6.25전쟁 참전비가 있지만 다들 인어공주만 사진찍고 바로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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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주의적인 인어공주. 신 항구 주변에 있다. 이 외에도 인어공주 상 2개가 더 있으니 잘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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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의 상징적인 관광지 뉴 하운. 여기서 울려퍼진 재즈음악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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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천국 크리스티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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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보물 보관소 로젠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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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다이아몬드로 불리는 국립도서관)

2012년 1월 17일 화요일

북유럽 여행(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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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도 올렸던 헬싱키의 대표 교회)

그럼 1편에 이어 2편을 계속 쓰겠습니다. 1편에서 인제 탈린에서 헬싱키 가는 배를 탔네요. 에효…. 아직도 갈길이 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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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에서 헬싱키까지는 약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다. 그래도 내가 탄 배는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물론 그 이후에 헬싱키-스톡홀름을 가는 배는 더 컷지만 나같은 촌놈이 보기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배가 9층 이었으니까. 헬싱키에 도착해서 끊임없이 내리는 컨테이너 트럭들을 보며 다시한번 크기를 실감했다.

배 안에는 심심하지 않도록 펍, 식당, 슈퍼마켓 면세점 들이 있었고 나는 슈퍼마켓에서 놀다가 식당에서 아점으로 햄버거 세트를 사서 콜라와 마시니 곧 있으면 헬싱키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에스토니아에서 핀란드로 가는 배는 역시나 같은 유럽연합국가여서 그런지 아무런 짐검사나 여권 검사 없이 그냥 무사 통과였다. 좋~은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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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배 선실)

헬싱키 항구에서 우선 헬싱키 중앙기차역으로 갔다. 항구에서 기차역까지 가는 버스 비용은 무려 7.5유로! 이 이후로는 버스를 안타서 다른 버스 가격은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이때부터 소문으로만 들리던 북유럽의 미친 물가가 피부로 와 닿았다. 나는 항상 여행을 갈때 미리 준비를 안 하고 가는 스타일이어서 이 도시에 뭐가 있는지 알려면 투어리스트 센터에 가한다. 그리고 거의 유럽 도시의 90%이상은 기차역에 투어리스트 센터가 있기때문에 언제나 기차역은 내 여행을 출발점이다. 기차역 센터에서 지도와 숙소를 알아보고 우선 제일 가까운 유스호스텔로 갔다. 비수기에는 문을 닫는 유스호스텔이 많아서 설마설마 하고 갔는데 다행이도 오픈이고 (시내에 있어서 그런가보다. 다른 호스텔은 문을 닫은곳이 많았다.) 방도 있었다. 리셉션의 교정기낀 귀엽게 생기신 누님한테 돈을 주고 침대를 배정받았다. 방에는 이미 대머리 형님 한분이 있었는데 자기는 이곳 대학교에 시험을 보러온 학생이란다. 호텔 경영을 배우는데 아제르바이잔 출신이란다. 그래서 내가 조심스럽게 러시아어를 하냐고 물어보자 하자 놀란눈으로 “Drug moi!(My friend!)”하면서 엄청 빠르게 어디서 러시아어를 배웠냐 뭐하는 놈이냐를 물어본다. 내 스토리를 이야기 해주니까 자기는 저녁먹으러 나간다면서 휙 나갔다. 나도 짐을 대충 정리하고 카메라를 들고 시내로 나섰다. 나가기 전에 리셉션 교정기 누나한테 헬싱키에서 알바르 알토 작품들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하나요? 물어보니까 누구? 하면서 되물어 본다.

“알바르 알토요. 판란드 건축가요.”

“아~~~! 아↘이바↗르 아↗↘ㄹ토→?”

“아……. 예…. 아↘이바↗르 아↗↘ㄹ토→ 요.”

그러자 착한게 생긴 얼굴값을 하시는 누님은 직접 컴퓨터에서 지도를 프린트 해서 헬싱키에는 이런이런 아↘이바↗르 아↗↘ㄹ토→의 건축물이 있는데 헬싱키와 투르크를 포함해 핀란드 전역에 퍼져 있으니까 시간이 있으면 시 외곽으로 나가 보란다. 그리고 건축과 디자인 쪽에 관심이 많으면 호스텔에서 멀지 않은곳에 디자인 박물관 하고 건축 박물관이 있으니까 거기도 가보라고 해 줬다. 나는 방끗 웃으면서 “고마워요! 근데 핀란드 어로 고맙습니다 가 뭐죠?”   “키→토스” 그러면서 교정기 뿌리까지 다 보일정도로 환하게 웃는다. 이렇게 기분좋게 호스텔을 나왔는데 기분나쁜 북해의 찬 바람이 내 뺨을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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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크루즈여객선의 내부. 이때 테마가 뉴욕이어서 뉴욕의 브로드웨이 같은 분위기를 내기 위해 노력한 모습)

탈린은 춥긴 해도 그나마 해는 떴었는데 헬싱키는 해 조차도 없었다. 그래도 관광객 본연의 업에 충실하기 위해 옷을 동여매고 우선 제일 가까이 있는 디자인박물관과 건축박물관(따로따로 있지만 건물 두개가 붙어 있다) 을 향해 갔다. 하지만 가는날이 장날, 휴관일이었다. 두 곳 다. 나는 다시 어쩔 수 없이 시내로 향했다.

시내를 걸어가면서 느낀 것이지만 핀란드 어는 참 점이 많이 찍혀 있다. 모음에 독일어 움라우트 같이 ‘점점’ 찍혀 있는 글자들이 많다. 모음도 두개씩 같이 쓰는것도 많다. 쓸때 많이 귀찮아 보인다. 근데 들어보면 되게 귀여운 말이다. 인사는 “모이~” 고맙습니다는 “키~토스~” 헤어질때도 “모이모이~~” 닭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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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에서는 이렇게 공연도 했다.)

핀란드에서 기대하고 꼭 해야지 한건 카페에 많이 가는것이었다. 전 세계 일인당 커피 소비량 1위국가 핀란드의 수도에는 얼마나 많은 카페가 있을까 하는 기대심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헬싱키에는 생각만큼 카페의 수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에스프레소 기반 카페(물론 있었지만)가 아니라 드립커피가 주 인 빵집 스타일이 많았다. 그래도 드립커피였지만 확실히 맛은 있었다. (내가 너무 추워서 그런것일수도…) 아마도 가정용커피의 수요가 많은것 같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는거 같은데 커피소비량이 많은거 보면. 알수 없는 일이다. 아니면 가공을 해서 다 수출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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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국회. 이날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법이 올라오는 날이어서 흑형들과 아랍형들이 이 이 앞에서 무섭게 데모하고 있었다.)

앞서 말한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르 알토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하자면 이 사람은 건축가이면서 인테리어디자인까지 한 유명한 사람인데 핀란드 특유의 자연환경을 건축에 스며들게 한 것으로 유명해서 작곡가 시벨리우스와 함께 핀란드의 국민 예술가로 칭송 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헬싱키에 있는 알토의 건축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핀란디아 홀. 흰 백색의 건물이 매우 인상적인 은 사실 페이크고 실망을 많이 했다. 사실 알바르 알토는 나한테 약간 안중 밖 건축가여서 잘 모르는 사람인데, 핀란디아 홀은 내부 인테리어 사진 밖에 몰랐다. 그랬다가 이번 기회에 핀란디아 홀의 외관을 봤는데 뭐. 그냥 평범했다.

그리고 안타까웠던 것은 핀란디아 홀 외에 다른 알토의 건물들은 특별관리가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현대 건물이어서 일까 원래 사무실이었던 건물은 지금 책가게가 되어 있었고 다른 어떤 건물은 스트립 클럽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냥 일반 평범한 건물이었다면 당연히 경제적 논리로 어떻게 쓰이던 간 상관은 없었겠지만 이 건물들은 핀란드의 대표적 건축가 알바르 알토의 건물들인데 변변한 명판 하나 없이 가게들의 간판만 있어서 이게 알토의 건물인가 한참을 찾아야 했었다. 모든게 깔끔하고 정리되어 있는 헬싱키 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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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보게 된 군악대의 스톡홀름 왕궁 앞 연주)

사실 헬싱키는 인상이 안 좋게 남은 감이 있다. 이유는 아마도 날씨 때문이었을 것이다. 헬싱키가 여행중 낮시간 동안 제일 추웠다. Welcome to HELLsinki…. 그래도 2일동안 있으면서 혼자 열심히 다닌 도시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이 가까워 올때 슬슬 항구로 갔다. 저녁으로 먹을 샌드위치와 요구르트를 마트에서 사 두었고 항구에는 이미 탈린-헬싱키 구간보다 더 큰 크루즈 선박이 정박해서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배는 더 커서 12층 높이의 배였다. 들어가면서 부터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와 신나게 연주하는 밴드의 모습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배에 올랐다. 내가 하룻밤을 지낼 선실은 2층에 위치해 있었는데 웃긴건 사람들 머무는 선실이 자동차 머무는 층 보다 밑에 있다는 사실. 뭐 제일 싼 표 가진 자가 할 말은 아니다만 선실 벽에 붙어 있는 “가끔 빙하가 부딪혀서 배가 시끄러울수 있습니다.” 스티커는 자는 내내 알수 없는 스릴을 느끼게 해 주었다.

배에있는 식당에서는 저녁시간에 2번 해산물 뷔페를 한다. 해산물을 원래 좋아하는 나였기에 그리고 북해 스타일 해산물 뷔페는 언제 먹어보겠느냐, 크루즈에서 뷔페를 언제 먹어보겠느냐는 이유를 맘속으로 되내이며 거금 35유로를 내고 저녁뷔페 신청을 하였다. 그리고 35유로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실컷 먹고마시고 나왔다. 진정 아름다운 밤이었다…. 크루즈 배 안에서 와인과 신선한 북해의 해산물 중앙 갑판에서 흘러 나오는 미국 남부의 째즈 음악. 이래서 크루즈를 제일 비싼 여행을 꼽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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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에서 가장 인상&감명 깊었던 왕립아카데미. 노벨상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식당에서 전체적으로 둘러보니 전통적인 부국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었다. 백인들은 주로 러시아, 포르투갈어권(아마도 브라질) 사람들이 많았고 중국인들은 생각 외로 많이 없었지만 인도인들이 많았다. 즉 요즘 새로 뜨는 브릭스(BRICs)국가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걸로 보아 세계의 부가 많이 이동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부자 나라, 미국과 서유럽, 일본사람들은 이미 이런 여행은 다 해보고 더 비싼 여행을 다니나? 그것도 좀 아닌거 같고 세계경제 위기로 휘청거리긴 해도 확실히 브릭스 국가들이 많이 뜨는것은 사실이고 인구가 많으니 그만큼 여행하는 사람도 많으리라.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저 멀리 앉은 덩치큰 인도 아저씨를 보니 신선한 연어와 샐러드는 눈앞에 두고 입에 편한 감자튀김과 케찹을 한 접시 가득 놓고 먹는걸 보니 아직 갈 길이 멀구나 한는 생각이 든다.

 

하룻밤을 같이 지낼 내 룸메이트들은 놀랍게도 러시아 인들이었다. 이 두 러시아 인은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는데 뻬쩨르에서 헬싱키로 왔다가 헬싱키에서 배타고 스톡홀름으로 가서 거기서 비행기 타고 독일로 갔다가 암스테르담으로 버스 타고 간단다. 그래서 여행 하냐고 물어봤더니 운반을 한단다!(러시아어로 꾸리에르! 꾸리에르! 하는데 배달원 같은 뜻이 있다.) ‘이놈들 뭘 운반하기에 돈을 더 들여서 이렇게 멀리 돌아가는거야? 약같은거 배달하는거 아냐? 암스테르담이면……. 마리화나 같은거?’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는 그들의 영어 실력때문에 단절되었다. 아. 러시아 인인데 왜 영어로 대화를 했냐고? 헬싱키 까지 오는 동안 너무나 러시아어를 많이 들어서 그냥 별로 하기가 싫었었다. 여기 와서 까지 러시아어를 써야되? 하는 생각에 내 룸메들이 러시아 인 임을 알았지만 ‘어 나 얼마전에 우크라이나 여행 해서 도브리 젠, 쓰빠씨바, 정도는 알아요!’ 하면서 (사실 이 사람들 이 말도 이해 못한 눈치였다.) 영어로 말하고 그냥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래도 자기네 가지고 온 크바스(러시아 전통음료) 도 나눠주고 지네 배 클럽 갈때 자기네들 끼리 ‘야 저 한국애도 데리고 데리고 갈까?’ ‘재 피곤하다잖아. 그냥 내버려 두자’ 하는 말도 듣고 재미 있는 친구들이었다. 근데 진짜 지금도 궁금하다 그들은 무엇을 운반하기에 그토록 먼 여정을 떠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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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다보면 스톡홀름은 이런 첨탑이 많이 보인다.)

다음날 아침 나는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날씨는 역시나 경기도 구리였다. 우선 스톡홀름에서 버스로 코펜하겐을 갈 생각이었기에 버스 터미널로 갔다. 기차역과 붙어 있어서 찾기 쉬웠다. 단지 내가 도착한 항구와는 옴팡지게 멀어서 십여킬로 내 욕망의 무게(배낭)을 짊어지고 버스를 타야겠거니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려는 순간! 난 또다시 유로존을 벗어났음을 생각해 냈다. 아니 앞으로는 유로존에 갈 일이 없었다. 난 부두에서 시내 중심 역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악하악!

어깨는 베낭의 무게로 내리 누루고 북해의 찬바람은 나의 빰을 후려치고 너무 걸어서 감각조차 없어진 다리로 걸음을 옮길때면 머리속은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나는 이짓을 왜 하고 있는가의 깊은 묵상을 하게 된다. 정말 나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힘든짓을 왜 하고 있으며 이렇게 힘든 일을 하면 또 뭐가 남고 무슨 변화를 바라기에 이런 짓을 하는지. 그깟 3-4천원 아끼자고 한시간을 베낭을 메고 걷는짓이 정말 잘 하고 있는 짓인지. 나도 모르겠다. 그저 지금 내가 보고 하는 일들이 나를 더욱 비옥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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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걷고 걷다보니 드디어 스톡홀름 중앙역에 도착했다. 그 전에 환전소에서 ‘음… 버스 값이 한 육십 달러 정도 된다니까 여기서 백달러 정도 바꾸면 뭐 오늘 밤에 떠나는 거니까 이정도면 충분 하겠지’ 하고 백달러를 바꿨다. 환전소 직원이 이거면 되요? 하면서 기웃뚱 하면서 바꿔 준다. 나는 기차역에서 그 말을 실감했다. 우선 코펜하겐 행 버스티켓을 샀다. 그리고 베낭을 코임락커에 맞겼다. 배가 고파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 먹었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 처럼 난 백달러를 다 썼다. 맨탈이 붕괴되는 순간. 헬싱키보다 더욱 강력한 북유럽 물가의 실제를 경험한 것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60달러(100달러를 다 바꾸기는 남을 것 같았고 그 아래로 남아있던 지폐들이 60달러였다.) 다른 환전소 였지만 또 다시 환전소 직원은 이거면 될까요? 하며 머리를 기웃뚱 하였고 나는 소름이 돋았었다.

스톡홀름은 다른 도시와 다르게 강 옆에 세워진 도시가 아니라 호수 옆에 세워진 도시다. 그런 도시로 베를린이 있긴 하지만 지도상으로 볼 때 스톡홀름은 지리적으로 대도시가 형성될 위치는 아닌듯 했다. 난 배를 타고 여기에 들어오긴 했지만 지도를 보면 스톡홀름이 직접적으로 바다와 맞대고 있다고 하기에 힘들 정도로 도시 왼쪽으로 섬들이 지저분하게 펼쳐져 있어서 항해하기에 힘들 지형이고 오른쪽은 지저분하게 호수들이 널부러져 있는곳이 이 스톡홀름이다. 아니 외국인이 하루 놀러와서 무슨 이런 걱정을 하냐 하고 혼자 웃어 넘기고 도시가 탄생된 곳이라는 감라스탄으로 갔다. 감라스탄은 자체가 작은 섬이라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왕궁과 국회, 정부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고풍스런 섬 이었다. 나는 운좋게 군악대가 연주하는 시간에 왕궁앞을 거늘어서 군악대의 공연도 보고 감라스탄의 골목길들을 기웃기웃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헛!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비좀 피할 생각으로 큰 강인지 호수인, 여튼 물이 보이는 건물 옆에 섰다. 그리고 보니 건물에 데카르트 뭐라고 써있어서 뭐지 하고 사진을 찍어두고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데카르트가 스톡홀름에서 죽었단다. 아… 아마도 이 건물에서 데카르트가 마지막 생을 보냈나 보다.

하지만 스톡홀름에서 제일 인상깊었언 곳은 바로 노벨 박물관. 스톡홀름은 매년 노벨상이 발표&수상되는 도시이고 그 왕립학술원이 지금은 노벨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었다. 이 박물관은 현대의 지원을 받고 있어서 놀랍게도 그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한글로된 안내 자료가 있었다. 오!!!!! 그래서 일까 더욱 애착이 가는 노벨 박물관은 정말로 나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곳이었다. 노벨은 알고보니 과학자 라기 보단 뛰어난 경영가 인듯 싶었다. 그때 당시 노벨은 이미 전 세계에 자기 회사의 지사들이 설치하고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노벨은 그때 당시 지금의 애플  같은 회사가 아니었을까? 그 어마어마한 재산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상을 만들고 전 세계사람들이 평등하게 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준 게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인게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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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주요 무덤으로 사용되는 성당)

그리고 나는 정처 없는 스톡홀름 부유를 하다가 밤이 되어 마지막 만찬으로 케밥을 먹고 덴마크 코펜하겐, 스웨덴 어로 코펜함—, 덴마크 어로 쾨벤하운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헬싱키에서 일유로 마켓에서 산 목베게가 정말 유융하게 쓰였다.

덴마크에는 아는 누나가 사는 동네다.(나라가 정말 작아서… 동네라는 이름이 너무 잘 어울린다.) 편의 상Y 누나. 단지 이 누나는 코펜하겐에 살지 않고 한시간 정도 기차로 떨어진 로스킬데 라는 도시에 살고 있어서 그 누나를 만나러 로스킬데로 가야 했는데 먼저 그 날은 코펜하겐에서 약 두시간 정도 떨어진 오덴세 라는 도시를 혼자 구경을 하고 저녁에 로스킬데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덴세는 덴마크에서도 오랜된 도시인데 유명한 이유는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생가가 있어서 이다. 나는 다시 환전소에서 돈을 바꿨는데 이번에는 넉넉하게 한 200달러를 바꿨다. 그리고 오덴세 가는 기차 표를 끊었다. 기차로 2시간 가는 도시 오덴세. 기차값으로 코펜하겐-오덴세 편도 오만원을 냈다. 돌아오는 표 오덴세-로스킬데를 샀다. 사만 오천원 정도 였다. 밖에 나가서 길거리에서 파는 유명한 덴마크 핫도그를 사 먹었다. 오천원 이었다. 나는 이렇게 1시간도 안되 십만원을 썼다. 다시 200달러를 더 환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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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트라바의 유명한 건물. 스톡홀름에서 덴마크로가는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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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제가 봐도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네요…. 작년 5월에 갔다온걸 올해 1월에 올리다니…. 엄청난 블로그 관리자 나셨네요. 참…….

2011년 7월 26일 화요일

등록금에 관한 나의 의견

몇 주 전 등록금 천 만원 시대의 서울에서 반값 등록금에 관한 시위가 있었었다. 어찌 보면 인제서야 이런 말을 꺼내는 것도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나도 공부를 하는 한 명의 대학생으로서 잠깐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있다.

 

2011-06-14_17

나는 언제나 이런 일이 있으면 전체적인 맥락을 집어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을 하려고 노력한다. 아마도 제 3자의 입장에서 강 건너 불 마냥 바라만 보는 ‘외국인’ 이라는 나의 신분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와서 그런 습관이 생긴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국의 뉴스건 이 나라의 뉴스건 국제 뉴스건 언제나 나에게는 ‘강 건너 불’ 이었다. 하지만 이번 등록금 시위에 한 해서는 이상하리 만큼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내가 학생이라는 동질감도 있고, 내가 정치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 우리시대, 내 세대의 첫 번째 자발적이라는 시위라는 의미도 있다. 그 전에 있었던 여러가지 시위들(한미 FTA, 미국 쇠고기 등등)은 우리 세대가 참가를 했을 지라도 이건 전체적 혹은 대다수의 국민적 이익을 쟁취하기 위함이지 순수히 우리 세대만을 위한 시위라고 보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등록금 시위는 순수한 우리세대만을 위한 시위이다. 오히려 이 시위로 반값등록금, 무료 등록금이 시행되면 윗 세대의 세금부담이 늘어나거나 우리 다음세대의 돈을 먼저 까먹는 행위 일 수도 있다.

우리세대는 우리 부모님, 삼촌, 이모 세대가 이룩한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부유와 자유와 민주화를 누리는 가장 축복받은 세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 세대가 정해놓은 취업이라는 좁은 문을 지나가아만 하는 역사상 가장 수동적인 세대라고 생각한다. 윗 세대가 정해놓은 사회적 가치관을 물려받고 윗 세대가 정해주는 길을 걸어가며 윗 세대가 마련해둔 안정적인 사회에서 살아가길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수동적인 습관에 물들어 자발적인 참여, 튀는 행동과 일탈은 크나큰 위험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우리 윗 세대가 마련해둔 길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분들은 우리보다 인생을 앞서 살은 선배로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조언자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진정 우리에게 당장 피해가 오는 상황이 되자 뭉쳐서 한 목소리를 내는 일탈의 행동을 했고 나는 그 일탈을 멀리서 나마 지지한다. 

글이 무슨 대학교에 폭탄테러 하러 갈 사람마냥 너무 비장한데 분위기를 바꿔서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나의 이런 대안은 어떻게 생각을 하는 묻고 싶다.

내가 제안하는 대안은 ‘유럽으로 가라’ 이다.

지금 공부할 돈이 없어서 시위를 하고 있는데 무슨 비싼 유럽에서 공부를 하라는 미친 소리냐 라고 하실 분도 계시리라 믿는다. 하지만 이 이 유럽의 달동네 키예프에서 근 6년 이상을 유학한 숙달된 조교의 이유를 들어보라.

우선 같은 유럽이지만 영국과 러시아는 빼자. 영국은 미국과 비슷한 대학 시스템으로 천재 아니면 갑부 들이나 가는 나라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버린다. 러시아의 모스크바는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발에 채이는 게 스킨헤드이니 목숨을 보전하고 싶다면 이것도 과감하게 버린다. 우리고 목표로 하는 독일을 포함한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은 우선 학비가 없거나 아주 저렴한 수준이다. (특히 국립!)

아 먼저 우리의 비교대상 일반적인 한국 대학생의 년간 지출 비용을 알아보자. 등록금 천만원 시대 이니 우선 학비로 1년 천만원을 지불하자.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일반 대학생의 평균 생활비는 월 약 600,000원 정도로 나왔다.(자취 기준) 그리고 여기에 나는 약 5% 정도를 더하기로 했다. 대학생 이라고 아프지 말란 법 없고 대학생 이라고 문화생활 없는 무미건조 사막 육포 같은 인생을 살 순 없지 않은가? 즉 월 630,000원을 생활비로 잡고 여기에 10개월을 곱한다. 방학은 부모님 집에 눌러산다는 가정하에 10개월을 곱했다. 즉 일년 생활비로 약 6백 30만원을 쓴다는 결과가 나온다.

학비        10,000,000원

생활비      6,300,000원

합계        16,300,000원

이 돈이 우리가 대학생이라는 명목하에 지출하는 대략적인 금액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61211180012.734.0

이 돈을 환전 해 보자. 달러 환율은 어림잡아 1050원으로 잡겠다. 그리고 유로 환율은 1500원을 잡겠다. 그럼 지출하는 금액은 15,524달러, 혹은 10,867유로가 된다.

그럼 이 돈과 우선 내가 거주하는 키예프와 비교해 보겠다.

우리학교 학비는 일년 3,000달러 이다. 학교 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냥 편하게 우리 학교로 잡겠다. 그리고 여기 기숙사를 사용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초월적인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짓 임으로 원룸 아파트를 임대하기로 하겠다. 그러면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월 400달러면 충분히 원룸 아파트를 임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도 지금 그렇게 내고 있다. 그리고 12개월을 곱하면 집값으로 4,800달러가 나간다고 할 수 있겠다. 집세를 뺀 생활비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학교도 우리학교 기준이고 하니 나는 내 기준으로 잡겠다. 나는 대충 계산 해 보면 월 300달러 정도 쓰는 것 같다. 그래 통 크게 100달러 더 주자. 월 400달러 쓴다고 계산 해 보자. 그럼 400 곱하기 12는 다시 4,800달러 이다.

학비     3,000달러

집세     4,800달러

생활비  4,800달러

합계    12,600달러.

여기에 우리 한국대학생들의 지출금액 15,524달러와 비교해 보면 2,924달러가 남는다. 이 돈으로 당신은 여름방학 동안 한국을 가던가 주변국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아니면 부모님의 휜 등골을 약 8도 정도 펴 드릴 수 있는 선물을 드릴 수 있다.

그럼 이제 내 친구가 공부하고 있는 이탈리아 밀라노와 비교해 보자.

친구는 현재 밀라노 공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비교적 학비가 싼 나라다. 그래도 이 학교에서 EU국가 출신이 아닌 학생들에게 받는 학비는 일년에 약 800유로 정도 한단다. 하지만 자기 부모님의 수입 수준에 따라 차등을 주고 얼마나 많은 수업을 듣느냐에 따라 차등이 있단다. 내 친구는 부모님 수입을 아주 적게 신고해서 학비는 거의 몇 십 유로에 지원금(학기당 약 3,000유로) 까지 받으면서 다닌다고 한다. (지원금 이야기는 친구가 EU국적 소지자 이여서 그런 것 일수도 있다.) 하지만 생활비와 집값이 비교적 비싼데 거기에다 밀라노는 물가가 이탈리아에서 제일 비싼 나라로 손 꼽힌다. 그래서 룸메이트 2명이랑 같이 사는데 자기는 운이 좋아서 약 300유로를 내고 있고 생활비로 약 500유로가 든다고 한다. 300곱하기 12는 3,600유로, 500유로 곱하기 12는 6,000유로이다.

학비        800유로

집세     3,600유로

생활비  6,000유로

합계    10,400유로

이것을 한국학생 지출과 비교하면 10,867 – 10,400 = 467이니까 467유로나 절약하게 된다. 그리고 학교 지원금이나 외국학생들에게도 주는 장학금 까지 노려 볼만 하다고 하겠다. 거기에 당신은 이탈리아 대학교에서 졸업했다는 간지나는 졸업장을 취득하게 된다.그리고 졸라맨 부모님의 허리띠를 약 6센티 더 늘려드릴 여유도 생긴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에 관심이 많아서 알아본 자료이니 비교적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었지만 다른 유럽국가들은 더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독일 같은 경우는 입학만 가능하다면 본국 학생들과 동일한 조건으로(약 200유로 안팎의 수업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핀란드와 스웨덴은 전액 무료 이고, 덴마크는 거기에 매월 약 70만원 가량의 국가 보조금 까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이것도 EU국민에 한 해서 일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정말 정말 단면적인 것만 계산을 했을 때 이다. 한국은 우리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여지가 훨신 더 많이 있고 절약 할 수 있는 방법도 더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한국의 비싼 등록금은 여지없이 학자금 대출이라는 빛을 안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6개월 만에 덥썩 500만원씩을 만들어 낼 가정은 한국에 절대 많이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는 좋건 싫던 간에 어디선가 돈을 빌려와야 한 다는 것이고 이것은 적건 많건 이자라는 것을 만든다. 싸게 해서 연 5%라도 일년에 50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유럽은 한국보다 비교적 많은 생활비가 많이 들겠지만 목돈이 아닌 꾸준한 돈이니 월급을 받는 부모님 이라면 오히려 빛을 내지 않고도 지원을 해 주실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사회로 나갈 때 빛이라는 것을 덜고 나가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건 경제적인 면으로만 계산을 했을 때 일이고 다른 면을 본다면 유럽이라는 풍부한 나라들이 주는 정신적인 면은 무궁무진하다. 세계의 패권은 미국으로 이미 넘어 갔으니 미국이 최고다 라고 할 사람도 있지만 이 Old 대륙 유럽의 문화적 영향력은 아직도 무시 못할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세계사를 배울 때 가장 많이 배우게 되는 대륙이 어디인가? 유럽 아닌가? (아 한국은 역사 안배우지. 국사도 제대로 안 가르치는데 세계사 까지 가르칠 시간이 있나, 죽어라 국영수지.)그들의 매너와 라이프 스타일은 이제 대부분의 나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럽에 대한 이런 나의 생각이 사대주의라면, 나는 사대주의자다. 나는 유럽대륙이 좋다. 내 나라 한국도 내가 좋아하지만 아직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유학생활이라는 것은 ‘모’ 아니면 ‘도’ 다. 정말 값진 시간을 보내거나 아니면 더 많은 돈을 들이면서 허송세월을 보낼 수 있다. 그래도 나는 한국 학생들을 믿는다. 고3때의 그 필살적인 공부의 노력은 유수의 유럽 대학들을 뚫을 수 있는 저력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인들의 근면성과 좋은 머리는 유학생활의 뒷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난 낙관주의자니까….) 나중에 내가 느낀 유학생활의 cons와 pros를 정리해 올릴때 더 자세히 쓰겠지만 유학생활에서 주는 이익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제서야 우리는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흐름을 방해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도 나는 너무 한국만 바라보는 내 세대, 내 친구들이 아쉽다. 약간만 관점을 바꾸면 길은 많다. 비록 그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 돌아서 가는 길 인지 지름길인지 모르지만 어느 길이든 그 길만의 스토리가 있으며 그 길을 걸어 갔다는 것 만으로도 좋은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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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9일 토요일

북유럽 여행 (1편)

처음 블로그를 만들때 3년동안 키예프에 살면서 생긴 일이나 정보들을 나누자 라는 마음으로 개장했는데 결국 내 여행기만 남기는게 주 목적이 된듯하다.

여튼 이번에도 또!! 여행을 갔다. 기간은 5월 부활절, 메이데이, 승전기념일 연휴가 있는 4월 28일부터 5월 10일까지 총 13일. 여행 루트는 좀 길다.

리투아니아(빌뉴스, 트라카이) – 라트비아(리가, 유르말라) – 에스토니아(탈린) – 핀란드(헬싱키) – 스웨덴(스톡홀름) –덴마크 (오덴세, 실랜드 섬 전역) 즉 빌뉴스 –in, 코펜하겐 –out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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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뉴스 대성당)

이 걸 몇번이나 대답해줬는지 모르겠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선생들도 다 물어본다. 이번 여행은 어디 어디 갔다온거야. 그때마다 이걸 반복해서 들려줬다. 이건 뭐 어떻게 종이에 적어다 두고 보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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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뉴스 국립극장의 조각상)

여행을 떠니기 전날 나는 밤을 샜었다. 설계 과제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하다보면 또 생각나고 또 추가할게 생기고 하다보니 밤을 샜다. 아침 6시까지 완성을 시키고 한 1시간 반 정도 잔 다음에 설계도 프린트를 하러 갔다. 비행기는 오후 2시 출발. 그날따라 왜 프린트 하는 곳은 컴퓨터가 말썽일까. A1 3장을 프린트 해야 하는데 두번째 종이에서 컴이 고장이 났다. (결과적으로는 내 설계도에 너무 잔 그림이 많아서 처리 속도가 늦어진게 주 원인이긴 했다만) 결국 10반쯤 되서 교수에게 설계도를 제출했다. 역시나 오늘 수업에도 나만 왔다. 교수는 3명인데 점수를 주는 단계는 언제나 같이 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경우 최소 2명은 있어야 한다. 다행이 2명이 있었다. 그것도 원로로 평가받는 교수 한명과 그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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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카이의 성)

이 교수들은 비행기 시간이 가까워 오는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세월아 내월아 지들 수다만 떨고 있다. 근데 결국 날 보고 그냥 생각을 좀 하더니 (내 과제는 정말 대충 보고) 점수를 후하게 줬다. 그리고 다음주 수업때 다음 설계할꺼 미리 준비해서 오란다.

-어, 저 오늘 떠나고 2주 후에나 오는데요.

-어디가는데?

-그러니까…. (저 위에 써둔거 다시 반복했다.)

-많이 돌아다니네. 가서 그럼 사진 많이 찍어서 애들이랑 같이 보게 준비해!

그렇게 나는 이번 여행에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도시들마다 뛰어난 쇼핑 센터들의 외관 사진과 내부 구조를 구해와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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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 올드타운의 맞은편)

키에프에서 산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나라 항공을 타고 여행을 하는것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에로스비트를 타고 처음 출발도시로 가게됬다. 학교 과제를 제출하고 부랴부랴 집에와서 택시를 부르고 여행베낭을 메고 공항으로 갔다. 다행이 시간적으로는 여유가 있게 도착을 했고 나는 짐을 보내기 위해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서 베낭을 컨베어벨트 위에 올려놓고 여권을 주면서 말했다.

-코펜하겐 비행기요.

-예. (자판두둘이는 소리) 비자 있으세요?

-한국인은 유럽여행에 비자 필요 없어요. (아 왠지 모를 뿌듯함)

-예…. 어 근데 명단에 손님 이름이 없네요. 표 좀 보여주시겠어요?

-어? 정말요? 잠깐만요. (부시럭부시럭) 여기요.

-감사합니다. 저기……. 코펜하겐이 아니라 빌뉴스 가시는건데요.

-아!!!!!!!!!!!!!!!!!!!!!!!!!!!! 빌뉴스 였구나!!!!!!!!!!!!!!! 예!!! 빌뉴스요! 돌아오는게 코펜하겐이지!!!!

난 이렇게 처음 떠나는 순간부터 한국인의 자랑스러움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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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의 구시가지)

아에로스비트의 빌뉴스행 비행기는 원래 시간보다 약 50분 정도 늦게 출발했다. 언제나 그렇듯 ‘기술적인 문제’로 출발이 늦어졌다. 그리고 바로 기내식이 나왔다. 샌드위치와 음료. 나는 커피와 물을 부탁했다. 커피는 일반적인 인스턴트 커피 였고 샌드위치는 정말 이런게 다있어 할 정도로 맛이 없었다. 우선 빵은 가루가 되어 다 날랐다. 그리고 안에 들어간 버터같은 마요네즈는 너무 많았고 아채라곤 배추(우리가 김치로 먹는 그 배추다!) 한장과 샤프심 두께의 햄 한장이었다. 옆에 앉아계신 미국인 할머니는 한 두입 먹고 오렌지 주스만 마셨다. 근데 나는 점심도 안먹고 학교에서 바로 왔더니 배고파서 모조리 먹었다. 다 먹고 흘린 빵가루(빵이 이상해서 엄청나게 많았다.)를 깨긋하게 물티슈로 쓸어담아 샌드위치 껍데기에 담았더니 옆에 앉아있던 미국인 할머니가 날 이상하게 처다본다. 뭘 잘못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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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의 유명한 세형제.)

비행기에서 나는 ‘아 이제 영어만 사용하게 되겠구나.’ 생각하고 맘의 준비를 했다. 러시아어는 더 이상 쓸 일이 없군. 하며 나는 빌뉴스 공항에 내렸다. 비행기에서 공항으로 가서 여권검사하는곳에 줄을 섰다. 헐 어찌 된 일인가 내 앞에 있는 아줌마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러시아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공항직원도 러시아어로 대답을 다 해줬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맘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러시아어가 너무나도 쉽게 통용되는것에. 공항을 빠져나와 환전을 약간만 한 뒤(공항은 언제나 환율이 안좋아요! 그러니까 차비 정도만 환전하세요!) 새내로 들어가는 기차를 타기위해 역으로 갔다. 거기에 적혀 있는 안내문은 모두 리투아니아어, 러시아어, 영어였다.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이거 러시아어를 읽어야 하는 것인가 영어를 읽어야 하는것인가. 그리고 시내 가게에서 울려퍼지는 유행곡들은 러시아노래 였으며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에도 러시아어가 많이 쓰였다.

나중에 빌뉴스에서 리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대기실에 앉아 계시던 아주머니께 물어보았다. 리가도 여기만큼 러시아어가 많이 통하나요? 아줌마는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날 보더니 ‘거긴 여기보다 더 해!!’ 한다. 이래서 발트 3국의 여행은 쉽게 러시아어로 블라블라 거리면서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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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의 꿈의 휴양지 유르말라)

빌뉴스에서의 만난 사람들:

1)술취한 현지 아저씨

이 아저씨의 이름은 뭐라고 4글자 였는데 까먹었다. 특징적인것은 이미 유스호스텔에 들어왔을때 부터 술에 취해 들어오셨고 나에게도 자신의 품 안에서 꼬냑을 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직업은 통역 & 가이드. 덕분에 트라카이라는 지역을 알게 되었고 다음날 아침일찍 트라카이를 향해 갔다. 비록 두모금 이지만 공짜술을 얻어 현지인들에게 공짜 술을 얻어먀셔본건 처음이다.

2)스페인 청년 다니엘

트라카이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났다. 그의 복장은 누가봐도 ‘여행자’였다. 머리는 한 4일은 안 감은듯한 떡진 머리와 인도풍의 셔츠에 묵직해 보이는 베낭을 메고 있었다. 그는 내 옆자리에 앉아서 트라카이까지 갔다. 내려서 같이 버스터미널에 있는 지도를 보고 친하게 되서 계속 트라카이에 이어 그날 하루종일 같이 다녔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도 잘 다녔는데 덕분에 빌뉴스와 트라카이에서는 내 얼굴이 들어간 사진들이 남아 있다. 다니엘은 폴란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인데 이번 여행은 모두 카우치서핑으로 숙소를 찾게되어서 돈이 적게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나도 나중에 키예프 오게 되면 연락달라고 했다. 바르셀로나 산다고 했으니까 나도 언제 스페인 가게 될 일이 있으면 신세좀 져야지. (PS. 이번 여름 한 7월 경에 키예프에 온단다. 그래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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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회사 탈링크의 사무실이었던걸로 기억한다. 탈린)

빌뉴스는 정말 작은 도시다. 구 시가지는 정말 거짓말 안하고 2시간이면 들어갈 곳(박물관이나 미술관제외) 다 들어가고도 여유있게 구경할 수 있다. 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일찍 들어와서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아저씨와 술이나 한잔씩 하고 있었겠는가. 하지만 빌뉴스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물가가 싼 곳이었고 편안함을 주는 곳 이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수출한 상품들이 제일 많은 곳이었다! 빌뉴스의 슈퍼마켓에서 보는 ‘추막’케챱의 위풍당당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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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의 유명한 교회)

  리가로 가는 버스는 저녁 9시 반에 출발해 약 2시 반쯤 도착하는 정말 어정쩡한 시간대의 버스였다. 나는 숙박비를 아끼겠다는 일념하에 이 버스를 탓고 이것은 정말 저주스런 날의 시작이었다. 리가에 도착해서 우선 한 30분 정도 버스 터미널을 돌아다니면서 탈린으로 가는 버스 시간과 가격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슬슬 구시가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때가 약 3시가 좀 넘었을때다. 그리고 터미널을 나서는 그 순간 5월의 기온이라고는 할 수 없는 바람이 내 싸대기를 후려쳤다. 난 구 시가지를 향해 걸어갔다. 근데 리가는 새벽3시에도 잠을 안자고 있었다! 구시가지에 밀집해 있는 술집들과 클럽들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음악을 쾅쾅 틀어놓고 있었다. –뭐야… 이사람들… 무서워…

근데 오늘은 금요일! 그 유명한 후라이데이 나이트! 나는 사람들을 피해 한적한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저기서 술취한 사람들의 괴성(포효)가 들렸다.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가방을 꼭 안고서 선잡을 자려는데! 너무추웠다. 이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기온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옷을 최대한 으로 입고 있어도 빈약했고 잠은 오지 않았다. 돈도 없으니 카페 같은데 앉아 있지도 못하고 그저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정말 추운 날이었어…….

드디어 해가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날씨는 춥고 들어가 있을 곳도 없고 돈도 없다. 그런데! 6시에 문을 여는 성당이 있었다. 토요일 새벽 미사라니. 여튼 나는 그 성당 앞 공원에서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는 순간 들어갔다. 따듯한 성당에서 마음의 안식을 되찾았다.

021

환전을 해 보니 라트비아의 돈은 엄청나게 비싼돈이었다. 내가 볼때 유럽에서 제일 비싼 돈이 영국 파운드가 아니라 라트비아 라트인거 같다. 100달러를 바꾸면 한 45라트를 준다. 절반 이하로 가치가 떨어지니 이건 1센트를 써도 손이 후덜덜 떨린다. 1라트는 한국돈으로 약 2400원돈 된다. 그만큼 가격이 싸긴 하지만 단위 자체가 커서 동전하나하나 소중하게 썼다. 에스토니아와 핀란드는 유로를 썼고 스웨덴과 덴마크는 각자 자기네 돈을 쓰긴 하지만 둘다 명칭은 크로너 이다.

이렇게 라트가 비싸니 라트비아는 수입품이 많았다. 물론 나라가 작다보니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생산품이 많이 없을것으로 생각이 되지만 높은 라트 가격도 자체생산 보다는 수입하는 방향으로 많이 가도록 이끈것 같다. 그래서 좋은점은 비록 이나라가 뭘로 벌어 먹고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는 모습은 서유럽을 따라 잡은 모양이다. 서유럽제품들이 바로바로 수입이 되니 사람들은 당장 품질 좋은 제품을 사용하니 특별하게 불만은 없어 보인다.

리가를 포함한 발트3국의 도시들은 러시아지배를 당하기 이전부터 생활수준이 훨신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수준이 못하는 러시아가 힘으로 땅을 점령하자 다른 어느 지역보다 독립&민족주의 운동이 심한 지역이었고 소련으로 병합이 되고 나서 부터도 러시아는 특별히 이 지역에 더 신경을 써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가 이 동네는 다른 구 소련지역에 비해 훨신 잘 사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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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도 빌뉴스와 비슷하게 올드시티 자체는 크지 않았다. 여기도 다 둘러 보니 한 4시간 정도. 특히나 나는 새벽부터 둘러봤으니 이놈의 도시에서 진정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유르말라라는 리가에서 약 30분 떨어진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유르말라는 발틱해에 접해 있는 유명한 여름 휴양지이다. 특히나 러시아 인들에게는 가깝고 좋은 최고의 휴양지였다. 지금도 러시아에서 매년 주최하는 ‘노바야 볼나(New Wave)’라는 국제 가요콘테스트는 이곳 유르말라에서 여름에 열린다. 하지만 내가 갔을때는 역시나 아직 추웠다. 5월에 북해에 서서 겨울바람을 느끼고 왔다. 나는 세찬 바람때문에 흘리는 눈물을 닦으며 시내 중심지를 둘러보고 다시 리가로 돌아왔다.

정말 여기서 부터는 리가에서 할 일이 없었다. 무거운 가방 메고 백화점 돌아다니기도 뭣하고 시내 중심 광장에서 앉아서 사람구경이나 하고 있었다. 어딜 더 돌아다니고 싶어도 어깨를 내리 누르는 가방덕분에 금방 잊혀졌다. 그리고 밤이 오자 슬렁슬렁 버스터미널에서 과자한봉지와 전자책을 들고 탈린으로 향하는 버스가 오길 기다렸다.

030

(헬싱키의 대표 교회 외관과 같이 내부도 정말 깔끔했다. 너무 깔끔해서 약간의 조각상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탈린버스터미널에 도착한건 약 6시 쯤이었다. 너무 추워서 좀 대합실에서 기다렸다 가려고 있었는데 대합실은 이미 콩나물 시루였다. 그 옆 계단에 앉아 있는 동남아 여행객을 발견하고 나는 탈린에서 지낼만한 숙소를 물어보았다. 근데 지들은 당일코스로 온거라 탈린은 숙소를 안 알아보고 왔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디서 왔느냐 물어봐서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눈빛이 변한다. 되게 부러운 눈빛과 함께 무엇인가 말을 더 하고 싶은데 떨려 하는 듯한 눈빛? (이거 순간의 눈빛을 어떻게 설명 할 길이 없네.) 그 사람들에게 한국어 ‘안녕’을 가르치고 있는데 저 대합실에 누가봐도 한국사람인 여자분 2명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얼른 멈춰세우고 숙소를 물어보았다. 자기네들도 지금 찾으러 간단다. 그래서 동남아 여행객들을 버리고 쭐래쭐래 따라 갔다.

터미널을 나오자 세찬 바닷바람이 내 싸대기를 때린다. 지도상으로는 절대 먼 거리가 아닐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추위를 못 견디고 우리는 그냥 트램을 타기로 했다. 우선 역시나 그렇듯 올드시티로 갔다.

탈린에 도착한 그 날은 5월 1일 전 세계적은 공휴일이었다. 그래서 올드타운 안에 있는 유스호스텔은 모두 풀로 가득 찬 상태. 그중 한 유스호스텔에서 알려준 곳으로 가기로 했다. 지도에 16유로 라고 적어둬서 아 여기는 방 하나에 16유로 이구나 하면서 셋이 갔는데 호스텔 이름이 16유로 였다. 왠지 모르게 배신당한 느낌. 나는 도미토리에 자리가 있어서 그곳으로 갔고 여자분 두분은 더블룸(이게 16유로였다.)을 드디어 구했다. 근데 우리는 이미 방을 구하러 돈 올드타운을 둘러본 이후라 이젠 나도 할 일이 없었다…….

샤워를 간단하게 하고 나는 탈린 항으로 배표를 사러 갔다. 나는 탈린-헬싱키-스톡홀름를 배로 가게 된다. 그리고 이 라인을 다 다니는 회사는 바이킹 라인과 실야링크 두 회사였다. 그런데 분명 내가 헬싱키-스톡홀름 배표를 인터넷으로 알아봤을때 약 100유로(바이킹 기준)약간 넘었던걸로 알고 있는데 탈린에서 헬싱키를 거처 스톡홀름으로 가는 배표가 현지에서 알아보니 52유로 였다. 실야링크는 더 싸서 47유로였나 했다. 어떻게 배를 한번 더 타는데 오히려 가격이 다운이 되지? 패키지 가격이라 저렴하다고 하는데 정말 이해할수 없는 일이 었다. 여튼 나는 싸게 잘 갔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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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의 유명한 건축가 알바르 알토가 만든 핀란디아 홀)

아메리카노를 모르는 바리스타

커피를 워낙에 좋아하다 보니 여행을 다니면서도 커피를 많이 마신다. 특히나 이 북유럽은 일인당 커피 소비량이 세계 최고 일 정도로(핀란드가 1위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들이라 얼마나 좋은 커피를 마실까 하는 궁금함에 항상 커피를 사 마셨다. 그런데 탈린의 커피 키오스크에서 황당한 일이 있었다.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예? 에스프레소요?

-아니요. 아메리카노여.

-에스프레소여?

-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가 뭐에요?

엥? 나는 그 말을 듣고 눈만 깜박 거리며 한 2초간 그여자를 바라봤다.

-엄…………. 그러니까……. 큰 컵에 우선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구요.

그 여자는 열심히 따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부어 주세요.

그 바리스타도 나를 한 2초간 깜박이며 보다가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

-그게 아메리카노에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으로 아메리카노 라는 단어가 세계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북유럽 사람들의 커피 습관을 보니 여기 사람들은 에스프레소는 사용을 잘 안하고 드립커피를 많이 끓여서 보온병 같은데 보관해서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카페에 가면 에스프레소 머쉰들이 다 있고 에스프레소를 포함한 여러 커피들을 만들어 마시는데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마시는 커피는 일반 드립커피이며 그냥 커피라고 하지 따로 아메리카노라고 하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배를 타기 위해 항구로 가는 길에 다시 그 키오스크에서 커피를 샀다. 바리스타는 밝에 웃으면서 ‘아메리카노여?’하면서 물어본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고 따듯한 커피를 사서 항구로 향했다.

038

(이 배는 헬싱키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