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15일 수요일

키.더.태(그라나다)

(천재: 이슬람 장인들)

1) 새벽 도착.

세비야에서 그라나다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일 늦게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에 왔도 도착한 시간이 새벽 3시 경이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때 날짜를 하루 늦게 검색해 볼 껄 하는 생각이 든다. 즉 12일날 떠나는 버스를 검색하면 12일 밤 12시 까지 나오는데 만약에 13일 것을 검색을 했으면 새벽 2-3시쯤 출발하는 버스를 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래도 알함브라 궁전을 보기위해서 일지감치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왔으므로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궁전으로 가기로 했다. 이번에도 문닫은 관광안내소에서 운좋게 버려진 지도를 득템하고 알함브라 궁전을 향에 슬슬 걸어갔다. 새벽 3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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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궁전을 들어가기 위해 줄서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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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인락커.

출발할때 어깨에 매고 있는 베낭의 무게를 재 보니 약 5.5킬로 정도 된다. 많이 않은 무게지만 이것을 메고 하루종일 걸으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나는 이번에도 이 베낭을 지고 그라나다 버스터미널에서 알함브라 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 왜 이걸 버스터미널에 있는 코인락커에 안맡겨 둔거지? 그 생각을 했을 때 이미 나는 약 30이상을 걸은 상태였고 다시 돌아가기 싫었다. 어차피 버스터미널에서 다시 버스타고 발렌시아로 넘어갈것인데. 참 생각이 짧았다. 그리고 내 어께는 다시 고생길에 올랐다. 발렌시아에서는 반드시 코인락커에 베낭을 넣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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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밤중에 도시 다니기.

늦은 밤에 외지의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은 어느 도시건 가이드북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짓으로 평가 받는다. 그건 사실이다. 주로 범죄는 밤에 생기니까. 그리고 밤에는 낮만큼 빠른 대처를 할 수 도 있는 것도 아니고. 근데 오히려 새벽 3-4시는 범죄자들도 잠자는 시간이어서 다니는데 위험 같은건 느껴지지 않았다. 거리에 사람이 있어야 위험을 느끼지. 길을 가다 어떤 병원 입구에서 담배피고 있던 사람들에게, 나는 드디어 만난 사람이 반가워서 길을 물어보려는데 내가 다가가자 오히려 흠짓 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저 힘없는 길잃은 여행객임을 알자 스페인인 특유의 친절함으로 내 지도를 펼치고 여기서 알함브라를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을 “스페인어”로 상세하게 알려주셨다. 

처음에는 길을 잘못들어 시 외곽쪽으로 빠지는 길로 갔다가 헉 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결국에는 시 중심가를 지나서 알함브라를 향하는 산으로 제대로 가기 시작했다. 근데 이미 난 이때 시 중심을 지나면서 그라나다에서 봐야 할 것들을 다 보고 말았다. 결국 이 도시에는 남은건 알함브라 밖에 안남은건가. 그렇게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가는데 광장 벤치에 흰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누워있었다. 누가 봐도 관광객. 옆으로 누워 자고 있었다. 광장 한 구석에서 노숙을 하는 저 대인배 여행객은 누구일까 엄청난 궁금증이 생겼지만 차마 다가서지 못하고 나는 알함브라궁을 향해 산을 올라갔다.

알함브라는 산에 위치해 있다. 언덕이 아니라 산이다. 절대 이 산을 가볍에 여기지 말길 빈다. 정말 힘든산이다. 더군다나 베낭을 짊어지고 간다면. 낮에 보니까 거기까지 버스도 다니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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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 번째.

땀을 비오듯 흘리며 알함브라 티켓 판매소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이미 도착한 2명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알함브라의 인기를 실감했다. 그래도 ‘았싸 3빠!’ 하면서 벤치에 앉았다.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왔다. 베낭을 베게삼아 잠깐 잠을 잤다. 멀리서 사람 소리가 들린다. 지금 시간은 5시가 안됬는데 벌써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알함브라 궁전 직원들이 정문 앞을 물청소 하기 시작했다. 호스로 물을 뿌리고 지나가자 갑자기 기온이 쑥 내려간다. 으스스해 팔로 몸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사람들이 은근히 모여있었다. 나는 당당하게 내가 3번째요! 하고 외치며 앞에 있던 사람들을 제치고 매표소 앞으로 나갔다. 다들 나를 봤었는지 말없이 비켜준다. 일찍 온 보람이 있다. 몸은 피곤하지만.

이제 표를 판매하는 시간인 8시 반이 가까워 왔다 다는 뒤를 돌아보았다. 헉! 벌써 줄이 끝이 안보일 정도로 많이 서 있었다. 잘난것도 없지만 그냥 씩 하고 미소가 났다. ㅎㅎㅎㅎㅎ 난 세번째다…….

(추가적으로 정보를 드리자면 알함브라 궁전은 자기가 관람할 시간을 인터넷으로 예매 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무식하게 오지 말고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오세요. 그게 표도 확실하게 있고 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일정부분은 저처럼 바로 오는 사람들을 위해 그날그날 판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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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 알함브라다!

  표에는 제일 중요한 나자리스 궁에 들어가는 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정해진 시간은 겨우 30여분. 그것도 베낭을 알함브라 코인라커에 두느라 5분이나 깍아 먹었다. 아 피같은 시간. (결론적으로는 들어가는 입장시간은 체크해도 나가는 입장시간은 체크 하지 않았다.-_-.. 아침이라 그랬던건가.)

우선 이번 여행에서 알함브라가 차지하는 위치는 지대했었다고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알함브라는 내가 가장 기대를 하고 있었던 관광지였다. 얼마나 아름답길래  많은 예술가들이 알함브라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얼마나 화려하길래 스페인 왕이 자신의 궁으로 쓰게 했는지 내 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루트를 정할 때 그라나다와 바르셀로나는 내 방문 일순위의 도시였다. 나는 두개의 다른 문화가 만나는 것에 많은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화가 만났을 때의 화학적 반응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게 큰 기대와 함께 준비도 많이 했었다.

그라나다는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의 수도였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려는 움직임에 평화롭게 그라나다를 스페인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알함브라는 스페인왕의 왕궁으로 쓰이게 되었다. 근데 궁금한건 그럼 거기 살고 있던 이슬람인들은 어디로 간거지? 북아프리카로 갔으려나? 아니면 개종을 하고 남아있었을까? 인터넷을 찾아봐도 그라나다 왕국이 나라를 넘겨주고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 찾을 수 가 없었다. 아시는분 계시나요?

여튼 나는 드디어 떨리는 마음으로 알함브라 궁에 들어갔다.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돌과 나무를 천이나 레이스 다루듯이 조각해논 이슬람 장인들의 실력에 놀랐다. 종류석 같이 꾸며놓은 천장, 벌집처럼 조밀조밀 조각해 놓은 벽과 기둥. 그 화려한 모습에 넉이 나간채로 있었다. 그리고 나자리스 궁의 하이라이트! 사자분수가 있는 정원으로 갔은데. 헉. 공사중이었다. 난 이 사자분수와 정원을 보고 싶어서 알함브라로 간거였는데 난데 없이 공사중이란다. 아. 슬프다. 사자분수만 따로 박물관에서 전시를 한다는데 아쉽게도 월요일은 박물관 휴일이란다. (스페인의 대다수 박물관들은 월요일 휴일입니다. 참고하시길) 결국 나는 조형미 넘치는 사자분수 정원은 보지 못하고 아쉽게 나자리스 궁을 빠져나와야 했다. 은근한 시간의 압박. 워낙에 아침일찍 가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사진찍기는 좋았다.

알함브라는 사실 내가 너무 기대가 컸던 만큼 모든것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아니 어떻게 말하면 실망했다고 해도 될것이다. 세비야의 알카자르와 많이 흡사해서 이미 면역이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역시 여행의 불변의 진리,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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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제 뭐하지?

알함브라에서 최대한 늦게 나왔다. 안에서 일본인 단체관광객 인척도 해 보고 정원 가꾸는 것 때문에 잠깐 열어둔 길로 들어갔다가 헤메서 관리인이 길 다시 가리켜주기도 했다. 이렇게 한참을 놀다가 결국 나를 알함브라에서 나오게 한건 배고픔 이었다. 먹은것도 없이 물만 마시고 새벽 3시서 부터 1시 까지 알함브라에 있었으니 알만하지 않겠는가.

결국 나는 배가고파서 알함브라에서 나왔다. 다시 산을 내려가 시내 중심광장에 갔다. 내 사랑 보카디요와 맥주로 점심을 먹고 다시 주요관광지들을 돌아다녔다.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은 대성당. 모든 스페인 도시들이 그렇듯 그라나다에도 큰 대성당이 있다. 근데 스페인에 있는 대성당 치고 흔하지 않은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었다. 그리고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이리저리 옷가게에서 옷구경도 하고 사람들 구경도 하고 돌다다니니 이미 나는 그라나다에서 해야 할 것은 다 한거 같다. 이제 뭐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머리를 써도 밤 늦게 출발하는 발렌시아 버스때 까지 할 일이 없었다. 날은 덥고 할일은 없고 가방은 무겁고 심심하고. 역시 당일코스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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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6일 월요일

키.더.태 (세비야)

(천재: 이사벨라 여왕과 콜럼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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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의 종탑-히랄다 탑)

1)데자뷰

리스본에서 저녁에 출발해서 세비야에 도착한 것은 약 새벽 5시 경이었다. 그리고 숙소를 찾으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침 역무원에게 이 주변에 숙소가 많은 지역을 물어보려는데 한 여자분도 숙소를 찾고 있다고 해서 같이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스페인어 비슷하게 하길래 스페인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이탈리아인. 그래서 내가 이탈리아어로 ‘저는 요즘 취미로 이탈리아어 배우고 있어요.’ 했더니 말 못한 귀신이 붙어 먹었는지 미친듯이 이탈리아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이구~ 머리가 아찔해진 나는 아주 기초레벨이라고 해 주었더니 다시 영어로 돌아와 잠잠해 졌다. 난 그 순간 반지의 제왕 1편에서 절대반지를 본 갈라드리엘 여왕이 생각났다…….

그 여자는 같이 한 3개정도 알아보고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먼저 역 쪽으로 갔다. 나는 혼자 남아서 더 죽~ 찾아다녔다. (사실 이때는 몰랐지만 숙소 찾는동안 세비야에서 볼만한 것은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결국 20유로에 옥탑방에 머물기로 했다. 옥탑방이라 엄청 더울 것이라고 생각됬지만 방에 에어컨이 달려 있어서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주인은 영어는 숫자 밖에 모르는 남미스런 얼굴의 아저씨. 방은 약 3평 남짓한 크기에 화장실(문 밖에 있었지만 옥상에는 나밖에 없어서 전용이었다.)이 딸려있었고 안에는 주황색과 노란색 위주로 인테리어 해 놓았다. 벽 한곳에는 창문이 나 있어서 옥상이 보였고 붉은색의 커튼이 쳐져 있었다. 짐을 정리하고 풀어 놓는데 문득 이 방에 와 본듯한 생각이 들었다. 어허~ 데자뷰 현상이군. 그리고 내가 이걸 언제 봤었나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해 낸 것은 꿈. 나는 원래 꿈을 잘 안꾸는데 (정확하게는 기억을 못하는데) 꿈을 꾸게되면 거의 대부분이 실제로 있게 되는 것이 많았다. 이번 경우에도 마찬가지. 내가 꿈에서 기억하는것은 노란색과 주황색이 많이 들어간 방. 침대. 작은 창문하나. 동남아 사람같은(그때 봐서는 동남아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여기 와서 보니까 남미계 였다.) 아저씨 한명. 빨래들이 널려 있는 옥상. 등이었다. 그리고 생각나는 장면은 커튼을 젔히자 옥상에서 무엇인가 하던(아마 빨래를 널고 있었던 듯) 이 동남아 아저씨가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보내고 나는 순간 놀라서 떫떠름한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하고 다시 커튼을 치는 장면이 기억났다. 이 기억때문에 나는 그 숙소에 머무는 동안 커튼을 졌힌적이 없다. 근데 나는 이미 스페인에 오게 될 것을 알고 있었던건가. 그리고 세비야에 와서 이곳에 머무를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이리저리 데자뷰 현상은 신기한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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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의 서쪽 문과 내부)

2)인종과 식민지

스페인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있다. 몇시간이면 지구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날라가는 시대에 인종과 국적이 무슨 대수냐고 하겠지만 스페인에는 특히나 외국인들이 다른 스페인인들과 함께 공존하며 살고 있었다. 특히나 현지에 뿌리내리고 사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다른 나라에서 여행온 사람들 이겠지 할 분도 있겠지만 엄연히 수년간을 스페인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괜히 ‘현지인 포스’라는게 있는게 아니다. 내가 한 나라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왔는가는 본인은 모를 수도 있지만 티가 다 난다. 그런 의미에서 스페인에는 외국인들이 많다. 우선 스페인이 과거 식민지들을 많이 지배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 일에 대한 사과일까 외국인들에게 노동법이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비교적 용이하다.

우선은 남미계 사람들이 많다. 스페인의 주요 식민지 였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선 남미인들에게 스페인은 본국보다 급여도 많고 말도 쉽게 통하는 나라이니 여유가 있다면 이주해서 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구멍가게들을 차지한 중국계인들. 이 사람들은 정말 골목골목 잘도 들어가서 구멍가게들을 경영하고 있다. 그리고 스페인사람보다는 부지런 해서 몇시간 더 일찍 열고 일반 가게들은 문 닫는 주말에도 문을 열고 시에스타도 없이 하루종일 일한다. 물론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편하고 고맙다. (그래서 물건값은 더 비싸지만) 중국인들이 놀기 좋아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일을 대신 하고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쉴 때 일하는 중국인들. 과거 기독교 인들이 금융업(고리대금업)을 교리상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안할 때 대신 유대인들이 하던 것이 매치된다. 이제 몇백년 후면 유통업계에 중국계 로스차이드 가문이 생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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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랄다 탑에서 찍은 투우장)

3)세비야 대성당.

세비야에 있는 대성당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안에 들어가면 그 키기와 높이도 높이이지만 우선 그 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의 거대함에 놀란다. 그리고 약간 어두운 듯한 분위기에 곳곳에 새겨진 장식들과 제단은 입을 벌리고 수초를 바라보게 할 정도로 화려하고 멋지다. 특히 세비야 대성당은 지붕이 아름다운데 고딕양식과 아랍적인 양식이 잘 어울려져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이 큰 대성당을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과거 장인들의 노력에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대성당의 외적 특징으로는 정면 파사드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 적인 고딕성당처럼 아 여기가 정면이구나 하는 파사드가 없다. 아마도 처음 완공 이후에 추가적으로 공사와 개축을 많이 해서 그런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밖에서 보면 여기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면 별세계가 펼쳐 있다.

  성당의 화려한 파이프오르간과 제대(황금의 방)를 바라보며 든 생각. 이렇게 성당을 지어 대니 종교분열이 일어나지. 라는 생각. 우선 나는 가톨릭 신자로서 지금 발언이 그닥 올바른 생각이라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성당(물론 크기는 여러가지이다만 장식성에 있어서는 유럽 도시마다 하나씩 있는 대성당(cathedral)들은 다들 뛰어난 걸작들이다.)들이 도시마다 있다. 그런 성당을 짓는데 드는 돈이 얼마가 들어가겠는가.(ㅎㅎㅎ 예수님의 발에 부어진 향유의 값을 생각하는 유다의 마음이군.) 신께 최고를 드리는 건 종교적 인간의 당연한 습성이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대성당의 입장료로 사람당 2유로(학생활인)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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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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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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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투우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투우이다. 얼마나 멋있는 장면인가! 성난 검은 황소앞에 태연히 맞서 싸우는 투우사의 모습. 황소라는 커다란 괴물앞에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 난 그런 스페인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투우가 유명한 도시는 마드리드와 세비야이다. 그리고 스페인 내 에서도 동물애호가들의 지랄맞은 시위와 활동 덕분에 수백년을 내려온 멋있는 문화유산을 법적으로 금지시키고 있다는 소식에 더욱이 투우가 보고 싶었다. 나 내일 밥을 한끼 굷을지라도 오늘 투우를 보겠다는 신념으로 투우장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기 위해 관광오피스에 들렸다.

- 저기요 투우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 투우는 9월서부터 시작합니다.

- 네.

그리고 나는 그냥 황금의 탑을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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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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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페라

세비야는 이상하게도 여러 오페라의 무대가 되는 도시이다. 내가 알고 있는것만 해도 세빌리아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돈 지오반니, 카르멘, 피델리오가 있다. 왜 그럴까 하면서 여행중에 자주 봤지만 알 수 없다. 왜 하필 세빌리아 였을까? 그것도 다양한 작곡가들의 여러 스토리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데 왜 하필 세비야 였을까? 궁금증만 엄청나게 키워났다. 누가 아는 사람 없나요? 그리고 반대로 오페라를 세비야에서 진짜 장소에서 해보는것도 신선할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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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광장)

6) 비닐봉지

여행다니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비닐봉지를 많이 가지고 다니게 된다. 아침에 호텔을 나와서 가까운 수퍼에서 물 한통과 아침으로 먹을 샌드위치와 중간에 출출하고 목마를때 먹을 과일(스페인에서는 주로 복숭아)를 사면 항상 비닐봉지에 넣어서 가지고 다닌다. 안그래도 누적된 피곤과 잘 싰지 못한 꼬질꼬질 함이 묻어 있는 여행객인데 거기에 덜렁덜렁 비닐봉지까지 들고 다니면 참… 내가봐도… 거지상이다……. 이게 비닐 봉지의 매력이다. 누구나 평등하게 거지로 만들어 주는.ㅋㅋㅋ 그래도 그 편함에 쉽게 바꾸기 힘들다. 중간에 다 쓰면 쓰레기통에 휙 하면 끝나는 봉지. 아무래도 다음여행때는 보조가방을 좀 큰걸로 들고 다녀야 겠다. 1.5리터 물 한병은 쉽게 들어갈 만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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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엑스포당시 지어진 건물이라는데 용도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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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한 모습의 Pa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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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장과 투우사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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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솜브레로

솜브레로는 모자의 일종이다. 한국에서는 페도라, 중절모자 라고 많이 쓰인다. 스페인에 가면 이 솜브레로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왠지 모를 스타일리시 함과 간지를 풍겨준다. (그래서 나도 예전부터 사고 싶어 하기도 했고 스페인에 온 김에 마드리드에서 싸게 하나 장만했다.^^) 사실 솜브레로는 일반 캡보다 햇빛을 가려주는 역활도 적고 모자 자체가 살짝 머리에 언듯이 쓰는 모자다 보니 바람만 쉭 불어도 날라간다. 그런 불편함에도 솜브레로는 스페인에서 사랑받는 모자이다. 가격도 장인들이 만들면 (장인들이 만들면 뭐는 안비싸겠느냐만) 하나에 50유로 이상은 줘야 살 수 있다. 물론 브랜드 없는 중국산이야 5유로 정도로 판매되고 있다. 스페인에 여행온 대부분의 여행객들도 이 솜브레로 하나씩은 장만해 가는 상품인지 기념품 상점에도 꼭 있는 것이 이 솜브레로이다. 다양한 디자인과 모양이 있으니 여행을 가시는 분, 특히 남자분 들은 하나씩 장만해 가시길. (왜 갑자기 광고글이 되어 버린것일까?)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 간지와 스타일을 줄 수 있는 아이템이니. (나도 오디서 꿇리진 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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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에서 발견한 우크라이나의 맥주병…….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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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위의 사람들. 나도 저런 모습이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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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8일 토요일

키예프의 더위를 피해 태양으로 가다(리스본)

(천재: 바스코 다 가마를 비롯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원래 있던 대륙들을 ‘발견’ 했다고 말하는 과거의 항해사들)

1)나에게 아침은 그들에겐 새벽이었다.

아침 6시경에 리스본의 버스터미널에 내렸다. 졸린눈을 비비며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와 양치를 하고 해가 어스르미 떠오르는 시간에 터미널을 나와 지하철을 향해 갔다. 지하철에 들어가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표를 사야하는데 어떤걸 어떻게 사야하는지, 시내 중심은 어디인지, 모르는것 투성이 인데 한 아침이라 사람도 지하철에 아직 없다. 근데 지하철 노선도를 보니 라인이 4개인데 라인수가 그렇게 많지 않는 도시라면 십중팔구 제일 많이 지하철이 교차되는 부분이 시내 중심지이다. 근데 리스본 지하철은 모두 공평하게 2개씩만 교차가 되고 있었다. 헉. 기대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바다가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했다. Baixa 어쩌구 저쩌구 하는 곳인데 아마도 바이샤라고 읽었던거 같다. 그랫더니 갑자기 인터넷에서 시내 중심이 바이샤(발음이 이게 정확한건지 모르겠다.) 지구라는 말은 본듯한 느낌이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내 예감은 정확하게 맞아서 시내 중심의 큰 광장에 도착하기는 했는데, 이건 아침인데 아직 도시가 모두 잠들어 있다. 해는 중천인데. 그리고 도시 전체가 꼬질꼬질 한게 빈티지 냄새가 확 풍긴다. (아~ 맘에 든다….) 그래서 첫 인상의 리스본은 아주 좋았다.

시내 중심은 모두 문이 잠겨있거나 좀 일찍 여는 곳은 물청소를 하며 개장준비를 하고 있었다. 운좋게 시내 관광버스 티켓 판매하는 곳에서 굴러다니고 있던 시내 지도를 득템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내를 방황하고 있는데 저 멀리 분홍색의 Ask me라는 표지판이 보여서 가봤더니 오호! 관광사무실. 근데 여는 시간이 10시. 지금이 9시 인데 한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것인가 생각을 하고 봤더니 같은 이베리아 반도에 있으면서 포루투갈은 스페인하고 시차가 있다는 생각이 났다. 즉 지금 리스본 시간은 8시. 헐……. 그냥 포기 하고 주요 관광지가 있는(그러면서 지하철은 연결이 안되어 있는) 벨렘 지구로 가기고 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은행을 제외하면 주로 9시에 장사를 시작한다. 근데 포르투갈 사람들은 10시에 시작한다. 지지리도 늦게 시작한다.

내가 도착했던 나의 아침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아직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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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서양

내가 리스본을 여행계획에 집어 넣은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대서양에서 헤엄을 쳐보기 위해서. (비록 수영은 못하지마는) 유럽대륙에서 대서양을 향해 있는 제일 큰 항구. 새로운 항로와 신대륙을 찾아 떠난 수많은 배들이 출발한곳. 그로인해 유럽이 전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지금까지도 제일 부유한 지역으로 남아 있는곳. 스페인에 의해 육지로 진출하는 모든 출구가 막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눈을 돌리게 된건 포르투갈의 운명이었다. 그래서 그 조그만 영토에 비해 어마어마한 식민지를 가지게 된것이고 스페인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하는 조약을 맺기도 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대서양(실제로는 태주강 하구)앞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섰다.

꼭 뱃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대항해시대 시대풍경과 사람들이 머리속에 그려진다. 좁은 골목길들을 바삐 왔다갔다하고 배들은 바람을 가득 품은채 항해를 나서는 모습. 포르투갈 스타일의 타일로 벽을 장식한 건물들, 현무암과 석회암의 조가조각난 돌로 포장한 도로들. 그런 모든 장면들이 파노라마 처럼 지나간다. 그러다 문뜩, 아 벨렘지역으로 가야지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벨렘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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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구시가지 거의 모든 인도는 이런식으로 현무암과 석회암을 사용해 깔았다. 리스본의 트레이드 마크랄까?)

3)예로니모 수도원

리스본과 바다는 절대 떨어질수 없는 관계다. 리스본의 모든것은 바다를 위해 존재하며 바다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마누엘 양식으로 유명한 예로니모 수도원도 바다를 위해 존재하며 바다로부터 영감을 얻은 수도원이다. 항해사들이 저 멀리 하얗게 빛나는 예로니모 수도원을 보고서야 집에 당도했다는 평온함을 얻는 예로니모 수도원. 왕가의 묘실이자 안전한 항해를 위해 기도하는 수도원.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에 갔다 오면서 저 멀리 보이는 수도원의 모습으로 맘이 편안해 졌다고 하자 마침 왕실 무덤으로 쓰이던 수도원을 얼씨구나 항해사들의 안전을 기도하는 수도원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버렸다. 그리고 무역으로 인한 이익의 세금에서 일정부분 이 수도원을 위해 지원을 하게 되는데 재원이 충분해진 수도원은 마누엘 양식이라는 화려한 고딕양식으로 수도원을 치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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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식 하나하나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서 사용하는 도구들로부터 채용한 모습이다. 배를 장식하던 조각들이 건물을 장식하는 듯 하다. 항해와 무역은 국가의 국운이 걸린 사업이다 보니 그 중요성은 리스본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예로니모 수도원의 내부는……. 음… 가서 보길 권한다. 장식적인 치장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니.DSCF1826

(바스코다가마의 석관. 죽어서도 이 사람은 배와 밧줄로 꾸며진 관에 모셔졌다.)

DSCF1833DSCF1774  DSCF1784(리스본에서는 맥도널드 조차 빈티지적으로 꼬질꼬질 해진다. 너무나도 리스본적이다.)  DSCF1798

4) 트램.

리스본을 다니기 위해 제일 좋은 교통수단은 지하철이 아니라 트램이다. 리스본의 트램은 역사도 오래되었고 거미줄처럼 노선이 연결되어 있어서 주요 관광지를 다니기 좋은 교통수단이다. 하루짜리 표를 끊어서 하루종일 이리저리 트램을 타고 다니면 조그만 트램이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다닌다. 내가 여태까지 다녀갔던 도시들 중에서 리스본의 트램이 가장 이쁘고 귀엽고 낭만적이고 재미있는 트램이었다. (노선에 따라 좀 틀리기도 하다만.)DSCF1801 DSCF1816   5) 이선생님

예로니모 수도원에서 사진을 부탁하다 우연히 한국분을 만나게 되었다. (여행중에 사진은 무조건 동양인에게 부탁해야 한다. 서양인들은 정말 사진을 못 찍는다. 뭘 주제로 찍는건지.)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예로니모 수도원 설명 해주다가 이번 리스본에서 여행을 죽~ 같이 하게 되었다. 하루 일찍 오신 포스로 트램을 타고 다니면서 볼곳을 다 같이 돌아다녔고 나 혼자 였으면 잘 몰랐을 것들 (뭐가 유명하고 어떤게 맛있고 등등) 을 잘 알려주셨다. 그리고 정말 친절하게도 당일코스로 밤버스로 이동하는 나를 위해 머물고 계시던 숙소에서 몰래 샤워까지 하게 해 주셨다!! 오 감사하여라~ 그때는 내가 말하신걸 잘 이해를 못해서 감사하다는 말도 못하고 그냥 왔다. (나중에 페이스북으로 감사를 드리긴 했다만) 혼자 다니면 좋은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때 정말 감하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Lisbon 01

2010년 8월 20일 금요일

키예프의 더위를 피해 태양으로 가다(마드리드)

마드리드-1

(천재: 고야, 벨라스케스)

1) 이탈리아 인

  내가 타고가는 비행기는 이탈리아 항공, 로마를 경유해서 갔다. 어찌 보면 나에게는 다수의 이탈리아인을 보는 첫 번째 경험이었다. 내가 본 사람들만 그런건지, 그런 사람들만 내가 본건지 모르겠지만 공항과 비행기에서 본 이탈리아 인들은 정말 패셔너블 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슈트를 입어야 하고 어떤 안경을 써야 어울리고 수염을 길러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모든 이탈리아 사람이 그런것은 아니리라 생각되지만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이 많은것은 사실일 것이다. 흠. 스페인 여행기의 첫번째 내용이 이탈리아 인이라니. 근데 이탈리아 인들은 스페인 여행 내내 만났다. 정말 바글거릴 정도로 많이 이탈리아 인들이 스페인을 여행하고 있었다. 뭐. 한국인들이 일본 가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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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항

  전에 이야기 한 대로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한것은 연착해서 1:30이 좀 넘어서였다. 어짜피 예약해둔 숙소도 없고, 시내를 들어가는 지하철, 버스도 모두 끊긴 상태에서 내가 내린 결정은 공항에 아침까지 남아있기 였다. 이 야밤에 돌아다니기 보다 항시 경찰들이 순찰을 도는 공항이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 도착하는 터미널은 이미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후여서 아무도 없고 앉을곳도 없어서 출발터미널로 발길을 옮겼다. 출발터미널로 가는 동안 나는 여행의 신(여신. 응?)들을 보았다. 어쩜 그런 자리에서, 침낭속에서 찌그러져서 잘도 주무시는지. 구석구석 잘도 찾아서 노숙자 포스로 주무시고 계셨다. 출발터미널에는 여행의 고수님(여고. 응?) 계서 기둥마다 의자마다 자신의 트렁크를 베게삼아 침대삼아 주무시고 계셨다. 터미널의 안내방송에서는 지속적으로 터미널 안에서 자면 안됩니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지만 아무도 듣지도 않았고 하물며 순찰을 도는 경찰(혹은 경비원) 들도 자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쳤다. 나는 그런 여신들과 여고들의 사이에서 내 위치를 정하지 못하고 부유(浮遊)하고 있었다. 돌아오는날 6시 비행기여서 그 전날 저녁 늦게 와있어야 하는 나에게 이런 모습들은 남일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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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어와 스페인어

  스페인에서는 영어가 정말 안 통한다. 내가 영어로 물어보면 정말 정말 친절하고 상세하게 스페인어로 알려주신다. 결국 난 손가락방향으로 이해한다. 스페인 사람과 러시아 사람은 이런 점에서 비슷하다. 스페인사람들은 한때 자신들도 세계를 지배했었고 지금은 몇몇 나라를 제외한 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나라가 사용하는 언어이니 영어보다 절대 떨어질 것 없다는 생각이고 그러니 영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듯 하다.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은 한때 미국과 어깨를 견주며 세상의 반을 호령하며 사회주의 국가들이 제2외국어로 배우는 언어였던 터라 러시아어만 하면 되다는 생각이다. 여튼 두 나라 모두 영어가 잘 안 통한다. 과거의 영화에 빠져서 국제적 정세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아니면 강대국적인 자부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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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미술관과 벨라스케스)

4) 추위

  6시에 지하철이 운행을 시작하고 나는 시내 중심쪽으로 갔다. 우선은 레티로 공원쪽으로 발길을 옮겼는데, 헉… 추웠다. 추어서 우비 대신으로 가져간 얇은 잠바를 꺼내 입었다. 정말 마드리드가 한 여름에 추울줄은 생각도 못했다. 근데 그런 추위에서도 나는 공원 의자에서 잠을 1시간 정도 잤다. 다행이도 입은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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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광장)

5) 환전

  나는 키예프에서 달러로 송금을 받고 현지 화폐로 환전을 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달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스페인으로 달러를 가져가 유로로 환전할 생각을 하고 가지고 있는 돈을 그대로 가져갔는데 아뿔싸……. 첫번째로 스페인 은행의 대다수는 환전을 해 주지 않는다. 해주는건 은행 통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해 준다고 해도 엄청나게 환율이 안 좋다.  한 예로 내가 그때 가져간 달러를 키예프에서 현지 화폐로 바꿨다가 다시 유로로 바꿨을 때와 스페인에서 바로 바꿨을때 거의 100유로에 가까운 차이가 났었다.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100유로나 되는 돈을 날려버리니 여행 계획에도 차질이 생겨 버렸다. 음식이 유명한 나라인 만큼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 보고 싶었었는데 모든 계획들이 무산되고 다시 기초생활수급여행객(황제 여행. 응?)으로 돌아가 버렸다……. 눈물을 흘리며 우선 가지고 있는 돈의 1/3정도를 바꿨다. 그리고 여행 계획 조차 모두 바꿔졌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그래도 다른 나라이니 좀 나을것이라는 기대로 우선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가기로 했다. 즉 내가 계획 했던 여행계획이 완전 반대로 가게 된 것이다. 전에는 시계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환전 때문에 여행 계획까지 바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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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천재

  스페인의 도시들을 다녀보니 스페인의 유명한 도시는 천재들이 있었다. 유명한 천재가 그 도시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기에서도 내가 다녔던 도시들의 천재를 적어 놓는다. 여행중에 그 천재들이 남겨놓은 부스러기들을 찾아보는것도 재미 있을것이다. 사실 마드리드의 천재는 처음 와서는 찾지 못했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수도를 마드리드로 정한 펠립페 2세로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날 프라도 미술관을 갔다 와서 바로 정해졌다. 마드리드를 먹여 살리는 천재는 벨라스케스와 고야구나 하는.  그만큼 마드리드에서 프라도 미술관의 존재는 너무나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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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보카디요, 하몬, 체르베자

  여행 내내 나와 함께한 형제들. 그대들이 있어서 나의 다리는 힘을 얻었고 나의 눈은 생기를 되찼았으며 나의 입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네. 내가 더울 때, 힘들 때 언제나 나를 반기던 형제들. 보카디요 그대는 내 입에 항상 상처를 남기지만 당신의 거친 피부는 언제나 내 심장을 떨리게 만들었지. 체르베자. 당신의 차가운 갈색의 살갗은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열을 견디는 힘이었소. 하몬. 당신을 처음 봤을때는 거부감이 있었지만 진정한 당신을 알고서는 팬이 되었지.  지금도 당신의 우아한 다리는 잊을수 없다오.

  아 보카디요(바게트 샌드위치)에 치즈하고 얇게 저민 하몬(돼지통다리 훈제고기)하고 시원한 체르베자(맥주) 한잔이 그립다. 맛있었는데… 비록 바게트 빵때문에 내 입천장이 다 까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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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신도시 마드리드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마드리드는 신도시이다. (그래도 수도로 옮겨진게 1561년이다) 그래서 도시가 전체적으로 정비가 잘되어 있고 중간중간 공원과 광장들이 많아 쉬기에 좋다. 대부분 마드리드의 건물들은 신고전주의-현대 건물들이 많다. 그만큼 젋고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드리드는 쇼핑하기 좋은 곳이다. 특히나 내가 도착한 주간은 마드리드 그랜드 세일기간이였었다. (이 사실을 세빌야 가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기념품은 절대 다른 도시에 사길! 마드리드는 정말 기념품은 살게 없다!!!

2010년 8월 17일 화요일

키예프의 더위를 피해 태양으로 가다. (여행의 출발)

  원래 이번 여름에 계획하던 곳은 이탈리아 였다. 하지만 사정이 생겨서 계획이 무산되었고 부랴부랴 갈만한 곳을 찾아 다녔다. 그래서 좁혀진 곳이 두곳 스페인과 발트3국이었다.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과 하루라도 젋을 때, 즉 아직 학생활인이 될 때 더 비싼 나라 여행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스페인으로 결정 지었다. 마침 비행기표도 370$ 정도로 저렴하게 나온것이 1자리 남아 재빨리 예약을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구매를 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여행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스페인에 도착하는 시간은 밤 11:30. (근데 연착을 해서 결과적으로 마드리드에 도착한건 밤 1:30이 넘어서 였다.) 그리고 스페인을 떠나는 비행기가 이른 아침 6:00. 즉 앞 뒤로 1일씩을 버리고 나면 내가 여행하는 일 수는 11일 이었고 이것에 맞추어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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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투우장)

우선 가고싶은 도시 선정. 어짜피 가야하는 마드리드,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 많은 오페라의 무대 세비야, 알함브라 궁전의 그라나다, 오래된 도시 톨레도, 개인적으로 관심있고 도시 이동상으로 거리가 어정쩡해서 중간에 한번 거쳐갈 필요가 있어서 가는 발렌시아, 스페인 가는 김에 꼽사리 끼워 넣은 부록같은 리스본. 그리고 지도를 펼쳤다. 크게 시계방향의 라인이 완성된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발렌시아-그라나다-세비야-리스본-마드리드(톨레도, 아빌라) 톨레도와 아빌라는 마드리드에서 당일코스 여행이 가능하기에 마드리드에서 숙박을 하면서 가기로 했다.

그리고 Must to do 목록으로는 빠에야 먹어보기, 투우보기, 대서양에서 수영해보기, 지중해에 발 담궈 보기, 알함브라 궁전 보기, 가우디 건축물 보기. 이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숙소. 현재 신용카드가 없는 관계로 숙소들을 하나도 예약하고 가지 못했다. 가서 어떻게 되겠지 하는 배째라 정신과 노숙이라도 하지 라는 막가는 정신으로 출발을 하긴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떨쳐 버릴 수 없었다.

  8월 4일 그렇게 나는 태양의 나라 스페인에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