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8일 토요일

키예프의 더위를 피해 태양으로 가다(리스본)

(천재: 바스코 다 가마를 비롯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원래 있던 대륙들을 ‘발견’ 했다고 말하는 과거의 항해사들)

1)나에게 아침은 그들에겐 새벽이었다.

아침 6시경에 리스본의 버스터미널에 내렸다. 졸린눈을 비비며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와 양치를 하고 해가 어스르미 떠오르는 시간에 터미널을 나와 지하철을 향해 갔다. 지하철에 들어가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 표를 사야하는데 어떤걸 어떻게 사야하는지, 시내 중심은 어디인지, 모르는것 투성이 인데 한 아침이라 사람도 지하철에 아직 없다. 근데 지하철 노선도를 보니 라인이 4개인데 라인수가 그렇게 많지 않는 도시라면 십중팔구 제일 많이 지하철이 교차되는 부분이 시내 중심지이다. 근데 리스본 지하철은 모두 공평하게 2개씩만 교차가 되고 있었다. 헉. 기대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바다가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했다. Baixa 어쩌구 저쩌구 하는 곳인데 아마도 바이샤라고 읽었던거 같다. 그랫더니 갑자기 인터넷에서 시내 중심이 바이샤(발음이 이게 정확한건지 모르겠다.) 지구라는 말은 본듯한 느낌이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내 예감은 정확하게 맞아서 시내 중심의 큰 광장에 도착하기는 했는데, 이건 아침인데 아직 도시가 모두 잠들어 있다. 해는 중천인데. 그리고 도시 전체가 꼬질꼬질 한게 빈티지 냄새가 확 풍긴다. (아~ 맘에 든다….) 그래서 첫 인상의 리스본은 아주 좋았다.

시내 중심은 모두 문이 잠겨있거나 좀 일찍 여는 곳은 물청소를 하며 개장준비를 하고 있었다. 운좋게 시내 관광버스 티켓 판매하는 곳에서 굴러다니고 있던 시내 지도를 득템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내를 방황하고 있는데 저 멀리 분홍색의 Ask me라는 표지판이 보여서 가봤더니 오호! 관광사무실. 근데 여는 시간이 10시. 지금이 9시 인데 한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것인가 생각을 하고 봤더니 같은 이베리아 반도에 있으면서 포루투갈은 스페인하고 시차가 있다는 생각이 났다. 즉 지금 리스본 시간은 8시. 헐……. 그냥 포기 하고 주요 관광지가 있는(그러면서 지하철은 연결이 안되어 있는) 벨렘 지구로 가기고 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은행을 제외하면 주로 9시에 장사를 시작한다. 근데 포르투갈 사람들은 10시에 시작한다. 지지리도 늦게 시작한다.

내가 도착했던 나의 아침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아직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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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서양

내가 리스본을 여행계획에 집어 넣은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대서양에서 헤엄을 쳐보기 위해서. (비록 수영은 못하지마는) 유럽대륙에서 대서양을 향해 있는 제일 큰 항구. 새로운 항로와 신대륙을 찾아 떠난 수많은 배들이 출발한곳. 그로인해 유럽이 전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지금까지도 제일 부유한 지역으로 남아 있는곳. 스페인에 의해 육지로 진출하는 모든 출구가 막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눈을 돌리게 된건 포르투갈의 운명이었다. 그래서 그 조그만 영토에 비해 어마어마한 식민지를 가지게 된것이고 스페인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하는 조약을 맺기도 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대서양(실제로는 태주강 하구)앞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섰다.

꼭 뱃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대항해시대 시대풍경과 사람들이 머리속에 그려진다. 좁은 골목길들을 바삐 왔다갔다하고 배들은 바람을 가득 품은채 항해를 나서는 모습. 포르투갈 스타일의 타일로 벽을 장식한 건물들, 현무암과 석회암의 조가조각난 돌로 포장한 도로들. 그런 모든 장면들이 파노라마 처럼 지나간다. 그러다 문뜩, 아 벨렘지역으로 가야지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벨렘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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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구시가지 거의 모든 인도는 이런식으로 현무암과 석회암을 사용해 깔았다. 리스본의 트레이드 마크랄까?)

3)예로니모 수도원

리스본과 바다는 절대 떨어질수 없는 관계다. 리스본의 모든것은 바다를 위해 존재하며 바다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마누엘 양식으로 유명한 예로니모 수도원도 바다를 위해 존재하며 바다로부터 영감을 얻은 수도원이다. 항해사들이 저 멀리 하얗게 빛나는 예로니모 수도원을 보고서야 집에 당도했다는 평온함을 얻는 예로니모 수도원. 왕가의 묘실이자 안전한 항해를 위해 기도하는 수도원.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에 갔다 오면서 저 멀리 보이는 수도원의 모습으로 맘이 편안해 졌다고 하자 마침 왕실 무덤으로 쓰이던 수도원을 얼씨구나 항해사들의 안전을 기도하는 수도원으로 업그레이드 시켜버렸다. 그리고 무역으로 인한 이익의 세금에서 일정부분 이 수도원을 위해 지원을 하게 되는데 재원이 충분해진 수도원은 마누엘 양식이라는 화려한 고딕양식으로 수도원을 치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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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식 하나하나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서 사용하는 도구들로부터 채용한 모습이다. 배를 장식하던 조각들이 건물을 장식하는 듯 하다. 항해와 무역은 국가의 국운이 걸린 사업이다 보니 그 중요성은 리스본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예로니모 수도원의 내부는……. 음… 가서 보길 권한다. 장식적인 치장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니.DSCF1826

(바스코다가마의 석관. 죽어서도 이 사람은 배와 밧줄로 꾸며진 관에 모셔졌다.)

DSCF1833DSCF1774  DSCF1784(리스본에서는 맥도널드 조차 빈티지적으로 꼬질꼬질 해진다. 너무나도 리스본적이다.)  DSCF1798

4) 트램.

리스본을 다니기 위해 제일 좋은 교통수단은 지하철이 아니라 트램이다. 리스본의 트램은 역사도 오래되었고 거미줄처럼 노선이 연결되어 있어서 주요 관광지를 다니기 좋은 교통수단이다. 하루짜리 표를 끊어서 하루종일 이리저리 트램을 타고 다니면 조그만 트램이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다닌다. 내가 여태까지 다녀갔던 도시들 중에서 리스본의 트램이 가장 이쁘고 귀엽고 낭만적이고 재미있는 트램이었다. (노선에 따라 좀 틀리기도 하다만.)DSCF1801 DSCF1816   5) 이선생님

예로니모 수도원에서 사진을 부탁하다 우연히 한국분을 만나게 되었다. (여행중에 사진은 무조건 동양인에게 부탁해야 한다. 서양인들은 정말 사진을 못 찍는다. 뭘 주제로 찍는건지.)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예로니모 수도원 설명 해주다가 이번 리스본에서 여행을 죽~ 같이 하게 되었다. 하루 일찍 오신 포스로 트램을 타고 다니면서 볼곳을 다 같이 돌아다녔고 나 혼자 였으면 잘 몰랐을 것들 (뭐가 유명하고 어떤게 맛있고 등등) 을 잘 알려주셨다. 그리고 정말 친절하게도 당일코스로 밤버스로 이동하는 나를 위해 머물고 계시던 숙소에서 몰래 샤워까지 하게 해 주셨다!! 오 감사하여라~ 그때는 내가 말하신걸 잘 이해를 못해서 감사하다는 말도 못하고 그냥 왔다. (나중에 페이스북으로 감사를 드리긴 했다만) 혼자 다니면 좋은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때 정말 감하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Lisbon 01

2010년 8월 20일 금요일

키예프의 더위를 피해 태양으로 가다(마드리드)

마드리드-1

(천재: 고야, 벨라스케스)

1) 이탈리아 인

  내가 타고가는 비행기는 이탈리아 항공, 로마를 경유해서 갔다. 어찌 보면 나에게는 다수의 이탈리아인을 보는 첫 번째 경험이었다. 내가 본 사람들만 그런건지, 그런 사람들만 내가 본건지 모르겠지만 공항과 비행기에서 본 이탈리아 인들은 정말 패셔너블 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슈트를 입어야 하고 어떤 안경을 써야 어울리고 수염을 길러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모든 이탈리아 사람이 그런것은 아니리라 생각되지만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이 많은것은 사실일 것이다. 흠. 스페인 여행기의 첫번째 내용이 이탈리아 인이라니. 근데 이탈리아 인들은 스페인 여행 내내 만났다. 정말 바글거릴 정도로 많이 이탈리아 인들이 스페인을 여행하고 있었다. 뭐. 한국인들이 일본 가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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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항

  전에 이야기 한 대로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한것은 연착해서 1:30이 좀 넘어서였다. 어짜피 예약해둔 숙소도 없고, 시내를 들어가는 지하철, 버스도 모두 끊긴 상태에서 내가 내린 결정은 공항에 아침까지 남아있기 였다. 이 야밤에 돌아다니기 보다 항시 경찰들이 순찰을 도는 공항이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 도착하는 터미널은 이미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후여서 아무도 없고 앉을곳도 없어서 출발터미널로 발길을 옮겼다. 출발터미널로 가는 동안 나는 여행의 신(여신. 응?)들을 보았다. 어쩜 그런 자리에서, 침낭속에서 찌그러져서 잘도 주무시는지. 구석구석 잘도 찾아서 노숙자 포스로 주무시고 계셨다. 출발터미널에는 여행의 고수님(여고. 응?) 계서 기둥마다 의자마다 자신의 트렁크를 베게삼아 침대삼아 주무시고 계셨다. 터미널의 안내방송에서는 지속적으로 터미널 안에서 자면 안됩니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지만 아무도 듣지도 않았고 하물며 순찰을 도는 경찰(혹은 경비원) 들도 자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쳤다. 나는 그런 여신들과 여고들의 사이에서 내 위치를 정하지 못하고 부유(浮遊)하고 있었다. 돌아오는날 6시 비행기여서 그 전날 저녁 늦게 와있어야 하는 나에게 이런 모습들은 남일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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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어와 스페인어

  스페인에서는 영어가 정말 안 통한다. 내가 영어로 물어보면 정말 정말 친절하고 상세하게 스페인어로 알려주신다. 결국 난 손가락방향으로 이해한다. 스페인 사람과 러시아 사람은 이런 점에서 비슷하다. 스페인사람들은 한때 자신들도 세계를 지배했었고 지금은 몇몇 나라를 제외한 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나라가 사용하는 언어이니 영어보다 절대 떨어질 것 없다는 생각이고 그러니 영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듯 하다.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은 한때 미국과 어깨를 견주며 세상의 반을 호령하며 사회주의 국가들이 제2외국어로 배우는 언어였던 터라 러시아어만 하면 되다는 생각이다. 여튼 두 나라 모두 영어가 잘 안 통한다. 과거의 영화에 빠져서 국제적 정세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아니면 강대국적인 자부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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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미술관과 벨라스케스)

4) 추위

  6시에 지하철이 운행을 시작하고 나는 시내 중심쪽으로 갔다. 우선은 레티로 공원쪽으로 발길을 옮겼는데, 헉… 추웠다. 추어서 우비 대신으로 가져간 얇은 잠바를 꺼내 입었다. 정말 마드리드가 한 여름에 추울줄은 생각도 못했다. 근데 그런 추위에서도 나는 공원 의자에서 잠을 1시간 정도 잤다. 다행이도 입은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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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광장)

5) 환전

  나는 키예프에서 달러로 송금을 받고 현지 화폐로 환전을 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달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스페인으로 달러를 가져가 유로로 환전할 생각을 하고 가지고 있는 돈을 그대로 가져갔는데 아뿔싸……. 첫번째로 스페인 은행의 대다수는 환전을 해 주지 않는다. 해주는건 은행 통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해 준다고 해도 엄청나게 환율이 안 좋다.  한 예로 내가 그때 가져간 달러를 키예프에서 현지 화폐로 바꿨다가 다시 유로로 바꿨을 때와 스페인에서 바로 바꿨을때 거의 100유로에 가까운 차이가 났었다.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100유로나 되는 돈을 날려버리니 여행 계획에도 차질이 생겨 버렸다. 음식이 유명한 나라인 만큼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 보고 싶었었는데 모든 계획들이 무산되고 다시 기초생활수급여행객(황제 여행. 응?)으로 돌아가 버렸다……. 눈물을 흘리며 우선 가지고 있는 돈의 1/3정도를 바꿨다. 그리고 여행 계획 조차 모두 바꿔졌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그래도 다른 나라이니 좀 나을것이라는 기대로 우선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가기로 했다. 즉 내가 계획 했던 여행계획이 완전 반대로 가게 된 것이다. 전에는 시계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환전 때문에 여행 계획까지 바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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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천재

  스페인의 도시들을 다녀보니 스페인의 유명한 도시는 천재들이 있었다. 유명한 천재가 그 도시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기에서도 내가 다녔던 도시들의 천재를 적어 놓는다. 여행중에 그 천재들이 남겨놓은 부스러기들을 찾아보는것도 재미 있을것이다. 사실 마드리드의 천재는 처음 와서는 찾지 못했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수도를 마드리드로 정한 펠립페 2세로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날 프라도 미술관을 갔다 와서 바로 정해졌다. 마드리드를 먹여 살리는 천재는 벨라스케스와 고야구나 하는.  그만큼 마드리드에서 프라도 미술관의 존재는 너무나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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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보카디요, 하몬, 체르베자

  여행 내내 나와 함께한 형제들. 그대들이 있어서 나의 다리는 힘을 얻었고 나의 눈은 생기를 되찼았으며 나의 입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네. 내가 더울 때, 힘들 때 언제나 나를 반기던 형제들. 보카디요 그대는 내 입에 항상 상처를 남기지만 당신의 거친 피부는 언제나 내 심장을 떨리게 만들었지. 체르베자. 당신의 차가운 갈색의 살갗은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열을 견디는 힘이었소. 하몬. 당신을 처음 봤을때는 거부감이 있었지만 진정한 당신을 알고서는 팬이 되었지.  지금도 당신의 우아한 다리는 잊을수 없다오.

  아 보카디요(바게트 샌드위치)에 치즈하고 얇게 저민 하몬(돼지통다리 훈제고기)하고 시원한 체르베자(맥주) 한잔이 그립다. 맛있었는데… 비록 바게트 빵때문에 내 입천장이 다 까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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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신도시 마드리드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마드리드는 신도시이다. (그래도 수도로 옮겨진게 1561년이다) 그래서 도시가 전체적으로 정비가 잘되어 있고 중간중간 공원과 광장들이 많아 쉬기에 좋다. 대부분 마드리드의 건물들은 신고전주의-현대 건물들이 많다. 그만큼 젋고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드리드는 쇼핑하기 좋은 곳이다. 특히나 내가 도착한 주간은 마드리드 그랜드 세일기간이였었다. (이 사실을 세빌야 가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기념품은 절대 다른 도시에 사길! 마드리드는 정말 기념품은 살게 없다!!!

2010년 8월 17일 화요일

키예프의 더위를 피해 태양으로 가다. (여행의 출발)

  원래 이번 여름에 계획하던 곳은 이탈리아 였다. 하지만 사정이 생겨서 계획이 무산되었고 부랴부랴 갈만한 곳을 찾아 다녔다. 그래서 좁혀진 곳이 두곳 스페인과 발트3국이었다.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과 하루라도 젋을 때, 즉 아직 학생활인이 될 때 더 비싼 나라 여행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스페인으로 결정 지었다. 마침 비행기표도 370$ 정도로 저렴하게 나온것이 1자리 남아 재빨리 예약을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구매를 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여행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스페인에 도착하는 시간은 밤 11:30. (근데 연착을 해서 결과적으로 마드리드에 도착한건 밤 1:30이 넘어서 였다.) 그리고 스페인을 떠나는 비행기가 이른 아침 6:00. 즉 앞 뒤로 1일씩을 버리고 나면 내가 여행하는 일 수는 11일 이었고 이것에 맞추어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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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투우장)

우선 가고싶은 도시 선정. 어짜피 가야하는 마드리드,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 많은 오페라의 무대 세비야, 알함브라 궁전의 그라나다, 오래된 도시 톨레도, 개인적으로 관심있고 도시 이동상으로 거리가 어정쩡해서 중간에 한번 거쳐갈 필요가 있어서 가는 발렌시아, 스페인 가는 김에 꼽사리 끼워 넣은 부록같은 리스본. 그리고 지도를 펼쳤다. 크게 시계방향의 라인이 완성된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발렌시아-그라나다-세비야-리스본-마드리드(톨레도, 아빌라) 톨레도와 아빌라는 마드리드에서 당일코스 여행이 가능하기에 마드리드에서 숙박을 하면서 가기로 했다.

그리고 Must to do 목록으로는 빠에야 먹어보기, 투우보기, 대서양에서 수영해보기, 지중해에 발 담궈 보기, 알함브라 궁전 보기, 가우디 건축물 보기. 이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숙소. 현재 신용카드가 없는 관계로 숙소들을 하나도 예약하고 가지 못했다. 가서 어떻게 되겠지 하는 배째라 정신과 노숙이라도 하지 라는 막가는 정신으로 출발을 하긴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떨쳐 버릴 수 없었다.

  8월 4일 그렇게 나는 태양의 나라 스페인에 발을 내디뎠다.

2010년 8월 3일 화요일

치과공장이용기

몇달전에 이빨에 충치가 생겼었었다. 그때는 작았었는데 여행중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도 견과류 였던거 같다.) 충치가 생긴 이빨 한 구석이 부서져 나갔다. 키예프에 돌아와서도 치료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본능적인 귀차니즘덕분에 이리저리 미루고 있다가 방학이 시작하자 마자 큰 맘먹고 치과에 갔다.

우선 전에 다니던 치과에 갔다. 그곳에서 내 이빨을 보더니 상태가 안좋아서 아마 새로 금이나 세라믹으로 덧씌워야 한단다. 근데 현재 병원에는 그런 도구가 없으므로 의사가 아는 치과에 추천을 해 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내 러시아 친구한테 하자 자기가 다니는 치과가 있는데 싸고 잘한단다. 그럼 어짜피 내가 항상 다니는 곳에 갈 이유가 없어졌으므로 그곳으로 같이 갔다. 알고보니 그곳은 의대 치과대학이 있는 곳이었다. 음… 대학 부속병원 같은건가 하고 급속도로 신뢰도는 급속도로 높아졌다.

우선 대충 시간을 잡고 병원실로 올라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실습실이라고 하는게 나을 것이다. (그때 카메라를 안가져간게 아쉽다. 사진을 남겨놨어야 하는데.)

  실습실의 풍경은… 와웅… 신선한 충격이었다. 약 80대 후반 기구 같아 보이는 치과의자가 넓직한 실습실 안에 8개가 놓여져 있다. 거기에 의사(즉 교수) 들이 한 명씩 붙어서 환자들을 보고 있었는데, (빈 의자도 한 두 개 있었다.) 간호사로 있는 얘는 실습실 당 학생 1명 뿐 이었다. 그리고 이런 실습실이 4개가 그 층에 있었다. (아 정말 너무나도 소비에트 적이다.) 흠. 이건 병원이 아니라 공장이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 담당 의사를 찾았다. 다시한번 신선한 충격. 40대 후반의 후덕한 인상의 꼭 덤프트럭 몰게 생긴 ‘여자’ 의사였다. (게다가 내가 정말 비호감으로 생각하는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계셨다. >_<) 실습실 안에는 뼈 타는 냄새, 정향냄새(약품냄새)가 확 풍겨 왔고 여기저기서 윙윙 거리는 핸드피스 (아마 이런 이름이었던거 같은데 즉 이빨 가는 기구다.)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나 왔어요~ 하고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실습실 4개에서 들리는 모터소리가 4방향 서라운드 사운드로 내 귀에 울려 퍼진다. 약 30여분을 기다리자 의사가 나를 보고 손가락을 까닥까닥 한다. 나는 들어가서 치과의자에 앉았다.

우선 전후 설명을 하고 내 이빨을 보여줬다. -음 많이 썩었네. 엑스레이 찍고와.

그리고는 내 손에 어느 이빨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는지 나타낸 종이를 쥐어주고 2층 엑스레이 찍는 곳으로 보냈다. 거기 앉아 계신 다소곳하신 할머니 선생님께서 엑스레이를 찍고 사진을 반명함판 사이즈의 이빨 사진을 줬다. 그것을 들고 다시 트럭의사님께 보여줬다. 그랬더니 왜 이렇게 일찍 왔냔다. -거기 사람이 없었어요.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니 심각하게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이제 좀 의사 같아 보인다. 그러더니 지금 자기 스케줄이 꽉 찼으니 내일 오라고 했다.

(다음날)

약속시간에 맞춰 치과공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제는 신경이 살아 있는지 검사를 위해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 갔는데 그곳은 이빨에 약한 전기충격을 줘서 신경을 체크하는 곳. 거기서도 다시 검사를 하고 받은 종이를 들고 갔다. 이번에도 왜 이렇게 빨리 왔냐는 표정. 그리고 나를 의자에 앉게 하더니 10초간 입 안을 들여다보고 핸드피스로 갈기 시작했다. 그러디니 갑자기 멈춘다. -너 점심 먹었어? (그때가 한 1시 반쯤 되었다.) -아뇨. -그럼 먹고와. 요 밑에 보면 먹을만한거 파는 가게들 있거든. 거기 가서 먹고와. 나는 그 소리에 약 3초간 눈만 깜박이다가 아무말 없이 가방을 들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머리속이 복잡해 진다. 점심을 먹으면 아무리 조심해도 음식물이 이사이에 낄텐데. 그럼 기분 안좋을텐데. 칫솔을 가져온것도 아니고. 물로 행구면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븐에서 바로 구워 파는 피자를 주문해 먹었다. 다 먹고 열심히 물로 가글을 하며 다시 병원으로 올라갔다. 날 보더니 트럭의사께서 껄껄 웃으며 -뭐먹었어? 물어보신다. -요 밑에서 피자 먹었어요. -응. 잘했어. 거기 맛있어. 하시면서 다시 내 이빨을 갈기 시작했다. 대인배신건가. 이분은 치과가 아니라 우리 건축대에서 시멘트와 물 농도, 회반죽과 미장일을 가르치고 계셨어도 참 잘 어울렸을 분이다.

우선 마취를 하고 이빨을 다 갈아내니 신경치료를 하신다. 신경치료를 할 때는 뾰족한 바늘같은것을 이용해 이미 죽어버린 신경을 다 긁어 낸다. 마취는 해서 입의 반쪽은 아무 감각은 없고 다른 반쪽은  오래 벌려서 저려왔다. 그렇게 바늘로 계속 쑤시더니 어~~~ 하시며 바늘을 나에게 보여주신다. 약 7미리 정도의 빨간 실 같은 것이 바늘 끝에서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보이지? 이게 신경이야. 우아~ 잘 나왔네. 그리고 다시 바늘로 쑤신다. 다시 두번째 신경을 빼서 보여준다. 아……. (치료가 당신에겐 재미, 하지만 내정신은 혼미) -져기… 콕 져 안오여 주셔오 외요.(저기… 꼭 저 안보여 주셔도 되요. <-난 현재 마취된 입을 연 상태다.) -아 그래? 으하하하하. 알았어. 뭐 무섭다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 보여달라는 사람도 있거든. 그래서 자주 보여줘. -예….

그리곤 다시 열심히 바늘로 쑤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옆에 의자의 동료 교수와 수다를 떨면서 쑤신다. 어제 티비에서 어쩌구 저쩌구. 전에 사먹은 파이가 어쩌구 저쩌구. 이번 여름 휴가에 어쩌구 저쩌구. 그래. 좋다. 수다는 그렇다고 치자. 근데 환자를 치료중인데 최소한 눈은 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Cool 하신 의사는 예의바르게도 자신과 대화중인 상대를 일일이 바라보시며 말을 하신다. 오른손으론 내 이빨을 바늘로 쑤셔대고 얼굴은 다른 교수를 바라보는 쿨 함. (당신의 대화주젠 태산, 당신앞 환자치룐 먼산) 그러더니 바늘에 더 상 걸리는 없자 이젠 소독과 약처리를 한다. 간호사 용도로 서 있는 학생을 부르더니 포름알데히드와 OOOOO을 가져와서 O대 O비율로 섞어. 한다. 어? 포름알데히드? 이게 내 입에……. 원래 이런거야? 포름알데히드가 몸에 안좋다고 알고 있는데…….  영화 괴물도 포름알데히드 많이 먹고 생긴거잖아. 다시 정신이 혼미해 진다. 내가 잘못 들은것일거야. 이런 생각을 하는 안 치료가 다 끝나고 오늘은 끝이고 내일 다시 오란다. 그리고 임시로 이빨에 땜질을 해 주셨다.

(다음날)

다시 시간에 맞춰 찾아 갔다. 임시 땜방을 뛰어 내시고 휙휙 보시더니 잘 마무리 되었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오늘 마지막으로 이제 여름 휴가를 간단다. (어. 난? 난 어쩌라고?) 그러니까 오늘은한 2달 정도 버티는 재료로 임시로 마무리를 하고 담에 자기 돌아오면 (즉 개학하는 9월 1일이 되면) 전화를 해서 시간을 잡고 이제 평생가는 튼튼한걸로 바꿔주겠다. -음… 예. 그렇게 하세요. 이 아줌마 돈 더 받으려고 상술 쓰는것 같다. 뭐 어쩌겠는가. 의사의 권력인데. 이날도 여전히 다른 동료 교수와 수다를 떨면서 내 이빨 치료를 해 주셨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너무 열정적으로 대화를 하시다가 내 얼굴에 침 몇 방울 튀긴거 말고는.

(1.5주 후)

  완벽하게 치료가 안된 상태에서 약간은 불안한 상태로 지내다가 갑자기 나도 여행을 외국으로 가게 되었다. 키예프에 계속 있었다면 트럭의사한테 9월에 치료를 받았겠지만 이거 여행갔다가 뭔 일 생기면 어쩌겠나 하는 심정으로 다른 치과의 문들 두드렸다. 거기서 내가 어떤 치료를 했는지, 그리고 필요로 한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을 해 주니 젋고 아리따우신 여 의사께서(알~렐루야!) 그럼 우선 어떻게 돼있는지 엑스레이를 찍고 검사를 했다.

여기서 다시 느낀 문화적 충격. 아, 정확하게 말하면 의사와 환자가 서로 느낀 문화적 충격.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거금 40만원들 들여 금으로 이빨을 하나 박고 왔었다. 근데 이 젋은 의사, 치과의사용 거울로 치료해야 할 이빨은 안보고 내 금니 보고 있다. 그러더니 하는 말. -우와 이거 진짜 이쁘게 잘 됬네. 이것도 거기(대학병원)에서 한거에요? -아니요. 한국에서 했어요. -아 그렇구나. 우와 이 의사 실력 좋은가봐요. (그냥 우리 동네 의사선생님이신데.) -이쁘다~ 내가 웃자 살짝 민망했는지, -아니 그냥 제 관심 분야 잖아요. 다른 나라는 이렇게 하는구나 하는것도 관심 있죠. 란다.

  그리고 치료를 시작하는데 신경치료를 하고 빈 공간을 채운 재질이 부드러운 재질이라 (이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하지만 젋은 사람들 한테는 크게 차이가 없으므로 더 튼튼한) 딱딱한 재료로 바꾸는게 나을거란다. 한숨이 훅 나왔지만 그렇게 하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우선 교체하는것만 하고 내일 덧씌우기를 하잔다. 그리고 말한대로 치료를 마치고 나왔다.

(다음날)

  의사가 웃는 얼굴로 반겨줬다. 의자에 누워 있으니 옆방에 있던 동료의사를 불러왔다. 그러더니 나한테 부탁을 한다. -저기요, 치료하신 금니 제 친구한테 좀 보여줘도 될까요? -에예? –한국에선 이렇게 하더라 보여주고 싶어서요.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라고 하고 입을 크게 벌렸다. 거울로 이리저리 비춰보더니 오~우~~ 탄성을 내뱉는다. 이거 정말 어떻게 리액션을 취해야 할 시츄에이션인지 모르겠다. 여튼 그리고 결과적으로 대망의 이빨 치료가 완료되었다.

이렇게 치과치료를 모두 마치고 나니 대략 100$정도 나간것 같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많이 싼 가격에 한 셈이다. 아무리 그래도 치과는 안 가는게 상책이다. 하루에 2번 닦던 이빨을 이젠 3번으로 늘려야 겠다. 에휴.

2010년 7월 29일 목요일

1주일간의 유럽여행(자그렙)

이제 마지막 도시 자그렙만 남았네요. 자그렙은 크로아티아의 수도입니다. 작은 도시라서요 지하철도 없고 북적거림도 없지만 나름 매력있는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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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유

자그렙은 사실 처음 여행계획을 세울 때 생각하지도 않았었던 도시 였다. 하지만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로 돌아오는 버스티켓을 잘못 사버리는 바람에 부다페스트에서 너무 많이 있게되서  주변국가 한곳 갈 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결정난건 크로아티아의 자그렙. 자그렙까지는 버스가 없는 관계로 기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무런 기대도 정보도 없이 가는 자그렙이었지만 기차에서 만난 크로아티아 인의 열성적인 소개로 대략적인 관광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도착한 시간은 저녁 11시경. 기차역에서 내려서 어두컴컴한 시내를 바라보는데 한숨이 확 나왔다. 다행이도 무료로 배포하는 지도를 구할 수 있어서 우선 야경을 보기로 했다. 그렇게 자그렙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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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프라하와 자그렙

앞서 이야기 했듯이 자그렙은 정말 작은 도시 이다. 반나절이면 시내를 다 돌아다닐 수 있다. 밤 늦게 도착해서 시내 돌아다니면서 노숙을 한 나는 이미 밤동안 볼만한 것은 다 봤을 정도였다. 하지만 자그렙은 자그렙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다. 음… 무엇인가 정리되지 않은 그러면서 프라하 보다 작고 아담하고 더 동화 같나고 할까. 음… 프라하가 잘 가꾸어진 어린이 놀이공원 같은 느낌이라면 자그렙은 약간 어수선 한 아이들 방 같은 느낌이다.  (물론 모든 사람마다 다른 느낌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반면에 부다페스트는 남성적이고 웅장한 느낌이었다.) 저 위에 성당 지붕에 저렇게 기와를 까는 사람들 일는 생각이 드니 왠지 밝고 순수할 것 같다.  저 성당 때문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냥 도시를 돌아다닐때 마다 다 장난 같다. 작게 옹기종이 모여 있는 건물들, 오래된 중앙 시장이라고 해서 봤더니 운동장 만한 시장. (물론 지하가 있긴 했지만) 부다페스트 같이 두 도시의 연합으로 만들어 졌다고 했지만 한국 한 동 하고 다른 동(洞)이 합친 것 보다 작은 면적. 여튼 그냥 다 장난스럽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체크무늬 국기도 그냥 장난스럽다. 그래서 가볍고 귀여워서 좋았다. 아 참고로 저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2층 건물이 이나라 국회의사당 이다. 귀엽지 아니한가. 게다가 겸손하기 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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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노숙

앞서 이야기 했듯 밤에 늦게 도착해서 였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현지 화폐(쿠나)가 없어서 였다. 기차에서 만난 자그렙 주민이 역 주변에 있는 유스호스텔 까지 데려다 줬었는데 쿠나가 없어서 묵고 갈 수 없었다. 그래도 미리 부다페스트에서 20달러 정도 바꿔 노은 것이 있어서 그걸로 카페에 가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키고 1시서 부터 4시 까지 죽치고 있었다. 마침 카메라 배터리도 나가서 충전도 해야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책읽는척 하면서 꾸벅꾸벅 졸다가 너무 눈치가 보여서 나왔고 아래 사진앞에 있는 광장 벤치에서 다시 꾸벅꾸벅 졸다가 깨고를 반복을 하니 어느새 해가 뜨고 있었다. 일요일이기도 해서 새벽에 일찍 시작하는 성당 미사에 참여하고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생각보다 가뿐했었다. 꽤 쌀쌀한 날씨에도 입돌아가는 일 없이 나름 상쾌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노숙을 몇시간 노숙을 하고 나니 가끔 여행중에 (안전하기만 하다면) 노숙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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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 단체관광객

좁은 자그렙 구시가지의 골목을 헤메고 있는데 저 멀리서 동양인 한 무리가 다가 오고 있었다. 점점 가까이 오니 약 40~50대 아줌마 아저씨들이었다. 가이드는 현지 인이었는데 영어로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내가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는 가이드한테 미안함이 들 정도로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말하나 보다 하는 표정 하다못해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사진찍기 바뻤다. 신기한건 다들 사과 한봉지씩 사 들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중앙 시장에서 하는 사과가 정말 쌌다. 한 500원 정도로 1킬로의 사과를 살 수 있었으니 한국 아줌마들 오면서 다들 사셨나 보다. 나는 쪽팔리는 얼굴을 감추며 그 무리를 지나오는데 갑자기 좁은 골목을 울리는 “우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하는 여자치고 낮은 저음의 웃음소리(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웃음소리) 가 온 골목을 울렸다. 좁은 골목에 바닥바닥 붙어 있는 건물의 앞뒤로 메아리가 울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처음에는 엄청 쪽팔렸었다. 거리 노천카페에서 앉아서 아침을 먹고 있던 현지인들과 다른 관광객들이 하나둘 그 관광객들을 보기 시작했다. 다시 울리는 웃음소리. 뭐가 그렇게 웃긴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카페에 앉아있던 사람들까지 어이없어 하다가 웃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다시 같은 웃음소리. 이젠 나도 웃겨서 웃었다. 정말 쪽팔리지만 멋있는 아줌마였다. 웃음소리 하나로 온 골목을 휘어 잡으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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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일본인

도시를 둘러보고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그냥 일찍 기차역으로 갔다. 거기 앉아서 책도 보고 꾸벅 졸기도 하는데 한 동양 여자분이 오고 있었다. 내가 앉은 벤치 앞에는 코인락커가 있었는데 그곳에 짐을 보관하러 온거였다. 근데 왜 하필이면 ‘고장’이라고 쓰여 있는 락커에 트렁크를 집어 넣는지… 그래서 내가 거기 고장났다고 하니까 화들짝 놀라면서 날 바라본다.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은 아닐텐데 그렇게 놀라기 까지야……. 여튼 그래서 저쪽 락커는 고장 안났다고 하니 순순히 내가 지정해준 락커에 트렁크를 넣는다. 근데 이 여자 동전이 없었다. 뭐야……. 그러면서 나를 처다본다. ‘트렁크 내가 보고 있을께요. 환전소 다시 갔다 와요.’ 하니까 그제서야 웃으면서 ‘생큐~’를 외친다. 갔다 와서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보고 한국어로 ‘저 한국어 공부하고 있어요’ 란다. 얼. 그래서 나도 일본어로 ‘저도 일본어 공부해요’ 하니 일본 특유의 ‘에~에! 스고이~!’ 하는 감탄사와 함께 날 본다. 자기는 지금 2주째 여행중이고 자그렙 보고 바로 베네치아로 넘아간단다. 이런저런 관광지 이야기 해주니 여자가 가면서 일본 사탕을 하나 고맙다고 주고 간다. 그리고 다시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할일도 없었는데 시내까지 같이 가 줄껄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더 친해졌을텐데. 여행을 다니다 보면 확실히 일본 사람들하고 빨리 친해지는 듯 하다. 아무래도 문화가 비슷한 것도 있고 일본인 특유의 예의바른 모습이 거부감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근데 나는 한국사람하고 여행지에선 친해진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