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7일 화요일

키예프의 더위를 피해 태양으로 가다. (여행의 출발)

  원래 이번 여름에 계획하던 곳은 이탈리아 였다. 하지만 사정이 생겨서 계획이 무산되었고 부랴부랴 갈만한 곳을 찾아 다녔다. 그래서 좁혀진 곳이 두곳 스페인과 발트3국이었다.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과 하루라도 젋을 때, 즉 아직 학생활인이 될 때 더 비싼 나라 여행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스페인으로 결정 지었다. 마침 비행기표도 370$ 정도로 저렴하게 나온것이 1자리 남아 재빨리 예약을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구매를 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여행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스페인에 도착하는 시간은 밤 11:30. (근데 연착을 해서 결과적으로 마드리드에 도착한건 밤 1:30이 넘어서 였다.) 그리고 스페인을 떠나는 비행기가 이른 아침 6:00. 즉 앞 뒤로 1일씩을 버리고 나면 내가 여행하는 일 수는 11일 이었고 이것에 맞추어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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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투우장)

우선 가고싶은 도시 선정. 어짜피 가야하는 마드리드,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 많은 오페라의 무대 세비야, 알함브라 궁전의 그라나다, 오래된 도시 톨레도, 개인적으로 관심있고 도시 이동상으로 거리가 어정쩡해서 중간에 한번 거쳐갈 필요가 있어서 가는 발렌시아, 스페인 가는 김에 꼽사리 끼워 넣은 부록같은 리스본. 그리고 지도를 펼쳤다. 크게 시계방향의 라인이 완성된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발렌시아-그라나다-세비야-리스본-마드리드(톨레도, 아빌라) 톨레도와 아빌라는 마드리드에서 당일코스 여행이 가능하기에 마드리드에서 숙박을 하면서 가기로 했다.

그리고 Must to do 목록으로는 빠에야 먹어보기, 투우보기, 대서양에서 수영해보기, 지중해에 발 담궈 보기, 알함브라 궁전 보기, 가우디 건축물 보기. 이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숙소. 현재 신용카드가 없는 관계로 숙소들을 하나도 예약하고 가지 못했다. 가서 어떻게 되겠지 하는 배째라 정신과 노숙이라도 하지 라는 막가는 정신으로 출발을 하긴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떨쳐 버릴 수 없었다.

  8월 4일 그렇게 나는 태양의 나라 스페인에 발을 내디뎠다.

2010년 8월 3일 화요일

치과공장이용기

몇달전에 이빨에 충치가 생겼었었다. 그때는 작았었는데 여행중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도 견과류 였던거 같다.) 충치가 생긴 이빨 한 구석이 부서져 나갔다. 키예프에 돌아와서도 치료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본능적인 귀차니즘덕분에 이리저리 미루고 있다가 방학이 시작하자 마자 큰 맘먹고 치과에 갔다.

우선 전에 다니던 치과에 갔다. 그곳에서 내 이빨을 보더니 상태가 안좋아서 아마 새로 금이나 세라믹으로 덧씌워야 한단다. 근데 현재 병원에는 그런 도구가 없으므로 의사가 아는 치과에 추천을 해 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내 러시아 친구한테 하자 자기가 다니는 치과가 있는데 싸고 잘한단다. 그럼 어짜피 내가 항상 다니는 곳에 갈 이유가 없어졌으므로 그곳으로 같이 갔다. 알고보니 그곳은 의대 치과대학이 있는 곳이었다. 음… 대학 부속병원 같은건가 하고 급속도로 신뢰도는 급속도로 높아졌다.

우선 대충 시간을 잡고 병원실로 올라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실습실이라고 하는게 나을 것이다. (그때 카메라를 안가져간게 아쉽다. 사진을 남겨놨어야 하는데.)

  실습실의 풍경은… 와웅… 신선한 충격이었다. 약 80대 후반 기구 같아 보이는 치과의자가 넓직한 실습실 안에 8개가 놓여져 있다. 거기에 의사(즉 교수) 들이 한 명씩 붙어서 환자들을 보고 있었는데, (빈 의자도 한 두 개 있었다.) 간호사로 있는 얘는 실습실 당 학생 1명 뿐 이었다. 그리고 이런 실습실이 4개가 그 층에 있었다. (아 정말 너무나도 소비에트 적이다.) 흠. 이건 병원이 아니라 공장이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 담당 의사를 찾았다. 다시한번 신선한 충격. 40대 후반의 후덕한 인상의 꼭 덤프트럭 몰게 생긴 ‘여자’ 의사였다. (게다가 내가 정말 비호감으로 생각하는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계셨다. >_<) 실습실 안에는 뼈 타는 냄새, 정향냄새(약품냄새)가 확 풍겨 왔고 여기저기서 윙윙 거리는 핸드피스 (아마 이런 이름이었던거 같은데 즉 이빨 가는 기구다.)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나 왔어요~ 하고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실습실 4개에서 들리는 모터소리가 4방향 서라운드 사운드로 내 귀에 울려 퍼진다. 약 30여분을 기다리자 의사가 나를 보고 손가락을 까닥까닥 한다. 나는 들어가서 치과의자에 앉았다.

우선 전후 설명을 하고 내 이빨을 보여줬다. -음 많이 썩었네. 엑스레이 찍고와.

그리고는 내 손에 어느 이빨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는지 나타낸 종이를 쥐어주고 2층 엑스레이 찍는 곳으로 보냈다. 거기 앉아 계신 다소곳하신 할머니 선생님께서 엑스레이를 찍고 사진을 반명함판 사이즈의 이빨 사진을 줬다. 그것을 들고 다시 트럭의사님께 보여줬다. 그랬더니 왜 이렇게 일찍 왔냔다. -거기 사람이 없었어요.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니 심각하게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이제 좀 의사 같아 보인다. 그러더니 지금 자기 스케줄이 꽉 찼으니 내일 오라고 했다.

(다음날)

약속시간에 맞춰 치과공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제는 신경이 살아 있는지 검사를 위해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 갔는데 그곳은 이빨에 약한 전기충격을 줘서 신경을 체크하는 곳. 거기서도 다시 검사를 하고 받은 종이를 들고 갔다. 이번에도 왜 이렇게 빨리 왔냐는 표정. 그리고 나를 의자에 앉게 하더니 10초간 입 안을 들여다보고 핸드피스로 갈기 시작했다. 그러디니 갑자기 멈춘다. -너 점심 먹었어? (그때가 한 1시 반쯤 되었다.) -아뇨. -그럼 먹고와. 요 밑에 보면 먹을만한거 파는 가게들 있거든. 거기 가서 먹고와. 나는 그 소리에 약 3초간 눈만 깜박이다가 아무말 없이 가방을 들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머리속이 복잡해 진다. 점심을 먹으면 아무리 조심해도 음식물이 이사이에 낄텐데. 그럼 기분 안좋을텐데. 칫솔을 가져온것도 아니고. 물로 행구면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븐에서 바로 구워 파는 피자를 주문해 먹었다. 다 먹고 열심히 물로 가글을 하며 다시 병원으로 올라갔다. 날 보더니 트럭의사께서 껄껄 웃으며 -뭐먹었어? 물어보신다. -요 밑에서 피자 먹었어요. -응. 잘했어. 거기 맛있어. 하시면서 다시 내 이빨을 갈기 시작했다. 대인배신건가. 이분은 치과가 아니라 우리 건축대에서 시멘트와 물 농도, 회반죽과 미장일을 가르치고 계셨어도 참 잘 어울렸을 분이다.

우선 마취를 하고 이빨을 다 갈아내니 신경치료를 하신다. 신경치료를 할 때는 뾰족한 바늘같은것을 이용해 이미 죽어버린 신경을 다 긁어 낸다. 마취는 해서 입의 반쪽은 아무 감각은 없고 다른 반쪽은  오래 벌려서 저려왔다. 그렇게 바늘로 계속 쑤시더니 어~~~ 하시며 바늘을 나에게 보여주신다. 약 7미리 정도의 빨간 실 같은 것이 바늘 끝에서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보이지? 이게 신경이야. 우아~ 잘 나왔네. 그리고 다시 바늘로 쑤신다. 다시 두번째 신경을 빼서 보여준다. 아……. (치료가 당신에겐 재미, 하지만 내정신은 혼미) -져기… 콕 져 안오여 주셔오 외요.(저기… 꼭 저 안보여 주셔도 되요. <-난 현재 마취된 입을 연 상태다.) -아 그래? 으하하하하. 알았어. 뭐 무섭다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 보여달라는 사람도 있거든. 그래서 자주 보여줘. -예….

그리곤 다시 열심히 바늘로 쑤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옆에 의자의 동료 교수와 수다를 떨면서 쑤신다. 어제 티비에서 어쩌구 저쩌구. 전에 사먹은 파이가 어쩌구 저쩌구. 이번 여름 휴가에 어쩌구 저쩌구. 그래. 좋다. 수다는 그렇다고 치자. 근데 환자를 치료중인데 최소한 눈은 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Cool 하신 의사는 예의바르게도 자신과 대화중인 상대를 일일이 바라보시며 말을 하신다. 오른손으론 내 이빨을 바늘로 쑤셔대고 얼굴은 다른 교수를 바라보는 쿨 함. (당신의 대화주젠 태산, 당신앞 환자치룐 먼산) 그러더니 바늘에 더 상 걸리는 없자 이젠 소독과 약처리를 한다. 간호사 용도로 서 있는 학생을 부르더니 포름알데히드와 OOOOO을 가져와서 O대 O비율로 섞어. 한다. 어? 포름알데히드? 이게 내 입에……. 원래 이런거야? 포름알데히드가 몸에 안좋다고 알고 있는데…….  영화 괴물도 포름알데히드 많이 먹고 생긴거잖아. 다시 정신이 혼미해 진다. 내가 잘못 들은것일거야. 이런 생각을 하는 안 치료가 다 끝나고 오늘은 끝이고 내일 다시 오란다. 그리고 임시로 이빨에 땜질을 해 주셨다.

(다음날)

다시 시간에 맞춰 찾아 갔다. 임시 땜방을 뛰어 내시고 휙휙 보시더니 잘 마무리 되었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오늘 마지막으로 이제 여름 휴가를 간단다. (어. 난? 난 어쩌라고?) 그러니까 오늘은한 2달 정도 버티는 재료로 임시로 마무리를 하고 담에 자기 돌아오면 (즉 개학하는 9월 1일이 되면) 전화를 해서 시간을 잡고 이제 평생가는 튼튼한걸로 바꿔주겠다. -음… 예. 그렇게 하세요. 이 아줌마 돈 더 받으려고 상술 쓰는것 같다. 뭐 어쩌겠는가. 의사의 권력인데. 이날도 여전히 다른 동료 교수와 수다를 떨면서 내 이빨 치료를 해 주셨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너무 열정적으로 대화를 하시다가 내 얼굴에 침 몇 방울 튀긴거 말고는.

(1.5주 후)

  완벽하게 치료가 안된 상태에서 약간은 불안한 상태로 지내다가 갑자기 나도 여행을 외국으로 가게 되었다. 키예프에 계속 있었다면 트럭의사한테 9월에 치료를 받았겠지만 이거 여행갔다가 뭔 일 생기면 어쩌겠나 하는 심정으로 다른 치과의 문들 두드렸다. 거기서 내가 어떤 치료를 했는지, 그리고 필요로 한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을 해 주니 젋고 아리따우신 여 의사께서(알~렐루야!) 그럼 우선 어떻게 돼있는지 엑스레이를 찍고 검사를 했다.

여기서 다시 느낀 문화적 충격. 아, 정확하게 말하면 의사와 환자가 서로 느낀 문화적 충격.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거금 40만원들 들여 금으로 이빨을 하나 박고 왔었다. 근데 이 젋은 의사, 치과의사용 거울로 치료해야 할 이빨은 안보고 내 금니 보고 있다. 그러더니 하는 말. -우와 이거 진짜 이쁘게 잘 됬네. 이것도 거기(대학병원)에서 한거에요? -아니요. 한국에서 했어요. -아 그렇구나. 우와 이 의사 실력 좋은가봐요. (그냥 우리 동네 의사선생님이신데.) -이쁘다~ 내가 웃자 살짝 민망했는지, -아니 그냥 제 관심 분야 잖아요. 다른 나라는 이렇게 하는구나 하는것도 관심 있죠. 란다.

  그리고 치료를 시작하는데 신경치료를 하고 빈 공간을 채운 재질이 부드러운 재질이라 (이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하지만 젋은 사람들 한테는 크게 차이가 없으므로 더 튼튼한) 딱딱한 재료로 바꾸는게 나을거란다. 한숨이 훅 나왔지만 그렇게 하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우선 교체하는것만 하고 내일 덧씌우기를 하잔다. 그리고 말한대로 치료를 마치고 나왔다.

(다음날)

  의사가 웃는 얼굴로 반겨줬다. 의자에 누워 있으니 옆방에 있던 동료의사를 불러왔다. 그러더니 나한테 부탁을 한다. -저기요, 치료하신 금니 제 친구한테 좀 보여줘도 될까요? -에예? –한국에선 이렇게 하더라 보여주고 싶어서요.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라고 하고 입을 크게 벌렸다. 거울로 이리저리 비춰보더니 오~우~~ 탄성을 내뱉는다. 이거 정말 어떻게 리액션을 취해야 할 시츄에이션인지 모르겠다. 여튼 그리고 결과적으로 대망의 이빨 치료가 완료되었다.

이렇게 치과치료를 모두 마치고 나니 대략 100$정도 나간것 같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많이 싼 가격에 한 셈이다. 아무리 그래도 치과는 안 가는게 상책이다. 하루에 2번 닦던 이빨을 이젠 3번으로 늘려야 겠다. 에휴.

2010년 7월 29일 목요일

1주일간의 유럽여행(자그렙)

이제 마지막 도시 자그렙만 남았네요. 자그렙은 크로아티아의 수도입니다. 작은 도시라서요 지하철도 없고 북적거림도 없지만 나름 매력있는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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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유

자그렙은 사실 처음 여행계획을 세울 때 생각하지도 않았었던 도시 였다. 하지만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로 돌아오는 버스티켓을 잘못 사버리는 바람에 부다페스트에서 너무 많이 있게되서  주변국가 한곳 갈 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결정난건 크로아티아의 자그렙. 자그렙까지는 버스가 없는 관계로 기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무런 기대도 정보도 없이 가는 자그렙이었지만 기차에서 만난 크로아티아 인의 열성적인 소개로 대략적인 관광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도착한 시간은 저녁 11시경. 기차역에서 내려서 어두컴컴한 시내를 바라보는데 한숨이 확 나왔다. 다행이도 무료로 배포하는 지도를 구할 수 있어서 우선 야경을 보기로 했다. 그렇게 자그렙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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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프라하와 자그렙

앞서 이야기 했듯이 자그렙은 정말 작은 도시 이다. 반나절이면 시내를 다 돌아다닐 수 있다. 밤 늦게 도착해서 시내 돌아다니면서 노숙을 한 나는 이미 밤동안 볼만한 것은 다 봤을 정도였다. 하지만 자그렙은 자그렙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었다. 음… 무엇인가 정리되지 않은 그러면서 프라하 보다 작고 아담하고 더 동화 같나고 할까. 음… 프라하가 잘 가꾸어진 어린이 놀이공원 같은 느낌이라면 자그렙은 약간 어수선 한 아이들 방 같은 느낌이다.  (물론 모든 사람마다 다른 느낌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반면에 부다페스트는 남성적이고 웅장한 느낌이었다.) 저 위에 성당 지붕에 저렇게 기와를 까는 사람들 일는 생각이 드니 왠지 밝고 순수할 것 같다.  저 성당 때문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냥 도시를 돌아다닐때 마다 다 장난 같다. 작게 옹기종이 모여 있는 건물들, 오래된 중앙 시장이라고 해서 봤더니 운동장 만한 시장. (물론 지하가 있긴 했지만) 부다페스트 같이 두 도시의 연합으로 만들어 졌다고 했지만 한국 한 동 하고 다른 동(洞)이 합친 것 보다 작은 면적. 여튼 그냥 다 장난스럽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체크무늬 국기도 그냥 장난스럽다. 그래서 가볍고 귀여워서 좋았다. 아 참고로 저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2층 건물이 이나라 국회의사당 이다. 귀엽지 아니한가. 게다가 겸손하기 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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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노숙

앞서 이야기 했듯 밤에 늦게 도착해서 였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현지 화폐(쿠나)가 없어서 였다. 기차에서 만난 자그렙 주민이 역 주변에 있는 유스호스텔 까지 데려다 줬었는데 쿠나가 없어서 묵고 갈 수 없었다. 그래도 미리 부다페스트에서 20달러 정도 바꿔 노은 것이 있어서 그걸로 카페에 가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키고 1시서 부터 4시 까지 죽치고 있었다. 마침 카메라 배터리도 나가서 충전도 해야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책읽는척 하면서 꾸벅꾸벅 졸다가 너무 눈치가 보여서 나왔고 아래 사진앞에 있는 광장 벤치에서 다시 꾸벅꾸벅 졸다가 깨고를 반복을 하니 어느새 해가 뜨고 있었다. 일요일이기도 해서 새벽에 일찍 시작하는 성당 미사에 참여하고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생각보다 가뿐했었다. 꽤 쌀쌀한 날씨에도 입돌아가는 일 없이 나름 상쾌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노숙을 몇시간 노숙을 하고 나니 가끔 여행중에 (안전하기만 하다면) 노숙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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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국 단체관광객

좁은 자그렙 구시가지의 골목을 헤메고 있는데 저 멀리서 동양인 한 무리가 다가 오고 있었다. 점점 가까이 오니 약 40~50대 아줌마 아저씨들이었다. 가이드는 현지 인이었는데 영어로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내가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는 가이드한테 미안함이 들 정도로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말하나 보다 하는 표정 하다못해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사진찍기 바뻤다. 신기한건 다들 사과 한봉지씩 사 들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중앙 시장에서 하는 사과가 정말 쌌다. 한 500원 정도로 1킬로의 사과를 살 수 있었으니 한국 아줌마들 오면서 다들 사셨나 보다. 나는 쪽팔리는 얼굴을 감추며 그 무리를 지나오는데 갑자기 좁은 골목을 울리는 “우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하는 여자치고 낮은 저음의 웃음소리(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웃음소리) 가 온 골목을 울렸다. 좁은 골목에 바닥바닥 붙어 있는 건물의 앞뒤로 메아리가 울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처음에는 엄청 쪽팔렸었다. 거리 노천카페에서 앉아서 아침을 먹고 있던 현지인들과 다른 관광객들이 하나둘 그 관광객들을 보기 시작했다. 다시 울리는 웃음소리. 뭐가 그렇게 웃긴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카페에 앉아있던 사람들까지 어이없어 하다가 웃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다시 같은 웃음소리. 이젠 나도 웃겨서 웃었다. 정말 쪽팔리지만 멋있는 아줌마였다. 웃음소리 하나로 온 골목을 휘어 잡으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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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일본인

도시를 둘러보고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그냥 일찍 기차역으로 갔다. 거기 앉아서 책도 보고 꾸벅 졸기도 하는데 한 동양 여자분이 오고 있었다. 내가 앉은 벤치 앞에는 코인락커가 있었는데 그곳에 짐을 보관하러 온거였다. 근데 왜 하필이면 ‘고장’이라고 쓰여 있는 락커에 트렁크를 집어 넣는지… 그래서 내가 거기 고장났다고 하니까 화들짝 놀라면서 날 바라본다.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은 아닐텐데 그렇게 놀라기 까지야……. 여튼 그래서 저쪽 락커는 고장 안났다고 하니 순순히 내가 지정해준 락커에 트렁크를 넣는다. 근데 이 여자 동전이 없었다. 뭐야……. 그러면서 나를 처다본다. ‘트렁크 내가 보고 있을께요. 환전소 다시 갔다 와요.’ 하니까 그제서야 웃으면서 ‘생큐~’를 외친다. 갔다 와서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보고 한국어로 ‘저 한국어 공부하고 있어요’ 란다. 얼. 그래서 나도 일본어로 ‘저도 일본어 공부해요’ 하니 일본 특유의 ‘에~에! 스고이~!’ 하는 감탄사와 함께 날 본다. 자기는 지금 2주째 여행중이고 자그렙 보고 바로 베네치아로 넘아간단다. 이런저런 관광지 이야기 해주니 여자가 가면서 일본 사탕을 하나 고맙다고 주고 간다. 그리고 다시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할일도 없었는데 시내까지 같이 가 줄껄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더 친해졌을텐데. 여행을 다니다 보면 확실히 일본 사람들하고 빨리 친해지는 듯 하다. 아무래도 문화가 비슷한 것도 있고 일본인 특유의 예의바른 모습이 거부감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근데 나는 한국사람하고 여행지에선 친해진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왜일까??

2010년 7월 28일 수요일

1주일간의 유럽여행(프라하)

지금 여행 다녀온지 3개월이 되어 가는데 인제 프라하 여행을 씁니다. 여행다녀와서 학교일 밀린거 하고 시험보고 아파트 구하고 그러다 보니 방학이더라구요. 그래도 여행가서 생각한것들은 아직 다 머리속에 남아 있는게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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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스터미널의 안내데스크

아침일찍 프라하에 도착했다. 프라하의 버스터미널 이름은 플로렌츠. 근데 들리는건 플로렌스다. 플로렌스=피렌체=이탈리아.. 응? 이런 쓸데없는 생각하는 동안 프라하에 와있었다. 터미널은 깔끔했지만 크지는 않았다. 안내데스크를 중심으로 양옆에는 버스표 파는 회사들의 창구가 늘어서 있다. 이른아침이다 보니 아직 문을 연 은행도 식당도 없는것을 알고 있으므로 안내데스크에서 지도도 받고 관광지도 물어볼겸 찾아갔다.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살집좋은 아저씨가 나에게 지도를 주면서 설명해 준다. 근데 놀랍게도 그 아저씨는 장님이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적어도 시력이 아주 안좋으신 분이셨다. 그런데도 능숙하게 안내일을 해주고 계셨고 이른 아침부터 생글생글 웃으면서 기분 좋게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옆의 다른 직원들도 웃으면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농담을 주고 받고 있었다. 나는 장애인을 대하는 이런 태도들이 부럽다. 그런 사회가 부럽다. 프라하에서 첫날 아침은 기분좋은 아침이었다.

2)은행환전.

시내를 걷고걷고걷고걷다가 드디어 적당한 숙소를 하나 발견했다.  이미 날은 충분히 더워졌고 더 찾기도 귀찮고 해서 들어가기로 했다. 문제는 돈. 아직 체코 코루나를 안 바꿔서 은행가서 바꾸겠다고 하고 은행을 찾아 다시 걷고걷고걷고또 걸어서 환전을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다시 오후에 돈이 필요해서 환전을 했다. 헉… 수수료가 50코루나 였다. 속이 쓰려왔다. 수수료만 100을 내다니. 미리미리 알아보지 않은 내가 잘못이다. 그렇게 울며 겨자먹기로 환전을 하고 다시 걷고X3을 해서 숙소에 도착했다. 더운만큼 쉽게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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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날짜계산

이번여행간 대박 실수는 돌아가는 비행기 노친 것 이고. 두번째는 호텔 숙박비를 하루 더 준것이다.  바로 내가 프라하에서 돌아가는 버스 날짜를 잘못 계산하고 하루 일찍 사 버린것. 하지만 호스텔은 이미 2일 치를 미리 준 상태. 그리고 그 하루치 더 준 날은 5월 1일이어서 메이데이 행사로 성수기 시즌 가격이었다. 다시 엉엉 울며 겨자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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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프라하 광장

프라하 또한 여느 도시들 같이 멋들어진 광장이 있다. 구도시 중심에 위치한 광장은 유명한 천문시계탑과 성당, 종탑, 그 외 예쁜 건물들에 둘러 싸여 있었다. 여기에 도착해서야 아 드디어 프라하에 왔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바글바글한 사람들도 짜증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여기에 서 있는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비록 엄청나게 떠들어 대는 관광객들의 소음에 이런 감동의 시간은 재빨리 날라가 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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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흑백사진

나는 흑백사진을 좋아한다. 그냥 옛스러워보여서 좋아하는데, 역시나 프라하는 흑백사진이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돌 깔린 길, 고풍스런 건물들, 간판들이 흑백사진을 위한 도시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가이드북 같은데 보면 프라하는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하지만 내가 봤을땐 꼭 중세모습만 아니라 과거 유럽의 건축사를 잘 보존하고 있다는게 맞는 말일것이다. 그만큼 고딕에서 모던니즘까지의 건물들을 다 발견할 수 있다. 유명한 모더니즘 화가 무하의 나라 아닌가. 프라하에서는 살아있는 유럽건축사를 공부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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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야경

프라하의 야경……. 기대했던 것 보다 이하의 프라하에 실망해 있을 때 바로 프라하를 사랑하게 만들어준 것. 야경. 결국 난 이 도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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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9일 수요일

1주일간의 유럽여행(부다페스트)

한동안 바쁘게 학교 생활을 하다가 5월 초 연휴가 몰려 있는 날에 잠깐 이웃 헝가리, 체코, 크로아티아를 갔다 왔습니다. 1주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추억거리도 많이 만들었네요.
어짜피 여행에 관한 정보들은 인터넷에서 많이들 얻으실 테니까 저는 아주 철저 이기주의 자기중심적 시각으로 여행간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볼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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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의 야경)
1)비행기.
언제나 비행기가 출발할 때는 약간 긴장이 된다. 그래도 남들만큼은 타 봤다 라고 생각하지만 비행기가 출발할 때 흔들림은 항상 나를 숨막히게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가볍게 그 큰 동체가 사뿐이 올라가고 몇 초가 지나서 실가닥만 해지는 도로를 보고야 ‘휴~’ 하면서 진정이 된다. 1시간 반 동안의 비행이지만 가벼운 샌드위치와 주스, 커피를 준다. 그것을 다 먹으니 벌써 도착을 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2)숙소.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숙소를 한군데도 예약하거나 알아보지 않고 간 것이었다. 전날 늦게 까지 학교 과제를 하다보니 각 도시 정보 찾기에도 바빠서 숙소따위는 거기서 어떻게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갔던 것이다. 헝가리 공학에 도착해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시내 중심지로 우선 나갔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는 관광에 관련된 자료만 주고 숙소에 관련된 자료는 주지 않았다. 그때 부터 직접 숙소들을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우선 가까운 기차역으로 갔다. 그쪽으로 가면 왠지 숙소를 알려줄 삐끼 같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하지만 장소를 잘못 잡은것인가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우연히도 저 멀리 호스텔 하나가 보인다. 들어가봤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가격보다 좀 비싸다. 우선 침대는 많이 있으니까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기차역 주변을 약 4시간을 돌아다녔다. 결국 가볍게 저녁을 먹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우니 피곤이 몰려온다. 앞으로 프라하에서도 이렇게 찾아봐야 하니 걱정이 되긴 했다. 도시 관광정보를 얻기전에 숙소 정보를 얻어야 했었던게 맞았다. 관광 인포메이션 센터는 ‘관광’인포메이션 센터이다.

3)헝가리어와 다른 외국어
비행기에서 헝가리어로 된 잡지를 보았다. 한 페이지를 읽어보았다. 어떠한 단어도 유추해 낼 수 없었다. 헝가리어는 정말 different하고 difficult하다. 슬라브 민족 사이의 섬이 아닌 전 유럽 사이의 섬이다. 빠르게 대화하는 사람들의 말에서 어디가 단어의 끝이고 처음인지 모르겠다. 광고판, 전단지 등을 읽어보아도 단어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듣고 있으니 귀엽다. ‘쾨쇠뇜köszönöm’. ‘고맙습니다.’라는 의미이다. 한국어 감사합니다 때문인지 쉽게 외워졌다. 그리고 유일하게 아직까지 남아 있는 헝가리 어이다. 쾨쇠뇜.

4)나이
나이덕분에 프라하 행 버스 티켓을 반값에 샀다. 많은 박물관들을 할인가격으로 관람한다. 그래서 느낀다. 아, 난 아직 어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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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거리)
5)이쉬트반 대성당과 엘비라.
부다페스트 중심에 위치한 화려하고 큰 대성당. 헝가리의 스테판(이쉬트반)성인을 기리는 성당으로 상징적인 성당이다. 성당안에는 성인의 손목 뼈가 있이다. 그 화려한 성당의 내부는 관광객들의 사진촬영과 성당내부를 설명하는 가이드의 낮은 목소리로 어수선 해 보였지만 약간 어두운 조명과 중앙에 위치한 사람을 사로잡는 제대는 곧바로 모든 집중을 제대로 향하게 했다. 역시나 성당안은 시원했다. 하늘을 향한 높은 천장에 들어오는 빛은 비교적 적어서 언제나 성당안은 여행자들의 최고의 휴식공간이다. 게다가 조용하고 의자까지 비치해 두었으니.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햇볓에서 쉬고 싶었다. 그래서 화려한 신고전주의 성당을 나와 넓은 성당 앞 광장 한편에 조촐히 마련된 벤치에 앉았다. 성당을 빤히 바라보며 쉬고 있는데 옆에서 들리는 친숙한 언어… 옆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은 러시아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헝가리어만 하루 종일 듣다가 오랜만에 듣는 러시아어가 반가워서 그 두 여자와 인사를 했다. 종종 생각하는 거지만 내가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한 흑인이 나한테 한국어로 (그것도 유창하게) 말을 걸어 온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아니라 이 두 사람이 운이 좋은 확율이 더 높다.  둘은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중부유럽대학교(CEU)에서 교환학생으로 같이 공부를 했었던 사이로 한 명은 우크라이나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우즈베키스탄 사람이었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하고 어느나라에서 왔는지 설명을 하는데 갑자기 다른 한 여행객이 오더니 ‘어! 너도 우크라이나에서 왔어?’ 하면서 반갑게 물어본다. 그렇게 서로 반가웠는지 빠르게 대화를 해 나갔다. 부다페스트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땀을 식히기 위해 성당에 다시 들어갔고 모두 헤어졌다. 성당에서 나와 이제 세체니 다리를 향해 가는데 길에서 다시 우크라이나 여자애를 만났다. 이름은 엘비라. 흔하지 않은 이름이다. 엘비라가 반갑게 인사하며 자기네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잔다. 원래 학생식당은 양많고 싸기로 유명한지라 같이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엘비라는 이곳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었다. 현재는 졸업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엘비라와 함께 밥을 먹으며 여러가지 정보도 듣고 부다페스트의 건축 스타일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나중에 우크라이나에서 만나게 되면 더 자세하게 알려달라는 말과 함께 헤어졌다. 한 두시간의 짧은 인연이었지만 백인스럽지 않은 흐릿한 쌍커풀과 수수한 스타일이 인상깊은 사람이었다.

6)도시, 다리, 통합
세체니 다리는 부다페스트의 상징중의 하나이다. 두나강(흔히 다뉴브나 도나우 강이라고 하는데 헝가리에 왔으니 헝가리 어로 ‘두나’라고 쓴다.)을 중심으로 왼쪽에 있는 부다 시와 오른쪽에 있는 페스트 시를 연결시켜준 첫번째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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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로 두 도시의 생활권은 좁아졌고 결국엔 부다페스트라는 한 동시로 통합을 이뤄내는 결과가 만들어 졌다. 이런 통합에 앞서 반대의 목소리도 많았을 것이다. 봉건시대를 거치면서 국민이기보다 시민이라는 개념이 더 우선시 되고 중요한 유럽인들에게 도시의 통합은 사실상 자신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통합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용기있는 통합으로 지금은 다뉴브 강의 진주라는 별칭과 한 나라의 수도로 웅장한 자태를 뽑내고 있다.

7)미술관과 온천
부다페스트 하면 유명한것이 또 온천이다. 목욕문화에 심취해있는 한국인이라면 부다페스트에서 꼭 해야 할 것으로 온천을 꼽기도 한다. 부다페스트에서 유명한 온천은 세체니 온천이 있다. 워낙에 유명한 온천이니 설명은 안한다. 그리고 나도… 갈 생각이 없었으므로 들어가지도 않았고 그저 외관만 사진찍고 말았기에 할 말도 없다. 그 대신 온천에서 멀지 않은 국립 미술관을 갔었다. 나는 여행을 다닐 때 마다 될 수 있으면 그 도시의 미술관은 꼭 보고 오자는 주의여서 부다페스트에서도 지도에서 먼저 국립미술관을 찾았었다. 대부분의 수도에는 항상 국립미술관이 있으니… 아… 서울은 아니구나……-_-;; 여튼 그럴 확률이 높으니 미술관은 찾아보길 바란다. 국립미술관은 영웅광장의 왼편에 위치해 있다. 영웅광장에서 위로 더 올라가면 세체니 온천이 있다. 우선 넓직한 영웅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옆에서 한국어가 들린다. ‘수영복 챙겨 왔지?’ 온천 가시는 분이신가 보다. 그리고 나는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미술관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다들 온천으로만 가고 옆에 신전처럼 서 있는 미술관은 관심이 없나보다. 갑자기 아까 들은 한국어가 생각났다. ‘수영복 챙겨왔지?’ 과연 이 미술관에 오기위해 준비해온 사람이 있을까?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 중에 유명한게 뭐가 있는지 검색이라도 한번 해 본 사람이 있을까? (물론 나도 해보지는 않았지만.)  미술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현지 언어를 제외하고 제일 많이 들리는 언어는 프랑스 어였던거 같다. 내가 갔을때 마다 우연히 프랑스 인들이 많이 온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총 4곳의 미술관(부다페스트 2곳, 프라하 1곳, 자그렙1곳)에 갔었는데 3곳에서 그랬다. 역시 프랑스 인건가. 그래도 흔이들 생각하는 문화의 나라 하면 생각나는 나라 아닌가…(나만 그런가?) 그래서 드는 생각은 아마도 그 사람들은 미술이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을 수도 있겠다라는 것. 옛날 부터 미술중심지로 유명한 나라이니. 추가 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4곳의 미술관에서 한국인을 본 적은 한번도 없다. 프라하에서 유일하게 일본인을 한명 본 것 말곤 동양인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놀러와서 고리타분 하게 무슨 미술관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힘들게 다른 나라에 왔는데 그저 유명한 관광지나 휙 둘러보고 가긴 아깝지 않은가? 아무리 수박 겉 핥기 여행이지만 이왕 핥는거 한두 군데만 핥지 말고 전제적으로 핥자는 말이다.(어감이 이상하다만…….) 문화는 만들어 져 있는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거니까…….